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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메달 받은 선수단 "화이팅"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김아랑, 조해리, 심석희, 공상정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대한체육회가 준비한 초콜릿 메달을 목에 걸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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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의 축제가 끝났다. 축제를 빛낸 영웅들이 돌아왔다. 지난 25일 오후 3시 40분,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장은 수백 명의 취재진과 팬, 선수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기수 이규혁을 선두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선수단이 차례로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대기 중이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 등이 선수들에게 다가가 '국민행복 금메달'을 전달했다. 대한체육회가 격려와 감사의 표시로 준비한 초콜릿 금메달이었다. 선수단은 깜짝 선물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웃음을 찾은 뒤, 초콜릿 메달을 입에 물고 사진을 찍었다.

'센터'의 주인공은 김연아도 이상화도 아닌...

이날 준비된 초콜릿 메달은 지름 9cm, 두께 1cm 크기였다. 특히 이규혁 선수에게는 최다 올림픽 참가를, 김연아 선수에게는 은퇴를 기념하는 의미로 다른 선수들 것보다 3cm 더 큰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깜짝 이벤트와 기념 촬영을 끝낸 선수단과 임원들은 인천국제공항 1층 밀레니엄홀 야외무대로 자리를 옮겨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했다. 첫째 줄은 역시 메달리스트들의 몫이었다. 김연아와 이상화가 양쪽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빙상연맹 회장이 앉았다. 두 선수 옆으로는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이 나눠 앉았다.

해단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다소 엄숙하게 진행됐다.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답지 않게 행사 내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임원들의 말씀이 시작됐다. 최종삼 선수촌장의 성적보고를 시작으로 김정행 회장의 식사, 유진룡 장관의 치사에 이어 김재열 단장의 답사 그리고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인사까지. 14분 동안 격려와 감사의 말들이 오갔다. 긴 비행으로 피곤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말씀'의 시작과 끝에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이후 평창 소개 영상이 상영됐고 주요 선수들과 임원들이 나와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소 지루했던 해단식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인터뷰 시작 전, 진행자는 시간 관계상 10분간 다섯 개의 질문만 받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미숙한 진행 이어져

첫 번째 질문부터 식상했다.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는 김연아에게 "갈라쇼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박승희에게 "500m 동메달을 딴 이후 가장 기뻐해 준 사람이 혹시 '그 분'이 아닌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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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다짐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 및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에서 이상화, 김연아, 심석희 등 선수들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등이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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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갈라쇼까지 소치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갈라에서도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감정들은 없었던 것 같고요. 마지막이긴 하지만 앞으로 예정된 공연도 있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연아의 대답이 끝나고 박승희가 마이크를 잡으려는 순간, 불쑥 다른 질문자가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에 유 장관이 '박승희 선수 차례'라며 손짓으로 제지했고, 박승희가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 분은 아니었고요. 저희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 너무 멀리 있어서요. 제가 느끼기에는 같이 있었던 쇼트트랙 대표팀이 제일 기뻐해주셨던 것 같고, 그 기쁨이 제게도 가장 크게 느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질문자는 유 장관과 김 단장에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건립 예정인 빙상장을 '김연아 빙상장'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김연아 빙상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당사자인 김연아는 불편한 웃음을 지었고, 현장에 있던 일부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유 장관은 "올림픽 공원에 그 시설을 짓는 것은 국가 기밀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다. 그 시설의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금부터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 나가야 할 사항이다. 의견은 잘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김연아 선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스케이터"라며 "빙상연맹회장으로서 정부가 하는 일에 손을 맞춰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질문도 김연아에게 향했다. 팬들이 자신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인정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냐는 물음에 김연아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힘들게 준비한 만큼 다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을 했고요. 마지막 대회인 만큼 후련하게 끝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고, 또 많은 분들이 제가 경기한 것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뒷줄에 앉은 모태범, 윤성빈뿐 아니라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며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은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 주형준, 김철민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을 마치고 온 이규혁까지. 아직 입을 열지 못한 선수가 많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선수 이름을 모르는 질문자와 대답을 끊는 진행자

마지막 질문 기회를 잡은 사람은 한 방송사 PD였다.

"박상희... 박상희 선수에게 질문을 하겠는데요. 평창 올림픽이 이제 4년 남았는데 자신의 포부가 있다면요? 심석희 선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500m 결승전에서 선두로 달리다 뒤에 오던 선수에게 걸려 넘어진 박승희. 일어나서 다시 달리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넘어졌음에도 끝까지 레이스를 펼쳐 감동을 안겨 준 박승희. 그리고 끝내 동메달을 목에 건 박승희. 이날 당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1000m에서 금메달을 따 낸 박승희. 질문자는 가장 기본적인 선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박승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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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 인파 가득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한 가운데, 취재진과 팬들이 입국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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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이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제가 평창올림픽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해서 가게 된다면 큰언니 역할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심석희가 마이크를 건네받는 순간, 진행자가 말했다.

"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기념 촬영을… 아, 네 계속해서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요. 이번 올림픽도 좋은 경험이 됐는데, 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4년 뒤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심석희)

미숙하고 불편했던 기자회견이 끝이 났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의 소감도, 마지막 올림픽을 끝낸 이규혁의 심정도 듣지 못했다. 선수 생활 2년 만에 올림픽에서 썰매 종목 한국 역대 최고 순위를 갈아치운 윤성빈 선수의 사연 또한 들을 수 없었다.

축제의 주인공들은 입을 다문 반면 행사에 참여한 정부, 협회, 연맹 임원들은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각자에게 주어진 2~3분의 발언 시간을 아낌없이 썼다. 식사, 치사, 답사로 구분해 진행했지만 이들이 말한 내용은 비슷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평창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선수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언제까지?

2년 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단은 인천공항에서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뒤 올림픽 특집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로 이동했다. 이날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렸지만 방송은 예정대로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다. 선수들은 빗물이 고인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선수단과 대통령의 오찬은 메이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치러지는 행사가 됐다.

6년 전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은 해단식을 마친 뒤 퍼레이드에 참가해야 했다. 대한체육회는 박태환과 장미란을 앞세워 서울 세종로사거리부터 서울광장 구간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도 비가 내려 퍼레이드에 참가한 선수단이 고생을 했다.

4년 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단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을 때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그보다 앞서,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이 소치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오찬을 가진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것은 아닐까? 선수를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by heyuna 2014. 2. 26. 18:38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오묘한 승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없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야말로 승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다. 그러나 선수에 따라서는 승리만이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 한번 오른 최고봉에 재도전하는 등산가에게 다시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표일 수는 없다. 다른 코스로도 오르고 싶고 팀워크를 중시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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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출국 기자회견에서 김연아는 "부담없이 경기를 치르고 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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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운 것 같아요"

두 번째 올림픽에 도전하는 김연아(23·올댓스포츠) 선수의 심정은 현역 복귀 선언 이래 어떤 변화를 겪어온 걸까?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해 2011년 7월의 기자회견으로 돌아가보자.

"저를 계속 짓눌러왔던 저의 선수생활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힘겨웠던 것이 나 스스로, 또 국민과 팬들의 높은 기대치와 그에 따른 부담감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피겨 연기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만일 최고의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이것이 인생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김연아는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 한 켠에,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이 부담감 때문에 자기가 가장 잘 하고 자신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1년 남짓 고민의 시간을 보낸 그는 다시 얼음 위에 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흘렀다. 소치올림픽 시즌이 시작됐고, 김연아는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을 맞게 됐다.

지난 3일, 김연아가 2013-14시즌 첫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마지막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마음이 가볍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운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꿈은 이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욕심이나 부담은 전혀 없는 것 같고, 한 대회 한 대회 나갈 때마다 예전보다는 부담을 덜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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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국 기자회견장에는 백 여명의 취재진과 팬들이 몰려 김연아의 마지막 시즌에 관심을 보였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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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티켓 3장 따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외 언론과 팬들은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를 언급하고 예측했다. 하지만 선수 본인은 '올림픽 2연패'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현역 복귀를 결정한 이유가 올림픽 2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역 복귀 당시 그의 말을 되새겨보자.

"지난 시즌을 스킵한 이후 1년은 저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년 동안 태릉선수촌에서 피겨스케이팅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해왔습니다. 제가 후배 선수들에게 피겨스케이팅과 관련된 조언도 해주고 선배로서, 언니로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반대로 후배들의 훈련 모습에 자극받기도 하고 때로는 피겨스케이팅을 계속해야 하는 동기부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을 위해서 제가 현역 선수로서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역 선수로서 김연아가 해야 할 일은 후배 선수들을 소치올림픽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올림픽 티켓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 목표가 생기자 바빠졌다.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었고 체력을 끌어올렸다. 

B급 대회에 출전해 국제대회 점수를 챙겼다. 단번에 기준점을 통과했고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자격을 얻었다. 지난 3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김연아는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티켓 3장을 따냈다. 후배 선수 둘을 소치올림픽에 데리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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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와 함께 소치올림픽에 출전하게 될 박소연(좌), 김해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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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노니노'에 맞춰 연기... 의상은 대회 날 '공개'

약속을 지킨 김연아는 이후 후련한 마음으로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준비해왔다. 부담감을 떨쳐내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연기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6시간씩 지상과 빙상을 오가며 훈련을 소화했다. 체력 강화와 함께 새 프로그램을 몸에 익혔다. 여름의 끝자락에 올림픽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한 김연아는 10월에 열리는 그랑프리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에 매진했다.

무리한 훈련 탓일까? 대회를 한 달여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중족골 미세 손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하지 못한 김연아는 그랑프리시리즈 불참을 결정했다. 이후 가벼운 훈련과 치료를 병행하며 감각을 유지했고 10월 말, 부상을 완전히 떨쳐냈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는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B급 대회 출전을 결정했다.

5일부터 나흘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에서 김연아는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한다. 시니어 데뷔 이후 쇼트 프로그램에서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곡을, 프리 스케이팅에서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 곡을 연기해온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시즌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쇼트 프로그램은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 프리스케이팅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에 맞춰 연기할 예정이다. 안무는 7년간 함께 해온 데이비드 윌슨이 맡았다. 특히 아디오스 노니노는 윌슨이 안무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아껴왔던 곡이다. 윌슨은 "강하고 극적인 느낌에서 섬세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갑작스레 변화하는 이 곡을 연기로 표현해낼 피겨 선수는 오직 김연아뿐"이라며 제자의 마지막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김연아는 "현역선수로서 마지막 대회 프로그램인 만큼, 그동안 스케이팅하고 싶었던 음악을 선곡하게 되어 기쁘고, 그만큼 멋진 경기 내용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외 안무나 의상에 관한 정보는 "경기 날 공개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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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데뷔 이후 7년간 함께 해온 김연아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 이들은 마지막 시즌 프로그램까지 호흡을 맞췄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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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 시즌은 시작됐다

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일 오전, 대회 출전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여 명이 넘는 취재진과 팬들을 앞에 두고도 연신 미소를 띠었다. 긴장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올림픽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부담 없이, 결과에 대한 욕심 없이 준비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림픽 시즌이 늦게 시작됐는데 늦어진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고요. 이번 골든 스핀이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인 만큼 욕심 내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경기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게 되는 자리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고요. 아직 올림픽까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번 시합이 끝난 이후에도 훈련 열심히 해서 더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할 당시 김연아는 챔피언의 자리에 서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그 꿈을 이뤘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올림픽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그 자리에 후배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이미 절반의 목표를 달성한 김연아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는 점프와 스텝 등 기술적인 부분을 체크하고 자신의 컨디션을 점검할 계획이다. 김연아가 출전하는 쇼트 프로그램은 6일 오후 9시(한국시각), 프리스케이팅은 7일 오후 11시에 시작된다. 경기는 MBC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by heyuna 2013. 12. 17. 11:25
[기사 보강 : 30일 오후 2시 20분]
 
등록 안 된 손기정의 메달... 그러면 누가 첫 메달?

손기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양정모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양정모는 해방 이후 조국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레슬링 선수다. 한국인이었으나 일본 국적으로 출전한 손기정은 국민들 가슴 속에 '대한민국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각인돼 있지만, 대한체육회가 집계하는 메달리스트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림픽 공식 기록에도 손기정은 손기테이(일본)로 명시돼 있다.

1976년 새해 첫날 <동아일보>에 "민스크 대회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꼭 따내겠다"며 결의를 다진 양정모는 7개월 뒤 몬트리올에서 한국체육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 일본, 중국 등 66개국이 올림픽에 불참했고 한국 선수도 출전하지 않았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참가국이 140개로 늘어났는데도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 6개를 목에 걸었다. 레슬링(2), 유도(2), 양궁(1), 복싱(1)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핸드볼, 농구 등에서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국민들 성원을 등에 업은 선수들은 금 12, 은 10, 동 11, 합계 33개로 종합 4위를 기록했다. 메달 종목도 다양해졌다. 양궁(3), 레슬링(2), 복싱(2), 유도(2), 탁구(2), 핸드볼(1)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김수녕(양궁), 유남규·현정화(탁구) 등 스포츠 스타도 탄생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올림픽을 직접 보고 잊지 못할 기억들을 간직했다.

지금까지 금메달 93개... 하계 70, 동계 23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56년 만에 한국에 마라톤 금메달을 안겨준 '황영조 올림픽'으로 유명하다. 마라톤 외에도 양궁(2), 레슬링(2), 유도(1), 핸드볼(1) 등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꾸준한 선전을 이어갔고, 사격(2), 배드민턴(2), 역도(1) 종목에서도 새로운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로스앤젤레스 이후 1996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한국은 4회 연속 종합순위 10위 이내에 올라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베이징까지 최근 7개 올림픽 중 은메달은 가장 많은 15개를 땄으나 금메달은 가장 적은 7개밖에 따지 못해 결승전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유난히 안타깝게 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종주국인 한국이 3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자존심을 지켰다. 양궁 남·여 단체전과 여자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따 태권도와 양궁이 한국의 메달박스가 됐다. 펜싱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고 레슬링에서 심권호가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 2012 런던올림픽 메달.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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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안겨주는 종목은 비슷했다. 양궁(3), 태권도(2)에 이어 레슬링, 배드민턴, 유도, 탁구에서 금메달 하나씩이 나왔다. 유남규·현정화에 이어 14년 만에 유승민이 탁구에서 우승했고, 문대성이 돌려차기 한방으로 국민적 영웅이 된 것도 이때였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에 교수, 국회의원까지 됐지만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이 한 대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대회다. 13개로 종합 7위 성적을 거뒀다. 예상치 못한 종목에서 금메달이 쏟아졌다. 주인공은 한국의 마린보이 박태환과 야구 대표팀이었다. 체구 큰 서양 선수들이 석권하던 수영에서 메달이 나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는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어 동계 올림픽의 김연아와 함께 인기 광고모델이 됐다. 야구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정식종목에서 퇴출당해 의미있는 금메달로 남게 됐다.

동계 금메달 23개 중 19개가 쇼트트랙

하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 수는 사격의 진종오, 양궁 여자 단체팀을 포함해 지금까지 70개다. 그러면 동계 올림픽에서 올린 한국의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 제1회 동계 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 사모니에서 열렸고, 한국은 5회 스위스 생모리츠 올림픽부터 출전하기 시작했다. 28개국 669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 한국 선수는 3명이었고 메달보다는 출전에 의의를 두었다. 1984 사라예보 올림픽까지 한국은 단 하나 메달도 따지 못했다.

그러다 1988 캘거리(캐나다) 올림픽에 동계 대회 사상 최대인 28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당시 컬링과 자유형스키, 쇼트트랙은 시범종목이었다. 메달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김기훈이 쇼트트랙 15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함으로써 한국이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었다. 이어 3000m에 출전한 이준호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쇼트트랙이 한국에게 금 캐는 노다지가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이 된 1992 알베르빌(프랑스) 올림픽에서 한국은 쇼트트랙 1000m에서 김기훈, 5000m 계주에서 남자팀이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동계 올림픽이 하계 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리던 전통에서 벗어나 1994년에 열린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도 정상에 올랐다. 김기훈이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고 남·녀 500m도 한국 선수가 석권했다. 금메달 4개가 추가됐다. 1998 나가노(일본) 올림픽에서는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 김동성이 활약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남·녀 1000m에서 나란히 우승했고, 여자 계주팀이 금메달을 따 빙상 국가로 입지를 굳혀갔다.

국민들에게 '분노의 올림픽'으로 기억되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미국) 올림픽에서는 2개의 금메달(쇼트트랙 여자 1500m, 여자 계주)을 획득했다. 김동성이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과 편파판정으로 실격 처리돼 금메달을 빼앗겼다. 당시 국민들은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에게 명예 금메달을 제작해 선물하기도 했다. 2006 토리노(이탈리아) 올림픽에서는 새로운 쇼트트랙 영웅이 탄생했다. 안현수와 진선유는 개인 1000m와 1500m를 포함해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따 대회 3관왕을 차지했다.

지난 대회까지 동계 올림픽 금메달은 모두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2010 밴쿠버(캐나다) 올림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전환한 지 7개월 만에 올림픽에 출전한 이승훈이 10,0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것이다. 단짝 모태범과 이상화도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91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 ⓒ 플리커
쇼트트랙 금메달 행진도 이어졌다. 이정수가 1000m, 1500m 종목을 석권했다.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세계 신기록 점수를 올리며 국민들에게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피겨 종목에 출전한 지 42년 만의 일이었다. 2010년 2월 26일, 김연아가 획득한 금메달은 한국체육사상 91번째 올림픽 금메달이다.

100번째 애국가, 런던에서 울려 퍼질까

2012 런던 올림픽에는 245명의 우리 선수가 출전했다. 한국선수단은 10-10, 곧 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 내 진입을 목표로 세웠다. 4년 전 베이징 올림픽(금 13, 종합 7위)과 비교해 달성 가능한 목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92번째 금메달 주인공은 사격의 진종오가 됐다. 그는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기분 좋은 신호탄을 날렸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박태환과 남현희는 29일 새벽 결승 문턱에서 좌절해 밤새 뜬눈으로 지켜본 국민을 안타깝게 했다.

여자 펜싱 플뢰레의 남현희는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종료 4초를 남겨놓고 기습 찌르기를 허용해 역전패한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국민 남동생 박태환은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자유형 200m·1500m가 남아있어 메달 색깔을 바꿀 공산이 크다. 그는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런던 올림픽을 준비했다.
 
29일 새벽, 미국과 4강전을 펼친 양궁 남자팀은 5점 차로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하루 뒤(30일), 여자팀이 일본을 15점 차로 여유있게 따돌리고 단체 결승전에 진출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결승에서 중국을 만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여자팀. 이번 결승 상대도 중국이었다. 결과는 4년 전과 같았다. 한국 승. 1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중국을 따돌린 한국 여자 양궁팀은 또 하나의 금메달을 추가했다. 양궁에서 나온 17번째, 런던올림픽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 2012 런던올림픽에서 100번째 금메달을 안겨줄 후보들.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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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양궁(남·녀 개인), 유도(왕기춘·김재범), 역도(장미란·사재혁), 배드민턴(이용대-정재성), 체조(양학선), 레슬링(정지현), 핸드볼(여자팀), 복싱(신종훈), 태권도(이대훈·황경선) 등이 금메달에 근접해 있다. 폐막식 전날 열리는 태권도에서 백번째 금메달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올림픽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앞으로 일곱번째, 곧 백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누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는 양정모에 이어 한국 체육사에 남게 된다. 최악의 경우 다음 동계 올림픽으로 주인공 탄생이 미뤄질 수도 있다.


by heyuna 2012. 7. 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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