"스케이트 날 위에서 집중력 훈련했어요"
[인터뷰]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현인아 선수 어머니
12.07.08 15:45 ㅣ최종 업데이트 12.07.08 15:45


"Hi, My name is Hyun In-Ah(안녕하세요, 저는 현인아입니다)."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가하려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66·안지 마하치칼라)을 향해 당찬 인사를 건네는 이가 있었다. 나경원 조직위원장도 긴장시킨 히딩크 감독 앞에서 싱긋싱긋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 여유를 보인 사람은 스페셜올림픽 출전선수 자격으로 참석한 현인아 선수(15·창동중)였다.
 
말 실수에도 터져 나온 기자회견장의 박수

  
▲ 기자회견에 참석한 현인아 선수가 히딩크 감독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정혜정
 히딩크

"저는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선수 현인아입니다. 내년 대회 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히딩크 감독님! 우리 스페셜올림픽, 응원을, 선수들, 많이 응원하세요."

지난 밤 엄마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한 문장이었지만 회견장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연습을 계속했다. 보고 읽는 것보다 서툴더라도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십 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탓에 약간 실수를 했지만, 현 선수의 인사말이 끝나자 회견장에 박수소리가 터졌다.

히딩크 감독에게 기념배지를 달아주고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단상에서 내려온 현 선수는 "긴장이 됐어, 그런데 좋았어"라고 짧은 소감을 전한 뒤 히딩크 감독에게 받은 사인볼을 들고 짧은 치마를 나풀거리며 기자회견장을 누비고 다녔다. 어머니 허영미(47) 씨는 웃으며 "바지를 입힐 걸 그랬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 히딩크 홍보대사 위촉식'을 마치고 나온 현 선수의 어머니를 만났다.
 
부담스러운 시선 피해 연고 없는 포항으로 이사하기도

  
▲ 히딩크 감독에게 기념배지를 달아 주는 현인아 선수.
ⓒ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히딩크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 학교에 다니는 인아는 1년 유예해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밟고 있다. "원래는 범띤데 친구들이 다 토끼띠여서 인아는 자기가 14살(99년생·토끼띠)인 줄 안다"는 엄마 말을 듣던 인아가 불쑥 "토끼는 꼬리가 짧고 호랑이는 꼬리가 길어요"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인아가 어렸을 때부터 산만했다고 전했다.

"손만 놓으면 어디로 갈지 몰라요. 말로 의사표현을 못하니까 행동으로 다 보여주더라고요. 인아가 5살 때 오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어요. 다칠까 봐 집에서 태우다가 한두 달 연습하고 나서 밖으로 데려갔어요. 인아가 에너지가 굉장히 넘치거든요. 야생마예요. 인라인을 못타는 제가 뛰어서 따라다니기 힘들 정도죠. 그러다 잠깐 시야에서 놓쳤는데 인아가 차도 쪽으로 뛰어들고 있는 거예요. 큰일 날 뻔 했어요."

도시에서는 인아를 자유롭게 키우기 힘들 거라 생각한 허 씨는 남편에게 본사에서 지점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인아를 자유롭게 교육하고 싶었어요. 도시에는 차도 건물도 많아 인아에게 위험하고 무엇보다 사람들 시선이 불편했거든요."

인아는 5살 때 포항으로 내려갔다. 2002 한일 월드컵을 포항에서 겪은 인아. 당시에는 히딩크 감독과 이런 인연이 생길 줄 몰랐다. 2002년부터 2년 간 포항에서 생활한 가족은 인아 학교를 위해 2년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교육 여건은 지방보다는 서울이 낫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 학교에서 마련한 스케이트 단체강습에 참가하게 된 인아. 어렸을 때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덕분인지 스케이트화를 신자마자 빙상장을 종횡무진 누볐다. "스케이트 타는 인아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담임선생님 얘기를 듣고 인아의 산만함을 치료하기 위해 스케이트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케이트 날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인아에게 날은 날카로운 흉기가 아니라 집중력을 길러주는 교구가 됐다.

"스케이트 날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 전정기관을 자극해 평형감각과 균형감각을 길러주고 이 과정에서 집중력도 키울 수 있더라고요. 산만하던 인아가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일반 선수 뒤꽁무니 따라가는 것도 영광"

국내 실내빙상장은 선수들과 코치들이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훈련할 정도로 추운 편이다. 하지만 인아를 가르치러 빙상장에 들어선 코치 선생님은 땀범벅이 된 채 빙상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빙상장에는 활주 방향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인아가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피겨 선수들이 강습받고 있는 라인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인아를 붙잡으러 다니던 코치가 나중에는 반팔 차림으로 밖으로 나오셨어요. 죄송한 마음에 '인아 가르치기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처음이라 그렇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다행이었어요. 못 가르친다고 하실까 봐 내내 걱정했거든요."

  
▲ 기자회견을 마친 현인아 선수가 히딩크 감독의 사인볼을 들고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마스코트 Ra(라?왼쪽) In(인) Bow(바우?오른쪽)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정혜정
 스페셜올림픽

'천방지축 현인아'를 '쇼트트랙 선수'로 만들기 위한 기초 훈련이 시작됐다. 코치 선생님은 '코너를 돌 때는 3번째 블록에서 오른발을 디뎌라' '스피드를 내려면 자세가 중요하다, 자세를 낮춰라' 식의 말보다는 행동으로 인아를 가르쳤다. 집중력이 약하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인아를 위한 맞춤형 교육이었다. 수십 번 반복된 행동을 보여주면 인아도 그 동작을 조금씩 흉내 내기 시작했다.

동천학교 아이스링크장에서 훈련을 시작한 인아는 이후 고려대 실내빙상장을 거쳐 지금은 의정부 실내빙상장에서 훈련 중이다. 여러 빙상장에서 연습했지만, 일반인과 함께 훈련하는 장애인은 인아가 최초다. 기록 경쟁인 쇼트트랙 특성상 홀로 하는 스피드 훈련은 의미가 없다.

일반인과 어울려 타는 최초의 장애인 선수

일반 선수들 사이에서도 실력 좋은 선수 뒤꽁무니를 따라 타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잘 타는 선수는 뒤에 다른 선수들이 있으니까 좋고, 따라오는 선수도 실력이 좋은 선수와 함께 타 기록 향상에 도움을 얻는 것이다. 인아가 일반 선수들과 어우러져 탈 수 있게 된 데는 최태현 코치 선생님 공이 컸다.

"인아가 너희들만큼 스케이트도 잘 타고 대회 나가서 상도 탔어. 장애는 있지만 잘하는 선수다."

장애를 가진 선수와 함께 타게 되면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고 연습하는 데 지장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한마디에 같이 훈련하게 된 일반 선수들도 편견 없이 인아를 대하기 시작했다.

"빙상에 오르기 전에 달리기 지상 훈련을 하거든요. 힘들어서 못 뛰는 인아 앞뒤로 초등학교 동생 둘이 붙더라고요. 누나가 뒤쳐지면 혼날까 봐 누나 곁에서 달려주는 거였어요. 또 외국 다녀오면 초콜릿을 사와서 서로 나눠 먹기도 하고, 그런 정이 있어요. 작은 사회죠. 인아가 스케이트를 통해서 사회생활도 배우고 있어요. 스케이트는 표현을 잘 못하는 인아가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 좋은 역할을 해요."

일반 선수들 못지않은 훈련 강도다. 시합에 출전하지 않을 때도 훈련은 계속 한다. 오후 5시부터 50분 동안 지상훈련으로 몸을 푼 뒤 6시에 빙상장에 들어간다. 50분씩 두 번 스케이트를 타고 30분 동안 마무리 운동을 해야 하루 훈련이 끝난다. 처음에는 몸살도 나고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거뜬히 훈련에 적응한다.

  
▲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처음 탄 현인아 선수는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에 출전한다.
ⓒ 정혜정
 스페셜올림픽

2011 아테네 하계 스페셜올림픽에 롤러스케이트 선수로 참가해 금메달을 땄던 현인아. 하지만 이제 롤러스케이트는 취미로 남겨놓고 쇼트트랙에 몰두하기로 했다. 쇼트트랙 자세가 망가질 수 있다며 코치 선생님이 만류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29일 개막하는 평창 스페셜올림픽에 쇼트트랙 500m, 700m, 1000m에 출전할 예정이다.

"저는 다른 대회보다 스페셜올림픽을 특히 좋아해요. 출전하는 선수들 모두 다 인아 같은 아이들이거든요.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아요. 자식들 어떻게 키우는지 다 알기 때문에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아서 마음이 편해요."

지하철에서도 계속되는 불편한 시선들

현 선수의 어머니는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 딸을 키우면서 사람들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인아랑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어요. 장애인우대권을 뽑고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쫓아와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받는 걸, 왜 뽑아 가냐'고요. 할머니께 '할머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할머니만 받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지하철을 탔어요. 그런데 같은 칸으로 들어오셔서 또 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도 가득 차 있는데... 그래서 '저희 애가 장애를 가졌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분들도 우대권을 받지만 장애인도 동반 1인까지 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제야 큰소리로 '아, 몰랐지' 하시며 다른 칸으로 넘어가시더라고요. 지적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일반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아요. 특히 할머니들은 멈춰 서서 끝까지 쳐다보세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모든 면에서 날이 서 있으면 인아 교육하는 데도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궁금하신가 보다'하고 넘긴다고 전했다.

주위에서 "스페셜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전국체전에서 메달 따면, 나중에 그거 가지고 뭐할 건데? 계속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배워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인아를 위해 꾸준히 운동을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스타도 함께하는 스페셜올림픽

  
▲ 평창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김연아 선수와 히딩크 감독.
ⓒ 정혜정
 김연아

"소외 받는 사람들(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일반인들보다 적은 편이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내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이 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데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포츠는 그 분야 엘리트들만 모여서 하는 게 아니다. 스페셜올림픽은 지적 장애인과 소외된 이들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다."

히딩크 감독이 스페셜올림픽을 적극 후원하게 된 이유다. 일반 올림픽보다 미디어의 관심이 적은 스페셜올림픽. 지난달 21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방한기자회견'에서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이기도 한 김연아(22·고려대) 선수도 관심을 촉구했다.

"많은 분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해주신 점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용기를 내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응원과 큰 박수를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인아의 어머니는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조용하고, 그렇지 않아도 될 곳에서 잘못된 관심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와 히딩크 감독, 그리고 김연아 선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상통하는 점이 많다. 스포츠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있는 스페셜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노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by heyuna 2012. 7. 8.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