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인천아시안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국내외 언론과 팬들은 박태환과 중국의 쑨양의 라이벌전에 주목했다. 도하아시안게임 이후 3연속 3연패라는 대기록에 도전하는 박태환과 2012런던올림픽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쑨양이 자유형 개인전 금메달을 두고 경합을 벌일 것이라 예상했다.

21일 200m 자유형을 시작으로 26일 1500m까지, 박태환과 쑨양은 이번 대회에서 네 차례(200m 자유형, 400m 자유형, 1500m 자유형, 4x100m 계영) 승부를 겨뤘고 네번 모두 쑨양의 승리로 끝났다.

자신의 주종목에 집중하기 위해 하루걸러 시합에 출전한 쑨양과 달리 박태환은 21일 200m 자유형을 시작으로 22일 남자 계영 4x200m, 23일 자유형 400m, 24일 계영 4x100m, 25일 자유형 100m, 26일 자유형 1500m에 이어 혼계영 4x100m 결승까지, 6일동안 7경기를 소화했다.

박태환은 마지막 경기가 펼쳐진 26일, 자유형 1500m 시합이 끝난 지 40분 만에 혼계영 4x100m에 출전했고 마지막 시합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혼계영 4x100m에 출전해 최규옹,장규철,박선관 선수 등과 함께 획득한 동메달은 자신의 세 번째 아시안게임이자 사실상 마지막으로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딴 스무 번째 메달이었다.

조국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경기장(문학박태환경기장)에서 시합을 치른다는 부담감과 빡빡한 경기일정에도 박태환은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를 추가해 아시안게임 통산 총 20개의(금6, 은4, 동10)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스포츠에 새로운 역사를 쓰며 대회를 마감했다.


by heyuna 2014. 9. 26. 21:51
2년 전 런던올림픽 자유형 200m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나란히 은메달을 목에 건 박태환과 중국의 쑨양이 2년 뒤 다시 만났다. 

21일 저녁 7시 인천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자유형 200m 결승에 출전한 두 선수가 금메달을 두고 경합을 벌였으나 '200m 금메달리스트' 타이틀은 뜻밖에도 일본의 신예 하기노 코스케 선수의 차지가 됐다. 

앞서 열린 예선전에서 1분50초29를 기록한 박태환은 전체 순위 4위로 6번 레인에, 1분48초90을 기록하며 1위로 들어온 쑨양은 4번 레인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둘 사이인 5번 레인은 2위로 들어온 하기노 선수 차지였다. 

200m 결승전이 시작됐다. 초반 50m는 박태환이 가장 먼저 통과했다. 이후 100m와 150m 터치패드는 쑨양이 가장 먼저 찍었고 뒤이어 박태환이 순이었다. 하기노는 150m를 3위로 지나갔다. 하지만 결승점인 200m 터치패드를 가장 먼저 터치한 선수는 박태환도 쑨양도 아닌 하기노였다. 

하기노 코스케는 1분45초2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은 1분45초28을 기록한 쑨양이 차지했고 '마린보이' 박태환은 1분45초85로 2014인천아시안게임 200m 자유형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3연패' 무게감 이겨내려 했지만 몸이 안 따라줘"

경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진행자가 "동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박태환은 어색한 듯 씨익 웃어보였다. 이번 경기에서 금메달 사냥에 실패한 박태환은 목표했던 '아시안게임 3연속 3연패'라는 대기록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세 번째로 출전하는 아시안게임이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무게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앞선 두 대회 200m에서 계속 금메달을 따왔기 때문에 '3연패'라는 단어가 안 들리진 않더라고요. 저도 해내고 싶고 이루고 싶은 업적이었기 때문에 시합 전까지 그런 무게감을 이겨내려고 했지만 몸이 안 따라주더라고요(웃음)."

이어 박태환은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었다"고 경기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마이클 볼 감독님이 연습한 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계속 믿음을 주셨는데 그 믿음을 제가 못 지킨 것에 대해서 저 자신한테 아쉬운 면이 굉장히 많고요. 결과적으로 제가 동메달을 땄고 1분 45초대가 나왔지만, 이 시합을 뛰기 위해서 전담팀 선생님들과 열심히 해왔던 것은 사실이고요. 그랬기 때문에 동메달이라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이름이 걸린 수영장에서 시합을 뛴다는 것에 많은 무게감을 느꼈다는 박태환은 "오늘 목에 건 동메달이 아쉬운 동메달이 아닌 값진 동메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다음 경기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영 경기에 있어 오늘 시합이 좋은 경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듬직하게 말했다. 

박태환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런던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실격판정 번복 해프닝으로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박태환은 오는 23일 400m 자유형 경기에 출전해 2년 전의 억울함을 만회할 계획이다.


by heyuna 2014. 9. 26. 21:50
[기사 수정 : 22일 오전 9시 8분]

2014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전 경기를 앞둔 오후 5시 47분, 박태환이 수영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적인 웜업(준비운동) 종료를 53분 앞두고 경기장에 나타난 박태환은 자신의 지도자인 마이클 볼 코치와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코치와 의사소통이 하기 쉬운 1번 레인에 자리를 잡은 박태환은 이따금 마이클 볼 코치와 기록을 체크하는 것 외엔 자신의 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1번 레인에는 박태환과 함께 5~6명의 선수들이 함께 훈련했다. 배영으로 몸을 풀고 있는 여자 선수 뒤에서 출발한 박태환은 페이스 조절을 위해 앞 선수를 제치고 가기도 했다. 

훈련 말미에 스타트대에 올라 실전처럼 연습을 하자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5시 47분부터 정확히 30분 동안 몸을 푼 박태환은 경기 시작 40분을 앞두고 물 밖으로 나왔다. 

아시안게임 3연속 3관왕에 도전하는 박태환의 대회 첫 경기인 자유형 200m 결승은 오늘 저녁 7시, 인천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다. 

오전 9시에 열린 예선전에서 박태환은 1분 50초 29의 기록으로 6번 레인을 배정받았다. 1분 48초 90에 터치패드를 찍어 예선전을 1위로 통과한 중국의 쑨양은 4번 레인에서 박태환과의 한판 승부를 펼칠 예정이다.


by heyuna 2014. 9. 2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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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환 선수.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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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여진 훈련을 충실히 소화했다. 심장 맥박수는 230까지 치솟았고, 고된 훈련으로 피를 토하는 것은 예사였다. 올림픽을 앞둔 마무리 연습에서 세계신기록보다 좋은 기록을 네 차례나 얻었다. 특히 시합 전날 연습에서는 세계신기록보다 2~3초 앞선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금메달은 당연하다 생각했고 올림픽이 끝나도 뜨거운 관심과 탄탄한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 기대했다.

2년 전,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한 박태환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었다. 자유형 400m의 전설을 꿈꿨던 박태환은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세계기록 경신이라는 목표 아래 장이 꼬일 듯한 고통 쯤은 거뜬히 참아냈다. 2012년 7월 28일, 자유형 400m 예선에 출전한 박태환은 3:46.68을 기록하며 조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지만 부정 출발로 실격됐다. 

경기 직후 마이클 볼 코치의 강력한 항의에 국제수영연맹(FINA)이 실격 처리를 번복하고 박태환을 결승전 명단에 올렸으나 이미 선수의 컨디션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국제수영연맹의 공식입장이 나온 것은 결승을 고작 5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실격 판정 번복 이후 '은메달', 꼬여버린 2년

실격 판정으로 '멘붕'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때는 평소같으면 피로를 풀고, 결승에 대비해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낮잠은 커녕 마인드컨트롤조차 힘겨웠던 박태환은 결국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고, 목표했던 세계신기록은 달성하지 못한 채 올림픽을 마쳐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400m, 200m 은메달이라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지만 선수 자신에게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이었다. 

당시 몸과 마음 모두 지쳐버린 박태환은 자신의 경기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지만 "메달리스트들은 폐막식이 끝날 때까지 남아달라"는 대한체육회의 요청에 귀국 날짜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고, 도망을 쳐서라도 돌아가고 싶다'던 박태환은 결국 예상보다 나흘 뒤에야 인천공항에 내릴 수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박태환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다. 박태환 입국 일주일 후, 동호인들이 참가하는 전국 마스터즈 수영대회가 열렸다. 주최측인 대한수영연맹은 이벤트 형식으로 열리는 국가대표 시범경기에 박태환이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박태환 측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뒤이어 연맹의 포상금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런던올림픽에서 2개의 은메달을 획득한 박태환은 수영연맹으로부터 5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받게 되어 있었지만 연맹은 이 포상금을 박 선수에게 지급하는 대신 다이빙 유망주를 지원하는 데 썼다. 문제는 선수 측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지 않은 데 있었다. 2013년 6월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태환은 이와 관련해 연맹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저는 기사를 통해서 알았어요. 저에게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포상금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베이징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때도 받고나서 바로 기부를 했어요. 베이징올림픽 때도 받고나서 대표팀 코치진이나 개인 전담팀, 꿈나무들에게 다 기부를 했어요. 솔직히 저 개인적인 섭섭함은 없었어요. 단지 기사를 통해 알게 되니까 서운함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이빙 꿈나무 선수들 훈련하고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하니까 좋게 생각했죠."

런던 현지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선수의 멘탈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치료받지 못했다. 연맹과 협회는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다. 올림픽 이후 제대로 된 훈련 장소를 구하지 못한 박태환은 체육고등학교와 일반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수영장에서 짬짬이 훈련해야 했다. 국가대표 훈련량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박태환은 연습량 부족으로 2013 바르셀로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불참을 결정했다. 박태환을 지도하던 볼 코치는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훈련할 장소를 찾지 못해 세계대회에 나서지 못한다는 황당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도 연맹의 도움이나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뒤, 후원사와의 계약이 만료됐다. 박태환은 "운동선수에게 후원사는 자존심과 같다"며 "후원사가 있을 땐 몰랐지만 없으니까 내 가치가 떨어진 듯한 기분"이라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자비로 전지훈련 비용을 충당해오던 박태환에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2013년 6월, 박태환의 팬들이 '국민스폰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7000여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고 이를 선수에게 전달했다. 한달 뒤인 7월 18일, '삽자루 선생님'으로 알려진 수학 강사 우형철 SJR기획 대표가 1년 간 5억 원 지원을 약속하며 박태환과 후원 계약을 맺었다. 이들의 도움과 인천 상공회의소의 후원으로 박태환은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날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 선발전 대회 MVP로 우뚝

박태환이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연맹이 또 한 번 문제를 일으켰다. 수영연맹이 촌외훈련 규정을 잘못 적용해 박태환을 국가대표 강화훈련 참가자 명단에서 누락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박태환은 한 달치 훈련수당을 받지 못했다. 보호하고 협력해야 할 선수와 연맹 사이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훈련하던 박태환이 7월 초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위해 귀국했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2014 MBC배 전국수영대회'에서 박태환은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100m·200m·400m를 포함해 개인혼영 200m·400m, 단체전 계영 800m에 출전해 모두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6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를 차지한 박태환이 오는 9월 개막하는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이를 악무는 상황을 맞았다. 지난 18일 우형철 대표와의 후원 계약이 만료된 것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을 결심한 박태환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부활은 절실하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새로운 후원사가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선수 최초로 남자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지만 지금은 연맹의 보호도 대기업의 지원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홀로 긴 터널을 걷고 있는 박태환은 인천아시안게임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오는 30일 호주로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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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 전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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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런던에서의 억울함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는 '여름 소년' 박태환과 달리 개운치 않은 판정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한 선수가 있다. '겨울 소녀' 김연아의 이야기다.

금메달을 바라보고 출전한 시합은 아니었다. 10년 넘게 간직해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꿈은 4년 전 이미 달성한 상태였다. 후배들을 위해 선수생활 연장을 결심했고 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꿨다. 선수로서 치르는 마지막 시합의 목표는 아름답게 퇴장하는 것이었다. 실수없이 프로그램을 소화했고 '만족스럽게 마쳤다' 생각했다. 디펜딩챔피언의 클린 경기. 그러나 심판의 판정은 선수의 경기력을 제대로 따라 오지 못했다.

선수의 어머니는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을 줬다고 생각하자"며 딸을 위로했고 김연아는 "내가 인정하고 안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무 미련도 없다. 끝이 나서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선수 측의 입장과 달리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피겨스케이팅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경기 다음날 5대 일간지 1면은 관련 기사로 도배됐다.

국제빙상연맹에 공식 제소, 결과는 기각

경기 직후 국제 비영리 사회운동을 위한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서 진행한 재심사를 요구하는 청원(Demand Rejudgement at the Sochi Olympics)에는 반나절 만에 100만 건이 넘는 서명이 접수됐다. 경기는 끝났지만 심판 판정에 대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김연아의 팬들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공식 제소를 요구하며 1인 시위와 집회, 신문 광고 게재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지 정확히 한 달째 되던 날,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심판 구성에 대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며 입장을 밝혔고 지난 4월 11일,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국제빙상연맹에 공식 제소(Complaints)했다"고 발표했다.

체육회의 발표 직후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로서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한 데 대해 그 결정을 존중하며,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심판으로 참여한, 전 러시아피겨연맹 회장이자 현재 러시아피겨연맹 사무총장인 발렌틴 피세프의 부인 알라 셰코프세바가 경기 판정 직후 러시아 소트니코바 선수와 포옹을 하는 등 중립성을 잃은 모습을 보인 점을 중점으로 제소했다. 그러나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는 지난달 6월 4일 "소트니코바와 심판의 포옹은 자연스러운 매너였다"며 이를 기각했다.

빙상연맹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 않겠다"

기각 판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할 수 있지만 빙상연맹은 상임이사회를 열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체육회도 같은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말로 항소할 수 있는 기한이 마감됐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있지만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박종명 빙상연맹 사무국장은 "제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희들은 안 합니다. 팬들의 입장 충분히 이해는 해요. 그러나 몇몇 팬들이 김연아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이렇게 하시는데 크게 보셔야죠. 대회도 끝났고 국제빙상연맹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했는데 그 부분이 기각이 됐고. 카스(CAS)에 간다고 해서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느냐, 취약하다고 봅니다."

이어 박 사무국장은 "국제스포츠 회원국들과의 대립 관계나 평창올림픽 개최국가로서의 위상 등을 생각할 때, 또 2002년 김동성 사건, 2004년 양태영 선수 사례를 봐도 카스에 갔지만 안 됐다(금메달을 찾아오지 못했다)"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가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안톤 오노(미국)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실격판정을 받은 김동성과 2004 아테네올림픽 기계체조 개인종합경기에서 편파판정으로 폴햄(미국)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양태영이 각각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기각돼 금메달을 찾지 못했다.

2004년 당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는 "한국 선수단의 항의가 경기 종료 후에 제출됐다"며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기각 판정을 받은 양태영은 "베이징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결의를 다졌지만 김연아에게는 다음 올림픽이 없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시니어 데뷔 이후 거의 매시즌 크고 작은 불리한 판정으로 불이익을 받아왔다. 특히 2007-2008시즌 세계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한 김연아는 경기 당일 고관절부상이 심해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최악의 컨디션에서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고 123.38점이라는 프리스케이팅 1위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으나 쇼트프로그램과 합한 총점에서는 일명 '줄세우기 점수'로 인해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첫 점프 실패 후 10초 넘게 활주만 했던 아사다마오가 예술점수(PCS) 감점을 받지 않아 우승을 차지해 편파판정 논란이 일었다.

불리한 판정에도 선수의 미래를 위해 팬들은 어떠한 항의도 할 수 없었다. 연맹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두 해가 흘렀고 선수의 마지막 무대, 소치올림픽이 열렸다. 결국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심판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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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체육회 건물에 위치한 대한빙상경기연맹 사무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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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보호보다 평창올림픽 개최국 위상이 먼저

지난 3월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당시 김연아의 매니지먼트 올댓스포츠는 "이번 제소가 그동안 수차례 반복된 한국선수들의 판정논란과 불이익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빙상연맹 측은 유독 우리 선수에게 집중되는 부당한 대우를 처단하는 것보다 2018 평창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위상과 국제 스포츠 회원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모양새다. 연맹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지만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빙상을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 드렸습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실망하는 국민은 없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치른 시합에서 부당한 판정을 받았을 때, 선수를 보호해야하는 연맹과 협회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국민이 실망하는 지점은 선수가 아닌 연맹에 있다.


by heyuna 2014. 7. 25. 21:55

[TV리뷰]박태환, 반란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SBS스페셜>-'승부사 박태환' 편...런던올림픽 '영웅의 귀환 프로젝트' 기대한다
12.07.24 14:58ㅣ최종 업데이트 12.07.24 14:59ㅣ정혜정(heyuna)
태그박태환SBS스페셜런던올림픽 
"중학교 3학년,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때 막 기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올림픽을 앞두고 발탁됐기 때문에 그만큼의 긴장감이 있었거든요."

2004년, 만 14살의 나이에 최연소 수영 국가대표로 발탁된 박태환은 한국 대표로 출전한 첫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력을 겨뤄보기도 전에 부정 출발로 실격하고 만다.

  
▲ 하루에 7시간 씩 물속 훈련을 하는 박태환 선수.
ⓒ SBS
태그박태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뽑힌 꼬마 박태환은 경험 부족으로 준비 신호를 출발 신호로 착각해 홀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킥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했던 그 꼬마가 3년 뒤 다시 세계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2007 멜버른세계선수권대회. 400m 자유형 부문에 출전한 박태환은 5번 레인에서 경기를 펼쳤다. 총성과 함께 '제때' 출발한 박태환은 300m까지 줄곧 5위에 머물렀다. 선두권에서 멀어진 박태환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결승선을 50m 앞둔 350m 지점을 4위로 턴 한 박태환. 박태환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50m 구간에서 스퍼트를 끌어올린 박태환은 앞서 있던 선수 한두 명을 따라잡더니 결국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부정 출발로 실격한 꼬마 박태환이 대한민국 수영 영웅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봤을 때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내가 결승전에서 이런 세계적인 스타와 레이스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즐겁고 뜻 깊은 일 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2일 SBS는 2004 아테네올림픽 실격,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로마선수권 예선탈락,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등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한국의 수영 영웅 박태환의 2012 런던올림픽 준비과정을 담은 'SBS스페셜-승부사 박태환' 편을 방송했다. 

  
▲ 2012 런던올림픽, 박태환의 목표는 세계신기록 경신이다.
ⓒ SBS
태그박태환

박태환의 두 번째 올림픽인 2008 베이징올림픽은 4년 전과 달랐다. 400m 자유형 금메달, 200m 자유형 은메달. 아시아에서 놀던 박태환이 세계적인 물로 뛰어들었다. 박태환은 당시의 금메달은 놀라운 기억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저 자신도 좀 놀랐었어요. 파이널(결승)에 올라가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인데 거기서 금메달을 따게 돼서 굉장히 놀라웠던 거 같아요. 그 시기는 놀라웠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2004 아테네올림픽 이후 전국체전 우승은 물론이고 2006 도하아시안게임, 2007 FINA 경영월드컵 6차대회 200m•400m•1500m 석권에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까지 승승장구 하던 박태환이 2009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박태환도 국민들도 깜짝 놀랐다. 언론에서는 '박태환 침몰'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고 박태환은 처음 맞는 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가기가 조금 두렵다고 해야 하나?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아요. 한국 간다 그러면 집에 가는 건데… 계속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보여지다가 한 번 이렇게 예선 탈락 해버리니까 그만큼 질타가 심하더라고요. 한 번에 롤러코스터처럼 쭉 내려가니까 제 마음도 상처 입는 게 더 심했어요. 한 번에 너무 많은 질타가 들이닥치니까 좀 버거워서 많이 힘들었어요."

  
▲ 한계를 넘는 훈련량. 근력 강화 운동 후 힘이 빠져 버린 박태환 선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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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선수를 전담하는 권세정 팀장은 당시 박태환이 굉장히 혼돈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데 나를 죄인 취급 하나, 은퇴할까?' 박태환 선수가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마이클 볼 코치를 선임한 후 코치와 첫 만남부터 박태환 선수가 굉장히 기분이 좋아 했어요. 동기가 생기고 수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정신을 좀 차리게 됐죠."

마이클 볼 코치를 만난 박태환은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루 7시간씩 물속 훈련이 이어졌다. 박태환의 훈련이 끝나야 수영장의 하루 일정도 끝났다. 연습 벌레 박태환은 물속 훈련 전후에 수영 동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근력 강화 운동도 잊지 않았다. 힘든 과정을 묵묵히 이겨낸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박태환은 100m•200m•400m 자유형 3관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200m 경기에서는 단 한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호주 브리즈번 훈련장으로 돌아온 박태환은 잠영(물 속에서 하는 헤엄) 거리를 늘리고 돌핀킥(Dolphin Kick)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2012 런던올림픽을 대비해, 라이벌인 마이클 펠프스(193cm), 쑨양(198cm)과 10cm이상 차이가 나는 신장(박태환: 183cm)을 잠영과 돌핀킥으로 극복하기로 한 것이다. 
  
▲ 베이징올림픽때와 비교한 박태환 선수의 최근 모습.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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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의 실제 수영 스피드는 마이클 펠프스나 라이언 록티만큼 잘합니다. 하지만 잠영이나 턴은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저희는 아주 많이 노력했어요. 지난 2년 동안 잠영과 턴이 많이 향상 됐어요." (마이클 볼 코치)

박태환은 훈련을 통해 잠영 거리를 기존 6~7m에서 11~12m로 늘렸다. 돌핀킥을 강화하기 위한 근력 운동 또한 필수였다.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돌핀킥 훈련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유연성이라든지 근력을 상호보완 하는 운동을 시킬 때 박태환 선수에게 '태환아, 이 운동은 돌핀킥에 굉장히 좋은 운동이고 아주 효율적일 거야' 이렇게 이야기 하면 태환이가 굉장히 열심히 훈련을 합니다. " (권태현 체력 코치)

힘들다고 운동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량 덕분에 물살을 가르는 힘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가 됐다. 볼 코치와 훈련하기 전에는 돌핀킥을 한두 번 차던 박태환이 올림픽을 앞둔 지금 네 번까지 그 양을 늘렸다. 4년 전과 비교해 복근도 생겼다. 달라진 몸은 경기력에도 변화를 줬다. 

"저희 전담팀은 금메달을 100% 기대하죠. 이번 목표는 Super-X에요. 'Super eXcellent' 약자인데, 200m•400m 금메달에 400m 세계신기록이에요." (권세정 전담 팀장)

"제 생각에 쑨양의 실력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 박태환 선수에게 큰 도전이 될 거예요. 박태환 선수도 자기가 이겨야 할 사람이 쑨양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둘 사이에 아주 환상적인 시합이 될 것 같아요." (마이클 볼 코치)

  
▲ 2012 런던올림픽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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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번 올림픽 경기에서 1등과 8등 순위가 1~2초 내에서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의 박태환이 반란을 일으킨 경기였다'라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한테도 그렇고요."  (박태환 수영 국가대표)

2012 런던올림픽 '영웅의 귀환 프로젝트'. 준비는 끝났다.

by heyuna 2012. 7. 24. 16:30

돌핀킥 마스터 박태환 '물장구 세레머니' 재연 준비 끝!
[TV리뷰] KBS 1TV 2012 런던올림픽 특집 '올림픽 사이언스'
12.07.23 15:13ㅣ최종 업데이트 12.07.23 15:37ㅣ정혜정(heyuna)
태그박태환런던올림픽 
런던올림픽을 닷새 앞둔 22일 밤 KBS 1TV는 '2012 런던올림픽 특집 '올림픽 사이언스-박태환, 양학선, 김연경'편(1부작)을 방송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운동 능력을 과학적으로 입체 분석한 프로그램. 4년 전 국민남동생에서 복근을 장착하고 '국민 남자'로 거듭난 박태환 선수의 훈련 과정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 런던올림픽 200m,400m,1500m 자유형 부문에 출전하는 박태환 선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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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사상 최초로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서양인들이 독식하던 수영에서 한국인 선수에게 메달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때는 박태환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박태환이 베이징올림픽에서 400m 금메달과 200m 은메달을 딴 이후, 수영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하나 정도는 쉽게 따올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종목이 되어버렸다. 예전의 레슬링, 양궁처럼 말이다. 

5명이 겨루는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경주도 아무나 1등할 수 없는데 학교 대표, 시 대표도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과 끈기로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본 박태환은 얼마나 고된 훈련이 있어야 세계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두 개(400m•200m), 세계신기록 경신을 목표로 4년 전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

  
▲ 훈련을 통해 4년 전보다 더 강해진 박태환 선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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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에서도 굉장히 뜻 깊은 성적을 냈지만 이번에는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사실 요즘 훈련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세게 신기록이라는게…"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그의 컨디션은 최고였고 몸 상태도 완벽에 가까웠다. 4년 동안 키가 훌쩍 자라거나 발 사이즈가 10mm, 20mm 크진 않았을 텐데 그는 어떻게 더 높은 목표를 잡을 수 있었을까. 돌핀킥과 잠영이 해결책이었다. 돌핀킥(Dolphin Kick)과 잠영(물 속에서 하는 헤엄) 능력을 키우는 훈련을 반복하자 박태환은 4년 전보다 더 강한 선수가 돼 있었다. 

돌고래의 수영법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돌핀킥은 지느러미를 좌우가 아닌 상하로 흔들기 때문에 물속에서 무려 시속 55km의 속도(돌고래의 경우)를 낼 수 있다. 호주 국립 스포츠연구소 책임연구원인 브루스 메이슨 씨는 "물에 뛰어들어 출발할 때 돌핀킥을 유지하면서 15m를 갈 수 있다면 일찍 올라와 수면 가까이 헤엄칠 때보다 상당히 더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돌핀킥의 속도는 일반킥보다 1.4배 가량 빠르다고 한다. 

2004 아테네올림픽 400m 자유형 부문 금메달리스트 이안 소프를 키워낸 마이클 볼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는 박태환은 처음 볼 코치에게 왔을 때 (잠영 시) 돌핀킥을 한두 번 밖에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네 번으로 늘었다고 한다.

박태환은 강력한 돌핀킥을 위해 복근을 강화시키는 훈련에 집중했다. 또 지구력이 요구되는 지근보다는 순간적인 파워를 낼 수 있는 속근이 발달할 수 있도록 훈련 방법을 수정했다. 강도 높은 근력 강화 훈련으로 박태환의 돌핀킥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고 잠영 깊이는 물론 발차기 횟수도 늘어났다.

같은 거리를 달리는 경우, 수영 선수는 육상 선수보다 4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만큼 물의 저항을 뚫고 나가는 것은 공기를 가르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수영은 물의 저항과의 싸움이다. 저항을 덜 받기 위해서는 물 속에서의 수영하는 시간, 즉 잠영 거리를 늘려야 했다. 그동안 낮고 짧은 잠영 능력은 박태환의 단점이었다. 박태환의 잠영 훈련이 시작됐다. 

"태환, 얕아. 너무 얕았어. 너무 오랫동안 수면 가까이에 있었어. 마이클 펠프스가 물 속에서 하는 것을 보면 수면에서 상당히 깊이 들어갔다가 아주 날카로운 각도로 다시 올라와." (마이클 볼 코치)

  
▲ 박태환과 마이클 펠프스 신체조건 비교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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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펠프스의 잠영 능력은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박태환과 펠프스의 잠영 능력을 비교해보면, 한번 잠영시 박태환은 돌핀킥을 4번, 펠프스는 7번까지 사용한다. 펠프스가 물 속에서 박태환보다 오랫동안 돌핀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리뿐 아니라 몸 전체를 이용해 물살을 타며 유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차이는 신체 조건이었다. 키와 양팔 길이가 박태환보다 10cm 더 긴 펠프스의 발길이는 무려 350mm로 박태환보다 60mm 더 길다. 박태환은 신체 조건의 열세를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타트를 똑같이 뛰더라도 키가 15cm가 더 작다면 (수면 위로) 나오는 게 15cm 더 늦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더 보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키를 늘리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스타트를 더 멀리 뛰거나 돌핀킥을 훈련해서 15cm를 더 커버할 수 있는, 그런 테크닉 쪽으로 기술을 더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박태환의 폐활량 변화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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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영과 돌핀킥과 함께 일반인의 두 배가 넘는 폐활량 또한 박태환의 장점이다. 기록 분석에 따르면 박태환의 경기 결과와 폐활량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예선 탈락한 2009 로마 세계선수권 당시 박태환의 폐활량은 6700cc, 100m•200m•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출전 때는 6820cc였다. 2012 런던올림픽을 앞둔 현재 박태환의 폐활량은 7200cc다.

"자유형 400m 시상대의 제일 높은 곳에서 정말 기쁘게 웃고 싶은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그림도 그리고 있고요. 가끔 자기 전에 멍하니 누워서 많이 상상하게 되는 데 꼭 그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 2008 베이징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박태환이 세레머리를 하고 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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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기준 28일 오후 6시 47분, 박태환의 400m 자유형 예선 경기가 시작된다. 터치 패드를 찍고 물 속에서 나와 격한 환호성을 지르는 박태환의 세레머니를 구경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by heyuna 2012. 7. 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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