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아이스쇼에서 18년 간의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한 김연아가 오랜만에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8일 오전 서울시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세빛둥둥섬에서 열린 프로스펙스 런칭쇼에 참석한 김연아는 300여명의 팬들과 만나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지난 9월 고려대 일반대학원에 입학해 체육학(Physical Education)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연아는 현재 학생과 코치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9월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스포츠 경영학과에 들어갔는데 이제 시작한 지 몇 주 안 됐어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인데, 일단 대학원 생활에 적응하는 게 제일 먼저인 것 같아요. 공부하면서 관심이 더 많이 가는 분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2주 전 생일을 맞았던 김연아는 "생일에도 학교에 갔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학교 수업과 저의 생일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학교에서 수업을 들은 뒤 푹 쉬며 생일을 보냈다"고 답했다.

"미래에도 후배 선수들과 함께 하고파"

일주일에 세 번 학교에 가는 대학원생 김연아는 수업이 없는 날에는 태릉선수촌에 가서 후배들의 연습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몇 달 전부터 틈틈이 하고 있는데요. 안무나 스케이팅 스킬 위주로 도와주고 있어요. 많이 걱정을 했는데 후배들이 잘 따라와주고 있어요. 시합에 출전한 선수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만큼 더 많이 도와줘야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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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 중인 김연아 선수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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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 키즈'의 활약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김연아와 함께 소치올림픽에 출전했던 박소연(17·신목고)은 지난 3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76.61점을 획득, 9위에 올랐다. 김연아를 제외하고 시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위 안에 입상한 한국 여자 선수는 박소연이 처음이었다.

같은 대회에 출전한 김진서(18·갑천고)는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는 성과를 얻었다. 지난달 말, 주니어 선수 이준형(18·수리고)은 한국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서 주관하는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남녀 선수들의 고른 활약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피겨스케이팅 '팀코리아'가 출전할 가능성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김연아는 후배들의 빠른 성장에 일방적인 기대감을 보내기보다는 조용한 응원을 부탁했다.

"지금 후배 선수들이 정말 잘 해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그냥 선수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0년 뒤의 꿈을 묻는 질문에 김연아는 "꿈이요? 꿈이라기 보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 있는데요. 후배 선수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10년 후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서 저도 어떻게 지낼지 궁금한데요. 일단 피겨와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요? 후배 선수들과 같이 있고 싶어요."

10년 뒤의 일상을 묻는 질문에도 김연아는 국가대표 출신답게 후배 선수들을 먼저 떠올렸다. 이외에도 김연아는 사소한 것을 묻는 질문에 일명 '어뷰징' 기사를 의식한 탓인지 속시원히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 등을 묻는 질문에 김연아는 "요즘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프로그램명을 집요하게 묻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본다"고 답했다. 자신이 특정 프로그램이나 영화 제목 등을 거론하면 자칫 비슷한 기사가 동시에 수백 개씩 쏟아질 걸 의식한 듯했다.

또 은퇴 후 가장 원없이 해보고 싶었던 것으로는 "잠 자는 것"을 꼽았다.

"제가 잠이 많은 편이 아닌데요. (은퇴하고 나니까) 많이 자더라고요. 자다보니까 많이 자게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많이 잘 수 있는지 몰랐어요. 최근에는 12시간 동안 잔 적도 있어요. 다른 분들에게는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저는 오래 자는 체질이 아니었는데, 잘 수 있더라고요(웃음)."

근황토크, 선수와 팬이 함께한 텔레파시 게임, 팬 사인회 등으로 구성된 이번 행사는 반차를 내고 참석한 직장인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온 아주머니 등 300여 명의 팬들이 참석했다. 

김연아는 자신의 팬들 앞에서 "올해 남은 3개월 동안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재밌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며 "대학원 생활을 막 시작한 만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전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by heyuna 2014. 9. 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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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환 선수.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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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여진 훈련을 충실히 소화했다. 심장 맥박수는 230까지 치솟았고, 고된 훈련으로 피를 토하는 것은 예사였다. 올림픽을 앞둔 마무리 연습에서 세계신기록보다 좋은 기록을 네 차례나 얻었다. 특히 시합 전날 연습에서는 세계신기록보다 2~3초 앞선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금메달은 당연하다 생각했고 올림픽이 끝나도 뜨거운 관심과 탄탄한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 기대했다.

2년 전,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한 박태환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었다. 자유형 400m의 전설을 꿈꿨던 박태환은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세계기록 경신이라는 목표 아래 장이 꼬일 듯한 고통 쯤은 거뜬히 참아냈다. 2012년 7월 28일, 자유형 400m 예선에 출전한 박태환은 3:46.68을 기록하며 조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지만 부정 출발로 실격됐다. 

경기 직후 마이클 볼 코치의 강력한 항의에 국제수영연맹(FINA)이 실격 처리를 번복하고 박태환을 결승전 명단에 올렸으나 이미 선수의 컨디션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국제수영연맹의 공식입장이 나온 것은 결승을 고작 5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실격 판정 번복 이후 '은메달', 꼬여버린 2년

실격 판정으로 '멘붕'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때는 평소같으면 피로를 풀고, 결승에 대비해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낮잠은 커녕 마인드컨트롤조차 힘겨웠던 박태환은 결국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고, 목표했던 세계신기록은 달성하지 못한 채 올림픽을 마쳐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400m, 200m 은메달이라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지만 선수 자신에게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이었다. 

당시 몸과 마음 모두 지쳐버린 박태환은 자신의 경기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지만 "메달리스트들은 폐막식이 끝날 때까지 남아달라"는 대한체육회의 요청에 귀국 날짜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고, 도망을 쳐서라도 돌아가고 싶다'던 박태환은 결국 예상보다 나흘 뒤에야 인천공항에 내릴 수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박태환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다. 박태환 입국 일주일 후,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가 열렸다. 주최측인 대한수영연맹은 이벤트 형식으로 열리는 국가대표 시범경기에 박태환이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박태환 측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뒤이어 연맹의 포상금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런던올림픽에서 2개의 은메달을 획득한 박태환은 수영연맹으로부터 5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받게 되어 있었지만 연맹은 이 포상금을 박 선수에게 지급하는 대신 다이빙 유망주를 지원하는 데 썼다. 문제는 선수 측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지 않은 데 있었다. 2013년 6월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태환은 이와 관련해 연맹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저는 기사를 통해서 알았어요. 저에게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포상금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베이징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때도 받고나서 바로 기부를 했어요. 베이징올림픽 때도 받고나서 대표팀 코치진이나 개인 전담팀, 꿈나무들에게 다 기부를 했어요. 솔직히 저 개인적인 섭섭함은 없었어요. 단지 기사를 통해 알게 되니까 서운함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이빙 꿈나무 선수들 훈련하고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하니까 좋게 생각했죠."

런던 현지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선수의 멘탈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치료받지 못했다. 연맹과 협회는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다. 올림픽 이후 제대로 된 훈련 장소를 구하지 못한 박태환은 체육고등학교와 일반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수영장에서 짬짬이 훈련해야 했다. 국가대표 훈련량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박태환은 연습량 부족으로 2013 바르셀로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불참을 결정했다. 박태환을 지도하던 볼 코치는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훈련할 장소를 찾지 못해 세계대회에 나서지 못한다는 황당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도 연맹의 도움이나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뒤, 후원사와의 계약이 만료됐다. 박태환은 "운동선수에게 후원사는 자존심과 같다"며 "후원사가 있을 땐 몰랐지만 없으니까 내 가치가 떨어진 듯한 기분"이라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자비로 전지훈련 비용을 충당해오던 박태환에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2013년 6월, 박태환의 팬들이 '국민스폰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7000여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고 이를 선수에게 전달했다. 한달 뒤인 7월 18일, '삽자루 선생님'으로 알려진 수학 강사 우형철 SJR기획 대표가 1년 간 5억 원 지원을 약속하며 박태환과 후원 계약을 맺었다. 이들의 도움과 인천 상공회의소의 후원으로 박태환은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날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 선발전 대회 MVP로 우뚝

박태환이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연맹이 또 한 번 문제를 일으켰다. 수영연맹이 촌외훈련 규정을 잘못 적용해 박태환을 국가대표 강화훈련 참가자 명단에서 누락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박태환은 한 달치 훈련수당을 받지 못했다. 보호하고 협력해야 할 선수와 연맹 사이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훈련하던 박태환이 7월 초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위해 귀국했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2014 MBC배 전국수영대회'에서 박태환은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100m·200m·400m를 포함해 개인혼영 200m·400m, 단체전 계영 800m에 출전해 모두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6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를 차지한 박태환이 오는 9월 개막하는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이를 악무는 상황을 맞았다. 지난 18일 우형철 대표와의 후원 계약이 만료된 것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을 결심한 박태환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부활은 절실하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새로운 후원사가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선수 최초로 남자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지만 지금은 연맹의 보호도 대기업의 지원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홀로 긴 터널을 걷고 있는 박태환은 인천아시안게임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오는 30일 호주로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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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 전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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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런던에서의 억울함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는 '여름 소년' 박태환과 달리 개운치 않은 판정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한 선수가 있다. '겨울 소녀' 김연아의 이야기다.

금메달을 바라보고 출전한 시합은 아니었다. 10년 넘게 간직해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꿈은 4년 전 이미 달성한 상태였다. 후배들을 위해 선수생활 연장을 결심했고 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꿨다. 선수로서 치르는 마지막 시합의 목표는 아름답게 퇴장하는 것이었다. 실수없이 프로그램을 소화했고 '만족스럽게 마쳤다' 생각했다. 디펜딩챔피언의 클린 경기. 그러나 심판의 판정은 선수의 경기력을 제대로 따라 오지 못했다.

선수의 어머니는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을 줬다고 생각하자"며 딸을 위로했고 김연아는 "내가 인정하고 안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무 미련도 없다. 끝이 나서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선수 측의 입장과 달리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피겨스케이팅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경기 다음날 5대 일간지 1면은 관련 기사로 도배됐다.

국제빙상연맹에 공식 제소, 결과는 기각

경기 직후 국제 비영리 사회운동을 위한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서 진행한 재심사를 요구하는 청원(Demand Rejudgement at the Sochi Olympics)에는 반나절 만에 100만 건이 넘는 서명이 접수됐다. 경기는 끝났지만 심판 판정에 대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김연아의 팬들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공식 제소를 요구하며 1인 시위와 집회, 신문 광고 게재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지 정확히 한 달째 되던 날,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심판 구성에 대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며 입장을 밝혔고 지난 4월 11일,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국제빙상연맹에 공식 제소(Complaints)했다"고 발표했다.

체육회의 발표 직후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로서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한 데 대해 그 결정을 존중하며,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심판으로 참여한, 전 러시아피겨연맹 회장이자 현재 러시아피겨연맹 사무총장인 발렌틴 피세프의 부인 알라 셰코프세바가 경기 판정 직후 러시아 소트니코바 선수와 포옹을 하는 등 중립성을 잃은 모습을 보인 점을 중점으로 제소했다. 그러나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는 지난달 6월 4일 "소트니코바와 심판의 포옹은 자연스러운 매너였다"며 이를 기각했다.

빙상연맹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 않겠다"

기각 판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할 수 있지만 빙상연맹은 상임이사회를 열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체육회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말로 항소할 수 있는 기한이 마감됐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있지만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박종명 빙상연맹 사무국장은 "제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희들은 안 합니다. 팬들의 입장 충분히 이해는 해요. 그러나 몇몇 팬들이 김연아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이렇게 하시는데 크게 보셔야죠. 대회도 끝났고 국제빙상연맹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했는데 그 부분이 기각이 됐고. 카스(CAS)에 간다고 해서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느냐, 취약하다고 봅니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국제스포츠 회원국들과의 대립 관계나 평창올림픽 개최국가로서의 위상 등을 생각할 때, 또 2002년 김동성 사건, 2004년 양태영 선수 사례를 봐도 카스에 갔지만 안 됐다(금메달을 찾아오지 못했다)"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가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안톤 오노(미국)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실격판정을 받은 김동성과 2004 아테네올림픽 기계체조 개인종합경기에서 편파판정으로 폴햄(미국)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양태영이 각각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기각돼 금메달을 찾지 못했다.

2004년 당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는 "한국 선수단의 항의가 경기 종료 후에 제출됐다"며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기각 판정을 받은 양태영은 "베이징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결의를 다졌지만 김연아에게는 다음 올림픽이 없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시니어 데뷔 이후 거의 매시즌 크고 작은 불리한 판정으로 불이익을 받아왔다. 특히 2007-2008시즌 세계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한 김연아는 경기 당일 고관절부상이 심해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최악의 컨디션에서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고 123.38점이라는 프리스케이팅 1위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으나 쇼트프로그램과 합한 총점에서는 일명 '줄세우기 점수'로 인해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첫 점프 실패 후 10초 넘게 활주만 했던 아사다마오가 예술점수(PCS) 감점을 받지 않아 우승을 차지해 편파판정 논란이 일었다.

불리한 판정에도 선수의 미래를 위해 팬들은 어떠한 항의도 할 수 없었다. 연맹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두 해가 흘렀고 선수의 마지막 무대, 소치올림픽이 열렸다. 결국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심판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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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체육회 건물에 위치한 대한빙상경기연맹 사무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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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보호보다 평창올림픽 개최국 위상이 먼저

지난 3월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당시 김연아의 매니지먼트 올댓스포츠는 "이번 제소가 그동안 수차례 반복된 한국선수들의 판정논란과 불이익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빙상연맹 측은 유독 우리 선수에게 집중되는 부당한 대우를 처단하는 것보다 2018 평창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위상과 국제 스포츠 회원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모양새다. 연맹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지만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빙상을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 드렸습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실망하는 국민은 없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치른 시합에서 부당한 판정을 받았을 때, 선수를 보호해야하는 연맹과 협회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국민이 실망하는 지점은 선수가 아닌 연맹에 있다.


by heyuna 2014. 7. 25. 21:55
지난달 21일 새벽, 소치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논란 속에 끝이 났다. 클린 경기에도 불구하고 김연아는 2위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편파 판정, 승부 조작 논란이 꼬박 한 달간 이어졌다. 

판정 결과에 대해 항소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인 21일 오후, 대한체육회(김정행 회장)와 대한빙상경기연맹(김재열 회장)이 2014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의 판정 결과에 대해 국제빙상연맹(ISU) 징계위원회에 제소(complaints)하기로 결정했다.

대한체육회 및 빙상연맹은 "이번 판정의 부당함을 공식화함으로써 다시는 국제 빙상계와 스포츠계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억울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제소 결정은 한 달 여 동안 체육회와 국내의 피겨 국제심판 및 연맹관계자, 전문 국제변호사의 법률 자문 등을 거쳐 결정됐으며 국제연맹과 국제심판들과의 관계 역시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대한체육회는 설명했다. 

김연아 선수에 대한 판정 결과가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판단해 다양한 대응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왔다는 것이다.

절차상 '항의(Protest)'와 '항소(Appeal)'가 가능하려면 ①심판의 구성 및 자격 ②점수 합산의 오류 및 ③기타 사항(선수자격, 장비·규정 등 위반)에 한정되는데 김연아 선수 건은 심판이 내린 판정(점수)의 적절성 여부에 관한 것이어서 항의나 항소 요건이 안 된다는 것이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의 설명이다.

반면 윤리규정 위반과 관련해서는 ISU 규정(Article 24)에 따라 사건 인지 후 60일 내에 징계위원회 제소(Filing of Complaints)가 가능하므로, ISU에 징계위원회 소집과 조사 착수를 요청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윤리'규정을 위반했다고 문제 삼는 부분은 세 가지다.

첫째는 이번 경기 저지(Judge)로 참여한 알라 셰코프세바의 내력이다. 전 러시아피겨연맹 회장이자 현재 러시아피겨연맹 사무총장인 발렌틴 피세프의 부인인 알라 셰코프세바는 경기 판정 직후 러시아 소트니코바 선수와 포옹을 하는 등 중립성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는 저지(Judge) 중 한 명이었던 유리 발코프(우크라이나)의 자격정지 경력이다. 유리 발코프는 1998 나가노올림픽 당시 동료 캐나다 심판에게 담합을 제의한 바 있으며, 해당 사실이 4년 후인 2002년에 발각돼 1년간 자격정지를 받은 바 있다. 

마지막으로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은, 해당 경기에서 그 외 심판들 간의 편파 채점 의혹이 불거진 것으로 판단했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항소나 제소가 ISU 및 피겨 국제 심판진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져 우리 선수들이 국제경기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어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무엇이 우리 국민을 위한 최선인가를 고민한 끝에 예상되는 일부 문제에도 불구하고 징계위원회에 제소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아 "체육회와 빙상연맹 결정 존중" 

대한체육회의 제소 결정이 발표 난 세 시간여 뒤, 김연아가 "체육회와 빙상연맹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김연아의 입장은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ISU의 징계위원회에 제소한 직후에 체육회와 빙상연맹에 전달됐다. 

김연아는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를 통해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로서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한 데 대해 그 결정을 존중하며,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전했다. 

한편 올댓스포츠는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어떤 방법이 우리 국민을 위한 최선인가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듯이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은 김연아 혼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어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 빙상계와 스포츠계에서 한국선수들에게 억울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듯이 이번 제소가 그 동안 수차례 반복돼온 한국선수들의 판정논란과 불이익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by heyuna 2014. 3. 21. 20:09
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18일이 지났다. 영광의 순간을 만끽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박승희-세영 남매가 쇼트트랙 500m에서 동반 우승을 차지했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일반부 1000m 경기에 출전한 이상화는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남자일반부 1500m에서 우승한 이승훈은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대회를 마쳤다. 

'올림픽 특수' 예능에 진출한 국가대표 선수들

4년간의 노력을 쏟아 붓고 온 선수들은 밀려오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국가대표로서 주어진 마지막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방송사 인터뷰, 선수상 시상식, 포상금 수여식, 대통령과의 오찬 등 짜인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였다. 

올림픽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한 선수도 있다. 이상화·박승희·조해리는 짬을 내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아빠!어디가?2> 녹화를, 이상화는 인기 예능 <무한도전> 촬영을 마치기도 했다. 주형준·김철민과 함께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승훈은 13일 저녁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했다. 올림픽 영웅의 또 다른 모습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나들이를 마친 선수들이 다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스케이트화를 조여 매고 세계선수권 대비 훈련을 시작했다. 폭풍 같았던 한 달이 지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국민이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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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표정의 김연아 김연아 선수가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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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올림피언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데 비해, 의외의 폭풍에 휩싸인 선수가 한명 있다. 김연아(24·올댓스포츠)다. 선수 생활 내내 전국민적인 관심과 기대를 어깨에 짊어진 채 빙판 위에 올라야 했던 그는 얼음 밖을 나선 뒤에도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일정이었던 청와대 오찬을 가진 다음날, 온라인 연예전문매체 <디스패치>가 김연아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하루 종일 김연아의 열애와 관련한 단어들로 도배됐고 각종 인터넷사이트에는 관련 게시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날 하루 '김연아'가 제목에 포함된 기사는 총 2229건, '피겨 여왕'이 포함된 기사는 1239건으로 집계됐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양의 기사가 출고된 만큼 중복 기사도 과장된 내용도 많았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소식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네티즌은 댓글로 기자들은 기사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실어 날랐다. 미국 매체 <야후 스포츠>가 김연아와 군인 신분인 김원중(30·대명 상무)이 군 휴가에 맞춰 데이트를 즐겼다고 보도한 것을 몇몇 국내 매체에서 오역한 것이 화근이 됐다. 

군 휴가를 밀월 여행급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루머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김원중 선수와 가족의 신상 털기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김연아의 남자 친구로 지목된 김원중 선수 관련 기사는 6일 하루 동안 1966건이 생산됐다.

7일 오후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는 "여러 매체와 SNS, 인터넷 댓글 등에서 사생활을 침해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으로 인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가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악의적인 글을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올릴 경우 명예훼손 차원에서 신속하게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그가 필요한 건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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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여왕' 김연아가 2월 21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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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당시 메달 시상식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선 김연아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달리기만 해서요. 여유를 갖고 새로운 삶을 찾아야죠. 그동안 너무 감사드렸고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복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행복을 얘기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 6일 열애설이 터진 이후 일 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연아의 연애'는 핫한 키워드 중 하나다.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은 마감했지만 김연아를 향한 국민적 관심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연아에게 자유는 닿지 않을 희망 사항인 걸까?

사실 김연아는 훨씬 전부터 자유롭길 원했다. 김연아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힘든 훈련을 견뎌왔다. 하지만 그는 밴쿠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섣불리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왜 내가 지금 스케이트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으며 훈련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2010년 3월,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김연아는 2011년 1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내 선수생활은 끝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금메달을 따고 한 달 뒤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2010년 3월)에 나가라는 거예요. 그전에 출전 약속은 되어 있었어요. 올림픽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라 의욕도 없고 연습도 못하겠어요. 괜히 나갔다가 망신만 당할 수 있고요. 제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어쨌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1년 뒤인 2011년 4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 또한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 년 이상 안 나가겠다고 싸웠죠. 주변에서 워낙 설득을 하니 어쩔 수 없었는데, 나가기로 해놓고도 후회하고 포기하고 싶었지요. 주위에서 안 나가면 매스컴이나 팬들, 국민들이 저를 외면할 거라고 했어요. 아직도 전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러는지." (2011.11.21 <조선일보> 인터뷰 중)

오로지 선수의 의지만으로 진행된 선수 생활 연장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이 대회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아리랑을 포함한 한국 전통음악을 편집해 사용했다.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바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한동안 얼음을 떠났던 그가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했고, 지난 2월 올림픽에서 은퇴 무대를 마쳤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

쇼트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와 프리스케이팅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얼음 위에 선 김연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7분 동안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그가 마침내 얼음 위를 걸어 나왔다. 

아디오스 김연아. 18년간 선수로 지내며 자유롭지 못했을 그. 셀러브리티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의 연기로, 그의 존재 자체로 희망을 얘기하던 나날이 많았다. 이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제는 조금 물러서서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 아디오스 김연아.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다.


by heyuna 2014. 3. 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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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메달 받은 선수단 "화이팅"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김아랑, 조해리, 심석희, 공상정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대한체육회가 준비한 초콜릿 메달을 목에 걸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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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의 축제가 끝났다. 축제를 빛낸 영웅들이 돌아왔다. 지난 25일 오후 3시 40분,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장은 수백 명의 취재진과 팬, 선수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기수 이규혁을 선두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선수단이 차례로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대기 중이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 등이 선수들에게 다가가 '국민행복 금메달'을 전달했다. 대한체육회가 격려와 감사의 표시로 준비한 초콜릿 금메달이었다. 선수단은 깜짝 선물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웃음을 찾은 뒤, 초콜릿 메달을 입에 물고 사진을 찍었다.

'센터'의 주인공은 김연아도 이상화도 아닌...

이날 준비된 초콜릿 메달은 지름 9cm, 두께 1cm 크기였다. 특히 이규혁 선수에게는 최다 올림픽 참가를, 김연아 선수에게는 은퇴를 기념하는 의미로 다른 선수들 것보다 3cm 더 큰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깜짝 이벤트와 기념 촬영을 끝낸 선수단과 임원들은 인천국제공항 1층 밀레니엄홀 야외무대로 자리를 옮겨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했다. 첫째 줄은 역시 메달리스트들의 몫이었다. 김연아와 이상화가 양쪽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빙상연맹 회장이 앉았다. 두 선수 옆으로는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이 나눠 앉았다.

해단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다소 엄숙하게 진행됐다.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답지 않게 행사 내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임원들의 말씀이 시작됐다. 최종삼 선수촌장의 성적보고를 시작으로 김정행 회장의 식사, 유진룡 장관의 치사에 이어 김재열 단장의 답사 그리고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인사까지. 14분 동안 격려와 감사의 말들이 오갔다. 긴 비행으로 피곤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말씀'의 시작과 끝에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이후 평창 소개 영상이 상영됐고 주요 선수들과 임원들이 나와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소 지루했던 해단식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인터뷰 시작 전, 진행자는 시간 관계상 10분간 다섯 개의 질문만 받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미숙한 진행 이어져

첫 번째 질문부터 식상했다.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는 김연아에게 "갈라쇼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박승희에게 "500m 동메달을 딴 이후 가장 기뻐해 준 사람이 혹시 '그 분'이 아닌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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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다짐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 및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에서 이상화, 김연아, 심석희 등 선수들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등이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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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갈라쇼까지 소치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갈라에서도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감정들은 없었던 것 같고요. 마지막이긴 하지만 앞으로 예정된 공연도 있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연아의 대답이 끝나고 박승희가 마이크를 잡으려는 순간, 불쑥 다른 질문자가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에 유 장관이 '박승희 선수 차례'라며 손짓으로 제지했고, 박승희가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 분은 아니었고요. 저희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 너무 멀리 있어서요. 제가 느끼기에는 같이 있었던 쇼트트랙 대표팀이 제일 기뻐해주셨던 것 같고, 그 기쁨이 제게도 가장 크게 느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질문자는 유 장관과 김 단장에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건립 예정인 빙상장을 '김연아 빙상장'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김연아 빙상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당사자인 김연아는 불편한 웃음을 지었고, 현장에 있던 일부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유 장관은 "올림픽 공원에 그 시설을 짓는 것은 국가 기밀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다. 그 시설의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금부터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 나가야 할 사항이다. 의견은 잘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김연아 선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스케이터"라며 "빙상연맹회장으로서 정부가 하는 일에 손을 맞춰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질문도 김연아에게 향했다. 팬들이 자신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인정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냐는 물음에 김연아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힘들게 준비한 만큼 다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을 했고요. 마지막 대회인 만큼 후련하게 끝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고, 또 많은 분들이 제가 경기한 것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뒷줄에 앉은 모태범, 윤성빈뿐 아니라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며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은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 주형준, 김철민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을 마치고 온 이규혁까지. 아직 입을 열지 못한 선수가 많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선수 이름을 모르는 질문자와 대답을 끊는 진행자

마지막 질문 기회를 잡은 사람은 한 방송사 PD였다.

"박상희... 박상희 선수에게 질문을 하겠는데요. 평창 올림픽이 이제 4년 남았는데 자신의 포부가 있다면요? 심석희 선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500m 결승전에서 선두로 달리다 뒤에 오던 선수에게 걸려 넘어진 박승희. 일어나서 다시 달리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넘어졌음에도 끝까지 레이스를 펼쳐 감동을 안겨 준 박승희. 그리고 끝내 동메달을 목에 건 박승희. 이날 당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1000m에서 금메달을 따 낸 박승희. 질문자는 가장 기본적인 선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박승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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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 인파 가득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한 가운데, 취재진과 팬들이 입국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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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이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제가 평창올림픽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해서 가게 된다면 큰언니 역할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심석희가 마이크를 건네받는 순간, 진행자가 말했다.

"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기념 촬영을… 아, 네 계속해서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요. 이번 올림픽도 좋은 경험이 됐는데, 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4년 뒤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심석희)

미숙하고 불편했던 기자회견이 끝이 났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의 소감도, 마지막 올림픽을 끝낸 이규혁의 심정도 듣지 못했다. 선수 생활 2년 만에 올림픽에서 썰매 종목 한국 역대 최고 순위를 갈아치운 윤성빈 선수의 사연 또한 들을 수 없었다.

축제의 주인공들은 입을 다문 반면 행사에 참여한 정부, 협회, 연맹 임원들은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각자에게 주어진 2~3분의 발언 시간을 아낌없이 썼다. 식사, 치사, 답사로 구분해 진행했지만 이들이 말한 내용은 비슷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평창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선수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언제까지?

2년 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단은 인천공항에서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뒤 올림픽 특집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로 이동했다. 이날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렸지만 방송은 예정대로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다. 선수들은 빗물이 고인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선수단과 대통령의 오찬은 메이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치러지는 행사가 됐다.

6년 전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은 해단식을 마친 뒤 퍼레이드에 참가해야 했다. 대한체육회는 박태환과 장미란을 앞세워 서울 세종로사거리부터 서울광장 구간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도 비가 내려 퍼레이드에 참가한 선수단이 고생을 했다.

4년 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단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을 때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그보다 앞서,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이 소치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오찬을 가진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것은 아닐까? 선수를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by heyuna 2014. 2. 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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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여왕 김연아가 21일 오전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서 무결점 연기를 마친 뒤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김연아는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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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21일 새벽 3시 50분(한국 시각),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얼음 밖으로 나왔다.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이후 꼬박 18년 만이다.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났다. 은퇴 무대, 수천만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빙판 위에 선 그는 늘 그랬듯 의연했다.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3Lz+3T) 콤비네이션 점프를 가볍게 뛰며 기분 좋게 연기를 시작했다. 이어진 트리플 플립(3F),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3S+2T) 콤비네이션도 침착하게 수행했다. 스핀과 스텝 시퀀스도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지난 1월 소치올림픽 리허설 무대로 택한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싱글 처리했던 마지막 점프 더블 악셀(2A)도 이번에는 완벽했다. 체력을 키운 김연아는 마지막 점프를 첫 점프처럼 높이 도약한 뒤 깨끗하게 착지했다. 

의연했던 피겨 여왕, 스승과 포옹하며 울컥

김연아는 탱고의 선율에 맞춰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안무를 깔끔하게 수행해나갔다. 마지막 과제인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은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끝까지 집중해서 경기를 끝낸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클린으로 장식했다. 그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4분 10초간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한 김연아의 경기가 끝났다. 자신의 바람대로 실수 없이 대회를 마쳤으나 김연아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가슴을 누르며 눈물을 흘리던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긴장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김연아가 관중석에 인사를 건넨 뒤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첫 스승, 류종현 코치와 눈을 맞춘 뒤 포옹을 하던 김연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7살 꼬마를 세계적인 피겨 선수로 길러낸 스승이었다.

스승과 '키스앤크라이존'에 앉은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성적표를 기다렸다. 점수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고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김연아는 기술점수(TES) 69.69점과 예술점수(PCS) 74.50점을 얻어 총점 144.19점을 받았다. 그는 점수가 발표되자 예상했다는 듯 웃어넘겼고, 양 옆에 앉은 신혜숙-류종현 코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144.19점, 자신이 밴쿠버올림픽 때 세운 프리스케이팅 세계신기록에는 5.87점 모자랐고 소치올림픽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5.48점이 부족했다. 심판들은 김연아의 연기를 은메달이라 판단했다.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편파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클린 연기. 은메달에 그칠 경기력이 아니었다. 잠을 설치며 피겨 여왕을 응원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 등 피겨 전설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금메달은 제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며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분 좋고 감사드린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김연아 경기가 끝난 직후 한 포털 사이트에 "연아야 고마워"란 문구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여왕에게 전하는 찬사였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그가 국민에게 준 행복은 금메달 그 이상이었다고 이제야 고백하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시니어 선수로 데뷔했다.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연기한 소녀는 16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과 안정된 점프를 선보였다. 이후 두 번의 국내 대회를 포함해 총 25번의 대회에 출전했다. 25번의 경쟁과 비교 그리고 25번의 긴장감과 부담감.

'피겨 여왕' 김연아, 피겨 역사 속으로

김연아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냈다. 이를 견뎌낸 보상은 짜릿했다. 이번 소치올림픽을 포함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했다. 피겨 100년 역사상 김연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타이틀이다.

간절히 원하던 세계챔피언 타이틀은 두 번(2009년, 2013년)이나 따냈고 10년 넘게 간직해 온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꿈도 4년 전에 이뤘다. '밴쿠버올림픽 챔피언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면 멋지지 않을까?' 꿈을 이룬 김연아의 고민이 시작됐다.

2011년 세계선수권 출전 이후 1년여간 방황의 시간을 보낸 그는 자신의 은퇴 무대를 소치올림픽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곳에 후배 선수들과 함께 가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끝냈어도 될 선수 생활을 연장했고 지독한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반이 흘렀다.

2013-2014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시즌이 시작됐고  2월 21일 새벽 3시 46분,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 출전을 위해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경기장에 들어섰다. 출전 선수 중 마지막 순서로 빙판에 선 김연아는 끝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후회없는 연기를 펼쳤고, 소치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자신의 선수 인생을 마무리했다.

시니어 데뷔 무대에서 '록산느의 탱고'를 연기하던 어린 소녀는 이후 기술력과 표현력, 정신력과 신체 조건까지 피겨 선수로서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갖춰나갔다. 수년간 피겨 여왕 자리에서 군림했던 김연아가 2014년 2월 21일, 18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피겨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록 그는 얼음을 떠나지만 김연아가 걸어온 위대한 여정은 국민과 세계 피겨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by heyuna 2014. 2. 21. 09:20
예상대로 1위였다. 우려했던 편파 판정 의혹도 어김없이 불거졌다. 20일 새벽(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출전한 김연아가 무결점 연기를 펼쳐 기술점수(TES) 39.03점과 예술점수(PCS) 35.89점을 얻었다. 총점 74.92점을 받은 김연아는 출전 선수 30명 중 1위로 경기를 마쳤다.

'디펜딩 챔피언' 김연아의 선전은 예상했던 결과였다. 올림픽 직전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80.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어 자신감을 충전한 김연아는 지난 13일 소치에 도착한 이후 실시한 훈련에서 모든 점프 성공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보조 링크에서 이틀간 연습을 마친 김연아는 쇼트트랙 빅매치가 열리던 지난 15일, 국가대표 응원단으로 변신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후배 선수인 김해진과 박소연의 연습 경기를 지켜보며 힘을 불어넣어준 김연아는 이날 오후 이상화, 박승희 등 빙상 선수들과 함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를 찾았다. 

'올림픽 2연패'보다는 동료 응원이 우선

자신이 연기할 경기장에 먼저 들어가 관중석 분위기와 조명 등을 살피며 간접적으로 적응을 마친 김연아는 당일 출전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응원하며 한 템포 쉬어 갔다. 시합 직전까지 연습에 몰두하던 4년 전 밴쿠버올림픽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피겨여왕에게만 주어진 여유인 듯 보였다.

당시 언론은 느긋한 김연아와 다급한 아사다 마오를 비교하는 기사를 쏟아 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음 위에서는 점프 성공률로, 얼음 밖에서는 심리 싸움으로 늘 경쟁구도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나흘이 흘렀다. 마지막 담금질을 마친 선수들이 마침내 얼음 위에 섰다. 소치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 쇼트 경기가 시작됐다. 

김연아는 메달 후보권 선수들이 포진한 5조(마지막조)에 비해 다소 이른 순번인 3조 5번째로 경기를 펼쳤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3Lz+3T) 콤비네이션 점프와 이어지는 트리플 플립(3F) 점프를 가볍게 뛰어내며 자신의 마지막 쇼트프로그램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이후 스핀과 스텝 시퀀스 등을 무리 없이 소화했고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2A)까지 깔끔하게 뛰었다. 서정적이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는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에 맞춰 2분 50초간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경기가 끝나자 긴장했던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얼음 위를 빠져 나왔다.

올리브 그린색 의상을 입고 연기를 펼친 김연아의 모습은 마치 나비 같았다. 가벼워 보였고 얼음 위에서 더 자유로워 보였다. 실수 없이 연기를 끝냈고 선수도 지켜보는 국민들도 고득점을 예상했다. 4년 전, '제임스 본드 메들리(James Bond Medley)'를 연기해 쇼트프로그램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던 밴쿠버올림픽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하지만 4년 전과는 달리 기대했던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선수와 코치의 얼굴은 후련해 보였지만 밝지 않았다. 상황을 중계하던 해설위원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움직이지 않던 다리, 자신만을 믿고 경기

키스앤크라이존을 나선 김연아에게 현지 취재단이 소감을 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웜업(준비운동) 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어요. 긴장을 많이 해서 시합 직전까지도 점프를 제대로 뛰지 못했어요. 점프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도 없었는데 '연습했던 거랑 뭐가 다르겠어, 믿고 하자'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마무리를 잘 지은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당당하고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던 그도 자신의 마지막 쇼트 무대 앞에서는 23살 여자 선수에 불과했다. 자신이 컨트롤조차 할 수 없는 긴장감을 안고 얼음 위에 서야 했다. 그간의 연습량 그리고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김연아가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감당하고 있을 때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아사다 마오,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등 도전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많은 국민들이 김연아의 경기를 '선수의 마지막 무대'로 감상하고 즐기기 보다는 경쟁 상대를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김연아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지난 1일 방송된 KBS 특집 다큐멘터리 <김연아, 챔피언>에서 그는 "제가 당연히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이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랑 너무 다르다'라는 생각을 좀 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금메달을 따지 않더라도 저는 만족스럽고 후회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 자신만 생각하고 제가 목표로 한 것만 열심히 해서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생겼다가 곧 사라지는 '이상한' 라이벌 

주니어 때부터 시작된 아사다 마오와의 라이벌 구도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그의 마지막 은퇴 무대인 소치올림픽에서는 라이벌 목록에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도 추가됐다. 열흘 전만 해도 율리아의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었지만, 현재 율리아는 가장 짧은 시간에 높은 인지도를 쌓은 외국인 중 한사람이 됐고, 그와 관련된 소식은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그리고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현재, 예상했던 라이벌 아사다와 율리아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언론들은 김연아에 이어 2, 3위를 차지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와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를 새롭게 끌어들여 비교하고 있다.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시니어 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두 번의 국내 대회를 포함해 총 24번의 대회에 출전했다. 24번의 경쟁과 비교 그리고 24번의 긴장감과 부담감. 김연아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냈다. 이를 견뎌낸 보상은 짜릿했다.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 입상. 피겨 100년 역사상 김연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타이틀이었다. 

25번 째 대회, '1등' 아닌 '김연아'에 집중

2014 소치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김연아 선수의 25번째 대회이자 은퇴 경기다. 2006-2007시즌, ISU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준비한 김연아는 당시 1조 1번으로 시니어 무대에 입성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2013-2014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시즌, 소치올림픽 프리스케이팅만을 남겨놓은 김연아는 내일 새벽 3시 46분, 출전 선수 중 가장 마지막 순서로 얼음 위에 오른다. 프로그램 곡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inino)'.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 16살 소녀답지 않은 표현력과 기술로 피겨계에 깜짝 등장했던 어린 소녀가 이제 이별을 말하려 한다. 

그의 관심사는 올림픽 2연패도, 라이벌 구도도 아니다. 오직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할 뿐이다. 지난 24번의 대회에서 '1등' '경쟁'만을 강조해왔던 우리. 마지막인 만큼 이를 떨쳐내고 '선수 김연아'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피겨여왕 김연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밤이다. 


by heyuna 2014. 2. 2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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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피겨스케이팅 김연아가 1월 23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에서 열린 제22회 소치동계올림픽 한국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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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라이벌은 영원한 라이벌일까?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대회에 출전해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클린 경기를 펼친 대가는 쇼트프로그램 78.50점, 프리스케이팅 150.06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보답받았다.

키스앤크라이존에 앉은 김연아는 점수가 발표되자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놀라움을 드러냈고, 당시 중계를 맡은 SBS 배기완 아나운서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고 치켜세웠다. 함께 출전한 아사다 마오는 205.50점(쇼트73.78, 프리131.72)을 받아 은메달을 차지했다. 1위와의 점수차는 23.06점이었다.

같은 대회 남자 피겨스케이팅 싱글에서는 에반 라이사첵(미국)이 257.67점으로 금메달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가 256.36점을 받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선수의 메달 색깔은 1.31점 차이로 갈렸다.

치열한 경우 소수점으로도 순위가 나뉘어지는 피겨스케이팅의 성격을 고려할 때, 23점은 상당한 점수 차였다. 228.56점 대 205.50점. 결과만 놓고 보면 싱겁게 끝난 듯하지만, 여자 피겨 싱글은 동계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경기 중 하나였다. 경기 전부터 뜨거웠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눈만 마주쳐도 수백 개의 기사가 생산됐고, '상대 선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은 끊임없이 두 선수를 따라다녔다.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두 사람은 선수생활 내내 '동갑내기 라이벌'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부가 갈렸지만 대결 구도는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4년이 흘렀고 지난 7일 소치동계올림픽이 개막했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론은 변함이 없다. '김연아 라이벌 목록'에 아사다 마오에 이어 러시아 신예 선수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사다에서 리프니츠카야로, 순식간에 옮겨간 '김연아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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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연아가 선수로서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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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치올림픽에는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여자 스키점프 등 12개 종목이 신설됐다. 그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종목 중 하나가 피겨 단체전이다. 2013-2014시즌 국제 대회 점수를 기준으로 상위 10개국에 출전권이 부여됐고, 출전국 선수들은 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댄싱을 소화했다. 네 종목의 결과를 종합해 순위를 매겼는데,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가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는 남자 싱글에 노련한 예브게니 플루셴코(32)를, 여자 싱글에는 신예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를 출전시켰다. 플루셴코의 선전을 예상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시니어 무대에 입성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소녀가 반란을 일으키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리프니츠카야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며 단체전 우승을 이끌자 러시아 홈 관중뿐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도 들썩였다. 김연아의 새 라이벌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2013-2014 그랑프리 시리즈 2차 대회와 유럽선수권에서의 우승이 전부인 리프니츠카야는 '10년 차 라이벌' 아사다까지 뒷전으로 밀어냈다. 리프니츠카야가 경기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연아와의 경기가 기대된다"고 말하자 김연아와 리프니츠카야를 엮은 기사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김연아, 올림픽 2연패 가능?' '아사다 마오, 트리플 악셀로 김연아에 도전' '러시아 신예, 김연아의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 등, 피겨 대회가 열릴 때마다 새로운 금메달리스트가 나올 때마다 언론은 김연아와 해당 선수를 비교하고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예측하곤 한다. 마이크 앞에 선 김연아에게 기자들은 어김없이 라이벌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주목하는 선수는 국내 후배뿐"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한 기자회견에서 나온 첫 질문도, 2014년 1월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미디어데이 마무리 질문도 선수 개인 목표나 기량이 아닌 '라이벌이 누구냐'는 물음이었다.

- 소치올림픽에 가겠다고 결정했는데, 러시아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는가? (2012년 7월 2일, 현역 선수 복귀 기자회견 첫 질문)
"러시아 선수들은 김해진 선수나 박소연 선수 같은 후배들의 경쟁상대이기 때문에 눈여겨 봐오긴 했는데요. 저는 이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목표보다는, 우선 소치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월드챔피언십에 나갈 수 있도록 훈련을 할 거고요. (후략)"

- 라이벌 혹은, 주목하고 있는 선수가 있는가? (2014년 1월 15일, 소치올림픽 빙상대표단 미디어데이 기자회견 마지막 질문)
"특별하게 주목하는 선수는 이번에 같이 출전하는 김해진·박소연 선수입니다. 밴쿠버올림픽 때는 곽민정 선수랑 같이 나갔지만, 그때는 한 명이었고 이번에는 두 명의 후배 선수들과 같이 출전하게 됩니다. 이 선수들이 앞으로 시니어 무대에서 계속 대회를 치르게 됩니다. 이번 올림픽이 심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큰 기회인 만큼, 부담이 되겠지만 선수들이 좋은 인상을 남기길 바랍니다. 제가 은퇴한 뒤에도 한국에 이런 선수들도 있다는 것을 심판들이 기억을 하고, 앞으로 시니어 대회 출전할 때 많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연아는 '라이벌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특정 선수를 거론하지 않은 채 답변을 이어갔다. 

김연아 vs.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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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시니어 데뷔 이후 김연아는 열한 번의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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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시니어 데뷔 첫해인 2006-2007시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실수없이 연기해 쇼트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2008-2009시즌에는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와 '세헤라자데'(Scheherazade)를 연기해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했다. 이후 밴쿠버올림픽까지 쇼트, 프리, 합계 점수에서 모두 열한 번의 기록을 경신했다. 김연아는 국내대회는 물론이고 출전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해 피겨 100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올 포디움(All-Podium)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기록을 들여다보면 김연아의 경쟁자는 김연아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김연아의 맞은 편에 상대 선수를 세워두고 둘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극했다.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김연아는 언론 앞에서 한 가지 목표만을 이야기해왔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수로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어 소치올림픽 출전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기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올림픽 2연패를 언급하고, 그의 금메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는 말이 있다. 왕관을 내려놓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연기를 하겠다는 선수와 달리, 오히려 주변에서 왕관을 씌우기 위해 혈안이 된 형국이다.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리프니츠카야의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피겨 여왕의 마지막 무대를 즐기기란 '1등 지상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 일까?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를 2위로 마친 김연아는 <SBS 스페셜- 아이콘 김연아, 2막을 열다>에서 아쉬운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보통 경기가 끝나면 문자나 축하메시지가 많이 오잖아요. 그런데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하나도 못 받았어요. 저는 그게 정말 어이가 없는 거예요. 저는 2등도 했고, 경기가 끝나서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다 '수고했어, 괜찮아'라는 말밖에 없는 거예요. '스포츠 선수에게 있어서 1등과 2등은, 1등과 꼴등과 같은 취급을 받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디오스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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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에서 2등을 하고 돌아오자 주변에서 축하가 아닌 위로의 말을 전해 아쉬웠다는 김연아
ⓒ SBS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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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도, 지금도, 김연아는 금메달을 따려고 시합에 출전하는 것은 아니다. 매번 자신이 정한 목표를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목표는 올림픽 티켓 두 장 이상 획득이었고, 이번 소치올림픽 목표는 선수 생활의 아름다운 마무리다.

김연아는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으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를 택했다. 이제 완전한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무대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20일 쇼트프로그램, 21일 프리스케이팅). 작별 인사를 하는 그에게 메달을 강요하지 않기를, 어떤 결과를 얻든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그가 웃으면서 경기장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아디오스, 김연아.


by heyuna 2014. 2. 11. 12:33



















by heyuna 2014. 1. 7. 17:16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오묘한 승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없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야말로 승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다. 그러나 선수에 따라서는 승리만이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 한번 오른 최고봉에 재도전하는 등산가에게 다시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표일 수는 없다. 다른 코스로도 오르고 싶고 팀워크를 중시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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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출국 기자회견에서 김연아는 "부담없이 경기를 치르고 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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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운 것 같아요"

두 번째 올림픽에 도전하는 김연아(23·올댓스포츠) 선수의 심정은 현역 복귀 선언 이래 어떤 변화를 겪어온 걸까?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해 2011년 7월의 기자회견으로 돌아가보자.

"저를 계속 짓눌러왔던 저의 선수생활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힘겨웠던 것이 나 스스로, 또 국민과 팬들의 높은 기대치와 그에 따른 부담감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피겨 연기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만일 최고의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이것이 인생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김연아는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 한 켠에,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이 부담감 때문에 자기가 가장 잘 하고 자신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1년 남짓 고민의 시간을 보낸 그는 다시 얼음 위에 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흘렀다. 소치올림픽 시즌이 시작됐고, 김연아는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을 맞게 됐다.

지난 3일, 김연아가 2013-14시즌 첫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마지막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마음이 가볍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운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꿈은 이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욕심이나 부담은 전혀 없는 것 같고, 한 대회 한 대회 나갈 때마다 예전보다는 부담을 덜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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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국 기자회견장에는 백 여명의 취재진과 팬들이 몰려 김연아의 마지막 시즌에 관심을 보였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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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티켓 3장 따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외 언론과 팬들은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를 언급하고 예측했다. 하지만 선수 본인은 '올림픽 2연패'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현역 복귀를 결정한 이유가 올림픽 2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역 복귀 당시 그의 말을 되새겨보자.

"지난 시즌을 스킵한 이후 1년은 저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년 동안 태릉선수촌에서 피겨스케이팅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해왔습니다. 제가 후배 선수들에게 피겨스케이팅과 관련된 조언도 해주고 선배로서, 언니로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반대로 후배들의 훈련 모습에 자극받기도 하고 때로는 피겨스케이팅을 계속해야 하는 동기부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을 위해서 제가 현역 선수로서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역 선수로서 김연아가 해야 할 일은 후배 선수들을 소치올림픽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올림픽 티켓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 목표가 생기자 바빠졌다.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었고 체력을 끌어올렸다. 

B급 대회에 출전해 국제대회 점수를 챙겼다. 단번에 기준점을 통과했고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자격을 얻었다. 지난 3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김연아는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티켓 3장을 따냈다. 후배 선수 둘을 소치올림픽에 데리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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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와 함께 소치올림픽에 출전하게 될 박소연(좌), 김해진 선수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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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노니노'에 맞춰 연기... 의상은 대회 날 '공개'

약속을 지킨 김연아는 이후 후련한 마음으로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준비해왔다. 부담감을 떨쳐내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연기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6시간씩 지상과 빙상을 오가며 훈련을 소화했다. 체력 강화와 함께 새 프로그램을 몸에 익혔다. 여름의 끝자락에 올림픽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한 김연아는 10월에 열리는 그랑프리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에 매진했다.

무리한 훈련 탓일까? 대회를 한 달여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중족골 미세 손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하지 못한 김연아는 그랑프리시리즈 불참을 결정했다. 이후 가벼운 훈련과 치료를 병행하며 감각을 유지했고 10월 말, 부상을 완전히 떨쳐냈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는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B급 대회 출전을 결정했다.

5일부터 나흘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에서 김연아는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한다. 시니어 데뷔 이후 쇼트 프로그램에서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곡을, 프리 스케이팅에서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 곡을 연기해온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시즌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쇼트 프로그램은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 프리스케이팅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에 맞춰 연기할 예정이다. 안무는 7년간 함께 해온 데이비드 윌슨이 맡았다. 특히 아디오스 노니노는 윌슨이 안무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아껴왔던 곡이다. 윌슨은 "강하고 극적인 느낌에서 섬세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갑작스레 변화하는 이 곡을 연기로 표현해낼 피겨 선수는 오직 김연아뿐"이라며 제자의 마지막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김연아는 "현역선수로서 마지막 대회 프로그램인 만큼, 그동안 스케이팅하고 싶었던 음악을 선곡하게 되어 기쁘고, 그만큼 멋진 경기 내용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외 안무나 의상에 관한 정보는 "경기 날 공개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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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데뷔 이후 7년간 함께 해온 김연아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 이들은 마지막 시즌 프로그램까지 호흡을 맞췄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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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 시즌은 시작됐다

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일 오전, 대회 출전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여 명이 넘는 취재진과 팬들을 앞에 두고도 연신 미소를 띠었다. 긴장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올림픽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부담 없이, 결과에 대한 욕심 없이 준비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림픽 시즌이 늦게 시작됐는데 늦어진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고요. 이번 골든 스핀이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인 만큼 욕심 내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경기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게 되는 자리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고요. 아직 올림픽까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번 시합이 끝난 이후에도 훈련 열심히 해서 더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할 당시 김연아는 챔피언의 자리에 서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그 꿈을 이뤘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올림픽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그 자리에 후배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이미 절반의 목표를 달성한 김연아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는 점프와 스텝 등 기술적인 부분을 체크하고 자신의 컨디션을 점검할 계획이다. 김연아가 출전하는 쇼트 프로그램은 6일 오후 9시(한국시각), 프리스케이팅은 7일 오후 11시에 시작된다. 경기는 MBC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by heyuna 2013. 12. 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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