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한국 올 때마다 따뜻한 목욕 하는 것 같다"
[TV리뷰] 12일 방송된 tvN < 백지연의 피플 INSIDE > 히딩크 감독
12.07.16 10:23ㅣ최종 업데이트 12.07.16 10:23ㅣ정혜정(heyuna)
태그히딩크안정환박지성백지연피플인사이드 
지난 3일 거스 히딩크 감독(66, 안지 마하치칼라)이 입국했다. 4일 오전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석한 그는 오후에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해 올스타전 기자회견과 'TEAM 2002' 공식훈련을 했다. <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 > 경기를 앞둔 5일 오전, 히딩크 감독은 tvN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 출연해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로서의 활동과 올스타전에 임하는 각오, 10년째 이어지는 한국 사랑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된 거스 히딩크 감독.
ⓒ 정혜정
태그히딩크

히딩크 감독이 "어제 공식훈련에서 2002년 대표팀 멤버 대부분을 만났는데, 무척 흥분됐다"고 입을 열자 진행자 백지연은 2002년 당시 가장 기대가 컸던 선수가 누구였냐고 물었다.

"이름을 말하기가 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모든 선수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헌신적이었습니다.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선수들도요. 하지만 하나의 예는 들 수 있습니다. 안정환 선수. 2001년 우리가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탈리아 AC 페루자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팀의 실력은 중간 정도로 메이저는 아니지요. 어쨌든 그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선수라,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월드컵에 나갈 정도의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이런 훈련이 익숙지 않은 그는 힘들었을 텐데도 그 혹독한 훈련을 다 해냈습니다."

어제 안정환을 만나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히딩크 감독은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서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살도 빠졌지만 조금씩 체력을 쌓아가기 시작했죠. 안정환은 이탈리아에서의 선수 생활로 약간의 자만심에 빠져있었지만 저는 그를 월드컵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도전하게 한 겁니다. 그가 이 도전을 받아들임으로써 월드컵에서 몇 번의 결정적인 골을 넣을 수 있었죠."

"모든 선수를 존경합니다. 그가 열정적이라면"

히딩크 감독은 2001년 1월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당시 한국 선수들의 열정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집중력도 높았고 시키는 것을 다 해내는 헌신적인 자세를 보고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키우기 시작했다. 

  
▲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 에서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 전 당시 세레머니를 재현한 박지성 선수와 히딩크 감독.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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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박지성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처음 박지성을 봤을 때 그가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선수이기는 하나 엄청난 실력가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그는 놀라운 의지력이 어떤 성공 사례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숨은 보석 박지성을 발견한 히딩크 감독. 선수의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히딩크 감독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히딩크 감독은 "내 역할은 모든 선수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존경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저는 모든 선수를 존경합니다. 그들이 열정적이라면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면 그 한계보다 조금 더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없애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5%, 10%, 15% 더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각 선수의 한계와 능력을 파악해야 하고 이것을 한 팀으로 묶는 역할을 하죠."

선수 생활 15년, 감독은 30년 차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수장을 맡아 4천만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 히딩크 감독. 이후 그는 호주·러시아·터키의 국가대표 감독,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첼시 FC(잉글랜드) 등 명문팀 감독으로 '히딩크 매직'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가 감독으로 명성을 쌓는 데에는 프로선수시절 체육교사로 활동한 것이 도움됐다. 1967년 21세 나이에 네덜란드 지역 프로팀 '데 그라프샤프(De Graafschap)'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히딩크 감독은 자신을 "엄청난 실력을 갖춘 선수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 리그와 미국 리그에서 활동한 히딩크 감독은 많은 감독 아래서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22살 때부터 다이어리에 '감독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저는 프로선수이면서 체육교사였습니다. 불우한 가정의 청소년과 비행 청소년을 지도했는데 이 경험은 나중에 선수들에게 활용할만한 많은 가르침을 줬습니다. 젊은 체육교사로서 예민한 성격을 가진 소년, 소녀들을 다루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이 경험은 나중에 코치로서의 큰 장점이 되었죠. 아이들을 다루는 것과 선수들을 다루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카메라가 따른다는 것뿐, 기본적인 역학은 다 똑같습니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히딩크 감독은 21살에 프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해 15년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마흔 살에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첫 감독을 시작한 히딩크 감독은 55세, 한국 국가대표 감독이 돼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다시 썼다. 성공한 감독, 히딩크. 그는 감독과 선수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하냐는 질문에 '선수'라고 답했다. 

"단순하게 직접 뛰는 것이 제게 더 기쁨을 줍니다. 가르치는 것은 선수로 뛰는 것을 대신하는 것뿐입니다. 결국에 선수들이 노는 것이죠. 아이들이 노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게 바이올린이든 발레든 축구든 야구든, 무엇이든 노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장애인을 위한 꿈의 구장을 짓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히딩크 감독. 그래서였을까.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시각장애인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공간, 히딩크 드림 필드(Hiddink Dream Field)를 짓기 시작했다. 

  
▲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시각장애인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공간인 히딩크 드림필드(Hiddink Dream Field)를 짓고 있다.
ⓒ tvN
태그히딩크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과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이 사랑을 어떻게 갚을지 고민했죠. 그때 저의 연인인 엘리자베스가 '축구라는 아름다운 세계 외에 다른 세계가 있다'며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불우하고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우리가 공감해야 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치른 도시들에 축구장을 설립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림 필드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와서 놀 수 있는 공간입니다. 놀아야죠. 아이들은 반드시 놀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눈이 불편해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002년 월드컵 유치도시에 드림 필드 설립이 다 된 지금, 또 다른 드림 필드 설립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3년 출범한 히딩크 사회복지재단은 2008년 충주성심맹아원을 시작으로 포항·수원·전주·울산·광주·부산·대구·대전·목포·순천 순으로 히딩크 드림필드를 건립하고 있다. '드림 필드 10호'까지 개장했고 현재 전남 순천에 '드림 필드 11호'를 세우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한 감독 생활 유지할 것

"한국에 올 때마다 따뜻한 목욕을 하는 것 같다"는 히딩크 감독. 4천만 국민에게 뜨거운 추억을 안겨준 태극전사들의 리더 히딩크 감독에게도 2002 한일 월드컵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는 1~4년 사이에 (한국과의) 관계가 시들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희미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 분들과 월드컵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아직도 흥분합니다."

  
▲ 트레이드마크인 어퍼컷 세레머니를 보여준 히딩크 감독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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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여부를 묻는 백지연의 질문에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고 어린 선수들에게 늙고 지루한 할아버지로 안 보인다면 계속할 것"이라며 "언제나 사람들의 느낌을 읽으려고 한다. (선수들이) '저 못되고 짜증 나는 늙은이 또 왔네'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은퇴는 안 하겠다.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어퍼컷 포즈를 요구하는 백지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즈를 취하며 "거요?"고 답한 히딩크 감독. 한 번 더 부탁하자 "나는 벌써 했습니다. 찍었나요? 카메라 감독님, 찍었나요?"라고 웃으며 다시 한 번 카메라를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어퍼컷만큼이나 확실하고 유쾌했던 히딩크 감독의 토크쇼 출연, 히딩크 감독의 한국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알찬 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by heyuna 2012. 7. 16. 10:27

"스케이트 날 위에서 집중력 훈련했어요"
[인터뷰]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현인아 선수 어머니
12.07.08 15:45 ㅣ최종 업데이트 12.07.08 15:45


"Hi, My name is Hyun In-Ah(안녕하세요, 저는 현인아입니다)."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가하려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66·안지 마하치칼라)을 향해 당찬 인사를 건네는 이가 있었다. 나경원 조직위원장도 긴장시킨 히딩크 감독 앞에서 싱긋싱긋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 여유를 보인 사람은 스페셜올림픽 출전선수 자격으로 참석한 현인아 선수(15·창동중)였다.
 
말 실수에도 터져 나온 기자회견장의 박수

  
▲ 기자회견에 참석한 현인아 선수가 히딩크 감독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정혜정
 히딩크

"저는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선수 현인아입니다. 내년 대회 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히딩크 감독님! 우리 스페셜올림픽, 응원을, 선수들, 많이 응원하세요."

지난 밤 엄마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한 문장이었지만 회견장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연습을 계속했다. 보고 읽는 것보다 서툴더라도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십 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탓에 약간 실수를 했지만, 현 선수의 인사말이 끝나자 회견장에 박수소리가 터졌다.

히딩크 감독에게 기념배지를 달아주고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단상에서 내려온 현 선수는 "긴장이 됐어, 그런데 좋았어"라고 짧은 소감을 전한 뒤 히딩크 감독에게 받은 사인볼을 들고 짧은 치마를 나풀거리며 기자회견장을 누비고 다녔다. 어머니 허영미(47) 씨는 웃으며 "바지를 입힐 걸 그랬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 히딩크 홍보대사 위촉식'을 마치고 나온 현 선수의 어머니를 만났다.
 
부담스러운 시선 피해 연고 없는 포항으로 이사하기도

  
▲ 히딩크 감독에게 기념배지를 달아 주는 현인아 선수.
ⓒ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히딩크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 학교에 다니는 인아는 1년 유예해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밟고 있다. "원래는 범띤데 친구들이 다 토끼띠여서 인아는 자기가 14살(99년생·토끼띠)인 줄 안다"는 엄마 말을 듣던 인아가 불쑥 "토끼는 꼬리가 짧고 호랑이는 꼬리가 길어요"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인아가 어렸을 때부터 산만했다고 전했다.

"손만 놓으면 어디로 갈지 몰라요. 말로 의사표현을 못하니까 행동으로 다 보여주더라고요. 인아가 5살 때 오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어요. 다칠까 봐 집에서 태우다가 한두 달 연습하고 나서 밖으로 데려갔어요. 인아가 에너지가 굉장히 넘치거든요. 야생마예요. 인라인을 못타는 제가 뛰어서 따라다니기 힘들 정도죠. 그러다 잠깐 시야에서 놓쳤는데 인아가 차도 쪽으로 뛰어들고 있는 거예요. 큰일 날 뻔 했어요."

도시에서는 인아를 자유롭게 키우기 힘들 거라 생각한 허 씨는 남편에게 본사에서 지점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인아를 자유롭게 교육하고 싶었어요. 도시에는 차도 건물도 많아 인아에게 위험하고 무엇보다 사람들 시선이 불편했거든요."

인아는 5살 때 포항으로 내려갔다. 2002 한일 월드컵을 포항에서 겪은 인아. 당시에는 히딩크 감독과 이런 인연이 생길 줄 몰랐다. 2002년부터 2년 간 포항에서 생활한 가족은 인아 학교를 위해 2년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교육 여건은 지방보다는 서울이 낫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 학교에서 마련한 스케이트 단체강습에 참가하게 된 인아. 어렸을 때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덕분인지 스케이트화를 신자마자 빙상장을 종횡무진 누볐다. "스케이트 타는 인아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담임선생님 얘기를 듣고 인아의 산만함을 치료하기 위해 스케이트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케이트 날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인아에게 날은 날카로운 흉기가 아니라 집중력을 길러주는 교구가 됐다.

"스케이트 날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 전정기관을 자극해 평형감각과 균형감각을 길러주고 이 과정에서 집중력도 키울 수 있더라고요. 산만하던 인아가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일반 선수 뒤꽁무니 따라가는 것도 영광"

국내 실내빙상장은 선수들과 코치들이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훈련할 정도로 추운 편이다. 하지만 인아를 가르치러 빙상장에 들어선 코치 선생님은 땀범벅이 된 채 빙상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빙상장에는 활주 방향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인아가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피겨 선수들이 강습받고 있는 라인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인아를 붙잡으러 다니던 코치가 나중에는 반팔 차림으로 밖으로 나오셨어요. 죄송한 마음에 '인아 가르치기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처음이라 그렇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다행이었어요. 못 가르친다고 하실까 봐 내내 걱정했거든요."

  
▲ 기자회견을 마친 현인아 선수가 히딩크 감독의 사인볼을 들고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마스코트 Ra(라?왼쪽) In(인) Bow(바우?오른쪽)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정혜정
 스페셜올림픽

'천방지축 현인아'를 '쇼트트랙 선수'로 만들기 위한 기초 훈련이 시작됐다. 코치 선생님은 '코너를 돌 때는 3번째 블록에서 오른발을 디뎌라' '스피드를 내려면 자세가 중요하다, 자세를 낮춰라' 식의 말보다는 행동으로 인아를 가르쳤다. 집중력이 약하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인아를 위한 맞춤형 교육이었다. 수십 번 반복된 행동을 보여주면 인아도 그 동작을 조금씩 흉내 내기 시작했다.

동천학교 아이스링크장에서 훈련을 시작한 인아는 이후 고려대 실내빙상장을 거쳐 지금은 의정부 실내빙상장에서 훈련 중이다. 여러 빙상장에서 연습했지만, 일반인과 함께 훈련하는 장애인은 인아가 최초다. 기록 경쟁인 쇼트트랙 특성상 홀로 하는 스피드 훈련은 의미가 없다.

일반인과 어울려 타는 최초의 장애인 선수

일반 선수들 사이에서도 실력 좋은 선수 뒤꽁무니를 따라 타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잘 타는 선수는 뒤에 다른 선수들이 있으니까 좋고, 따라오는 선수도 실력이 좋은 선수와 함께 타 기록 향상에 도움을 얻는 것이다. 인아가 일반 선수들과 어우러져 탈 수 있게 된 데는 최태현 코치 선생님 공이 컸다.

"인아가 너희들만큼 스케이트도 잘 타고 대회 나가서 상도 탔어. 장애는 있지만 잘하는 선수다."

장애를 가진 선수와 함께 타게 되면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고 연습하는 데 지장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한마디에 같이 훈련하게 된 일반 선수들도 편견 없이 인아를 대하기 시작했다.

"빙상에 오르기 전에 달리기 지상 훈련을 하거든요. 힘들어서 못 뛰는 인아 앞뒤로 초등학교 동생 둘이 붙더라고요. 누나가 뒤쳐지면 혼날까 봐 누나 곁에서 달려주는 거였어요. 또 외국 다녀오면 초콜릿을 사와서 서로 나눠 먹기도 하고, 그런 정이 있어요. 작은 사회죠. 인아가 스케이트를 통해서 사회생활도 배우고 있어요. 스케이트는 표현을 잘 못하는 인아가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 좋은 역할을 해요."

일반 선수들 못지않은 훈련 강도다. 시합에 출전하지 않을 때도 훈련은 계속 한다. 오후 5시부터 50분 동안 지상훈련으로 몸을 푼 뒤 6시에 빙상장에 들어간다. 50분씩 두 번 스케이트를 타고 30분 동안 마무리 운동을 해야 하루 훈련이 끝난다. 처음에는 몸살도 나고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거뜬히 훈련에 적응한다.

  
▲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처음 탄 현인아 선수는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에 출전한다.
ⓒ 정혜정
 스페셜올림픽

2011 아테네 하계 스페셜올림픽에 롤러스케이트 선수로 참가해 금메달을 땄던 현인아. 하지만 이제 롤러스케이트는 취미로 남겨놓고 쇼트트랙에 몰두하기로 했다. 쇼트트랙 자세가 망가질 수 있다며 코치 선생님이 만류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29일 개막하는 평창 스페셜올림픽에 쇼트트랙 500m, 700m, 1000m에 출전할 예정이다.

"저는 다른 대회보다 스페셜올림픽을 특히 좋아해요. 출전하는 선수들 모두 다 인아 같은 아이들이거든요.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아요. 자식들 어떻게 키우는지 다 알기 때문에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아서 마음이 편해요."

지하철에서도 계속되는 불편한 시선들

현 선수의 어머니는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 딸을 키우면서 사람들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인아랑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어요. 장애인우대권을 뽑고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쫓아와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받는 걸, 왜 뽑아 가냐'고요. 할머니께 '할머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할머니만 받는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지하철을 탔어요. 그런데 같은 칸으로 들어오셔서 또 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도 가득 차 있는데... 그래서 '저희 애가 장애를 가졌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분들도 우대권을 받지만 장애인도 동반 1인까지 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제야 큰소리로 '아, 몰랐지' 하시며 다른 칸으로 넘어가시더라고요. 지적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일반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아요. 특히 할머니들은 멈춰 서서 끝까지 쳐다보세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모든 면에서 날이 서 있으면 인아 교육하는 데도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궁금하신가 보다'하고 넘긴다고 전했다.

주위에서 "스페셜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전국체전에서 메달 따면, 나중에 그거 가지고 뭐할 건데? 계속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배워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인아를 위해 꾸준히 운동을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스타도 함께하는 스페셜올림픽

  
▲ 평창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김연아 선수와 히딩크 감독.
ⓒ 정혜정
 김연아

"소외 받는 사람들(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일반인들보다 적은 편이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내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이 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데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포츠는 그 분야 엘리트들만 모여서 하는 게 아니다. 스페셜올림픽은 지적 장애인과 소외된 이들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다."

히딩크 감독이 스페셜올림픽을 적극 후원하게 된 이유다. 일반 올림픽보다 미디어의 관심이 적은 스페셜올림픽. 지난달 21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방한기자회견'에서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이기도 한 김연아(22·고려대) 선수도 관심을 촉구했다.

"많은 분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해주신 점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용기를 내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응원과 큰 박수를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인아의 어머니는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조용하고, 그렇지 않아도 될 곳에서 잘못된 관심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와 히딩크 감독, 그리고 김연아 선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상통하는 점이 많다. 스포츠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있는 스페셜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노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by heyuna 2012. 7. 8. 17:57


히딩크의 뜻밖의 선택?... "충분히 예상한 일"
[현장] 평창 스페셜올림픽 홍보 나선 한일월드컵 영웅

12.07.05 08:53 ㅣ최종 업데이트 12.07.05 10:19


박태환은 수영, 이용대는 배드민턴, 장미란은 역도 국가대표 선수다. 이들은 60억 세계인의 대축제인 올림픽에 출전해 실력으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본 선수들이다. 이들이 시상대 정상에 선 광경을 지켜본 국민은 그들의 위대한 성취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들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겪어보지 않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숱하게 접했기 때문이다.

우정령(21·은평대영학교)도 국가대표 선수다. 2012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에는 수영 선수로 출전했고, 내년 1월 29일 개막하는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에는 스노우슈잉(snowshoeing·스노우슈즈를 신고 눈 위를 달리는 경기) 종목에 참가할 예정인 멀티 플레이어다. 현인아(15·창동중) 선수도 마찬가지다. 2011 아테네 하계 스페셜올림픽에서는 롤러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했고,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에는 쇼트트랙 스케이팅 선수로 출전한다. 이들은 한 종목도 아닌 여러 분야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다.

'특별한' 올림픽을 위한 '특별한' 사람의 방한

스페셜올림픽이 '특별한'(special) 이유는 지적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스포츠 축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을 알리고, 이들이 출전하는 2013 평창동계 스페셜 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특별한' 사람이 한국에 왔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66·안지 마하치칼라)이 바로 그다.

  
▲ 나경원 조직위원장과 히딩크 감독이 위촉식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정혜정
 히딩크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는 4일 오전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히딩크 감독을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이 회견에는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나경원 위원장과 히딩크 감독, 그리고 우정령·현인아 선수가 참석했다.

지적 발달 장애 딸을 둔 나 위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때 떨린 적이 없었는데 히딩크 감독님께서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를 맡게 됐다는 것을 알리는 오늘 이 자리는 떨린다"며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 히딩크 감독님이 홍보대사를 맡아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인사말을 전했다.

레알마드리드(스페인), 첼시FC(잉글랜드) 등 명문팀과 네덜란드· 한국· 호주· 러시아· 터키의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온 히딩크 감독. 세계 프로축구 무대를 종횡무진했던 그가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를 수락한 것은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히딩크가 현실로 만든 '장애인 전용 축구장'

그러나 히딩크의 경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고국 네덜란드에서 장애인올림픽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국가대표 감독이 된 뒤에는 국내 각종 장애인 시설들을 찾아다니며 지원 활동을 했다.

  
▲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된 거스 히딩크 감독.
ⓒ 정혜정
 히딩크

그는 오래 전부터 네덜란드에 히딩크 재단을 설립해 전세계 불우 청소년이나 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사업을 펼쳐온 사람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의 성원에 감동받은 그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2003년 한국에도 히딩크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2008년 충주성심맹아원을 시작으로 포항·수원·전주·울산·광주·부산·대구·대전·목포·순천 순으로 시각장애인축구장인 히딩크 드림필드(Hiddink Dream Field)를 건립하고 있다. 그가 장애인을 위한 축구장을 건립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외 받는 사람들(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일반인들보다 적은 편이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내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이 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데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축구는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완벽한 스포츠다. 한국 대도시에 드림필드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 말하는 히딩크 감독. 한일월드컵이 끝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그의 한국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한국인에게 당부할 말이 무언지 묻는 질문에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한국인의 정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따로 격려 메시지를 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인은 한가지 목표가 정해졌을 때 100% 이상으로 달성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당시 선수들을 보며 '자신감을 얻고 정신력까지 겸하면 한국인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

"스포츠는 엘리트만 하는 게 아닙니다"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가 된 만큼 최선을 다해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을 홍보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히딩크 감독. 그는 스페셜올림픽을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스포츠는 그 분야 엘리트들만 모여서 하는 게 아닙니다. 스페셜올림픽은 지적 장애인과 소외된 이들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을 적극 후원할 예정입니다."

  
▲ 히딩크 감독이 현인아 선수가 달아준 배지와 우정령 선수가 걸어준 목도리를 하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 중이다.
ⓒ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히딩크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에 함께하게 된 히딩크 감독에게 기자회견에 참석한 선수들도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제가 존경하는 히딩크 감독님과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축구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대회가 될 수 있도록 홍보대사인 히딩크 감독님이 많은 도움을 주실 거라 믿습니다." (우정령 선수)

"저는 스페셜올림픽 쇼트트랙 선수 현인아입니다. 내년 대회 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히딩크 감독님! 우리 스페셜올림픽, 응원을, 선수들, 많이 응원하세요." (현인아 선수)

선수들의 서툰 인사말이 끝나자 기자회견장에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통역을 통해 인사말을 전해들은 히딩크 감독도 이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직접 사인한 축구공을 선수들에게 선물했다. 선수들도 화답했다. 히딩크 감독은 현 선수가 달아준 배지와 우 선수가 걸어준 목도리를 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슬로건을 외쳤다.

"Together We Can!(함께하는 도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by heyuna 2012. 7. 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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