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엔 김연아, 암벽 위엔 김자인!
[TV리뷰] KBS 1TV <글로벌 성공시대>, 스파이더 걸을 소개하다

지난 26일 토요일 저녁, KBS 1TV에서 방송된 <글로벌 성공시대>에 김자인(24•노스페이스) 선수가 소개됐다. '스포츠 클라이밍의 여제, 김자인'편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된 '김자인'은 방송이 끝나고도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켰고, 트위터에도 김자인 선수 관련 멘션(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프라임 시간대에 비인기 종목 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 많은 시청자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프로그램과 선수에 집중했다. 



스포츠 클라이밍(sports climbing)은 가파른 인공암벽을 오직 손과 발의 힘으로 오르는 스포츠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5m 높이의 인공암벽 4~5개 코스를 보호장구 없이 올라 마지막 홀드(정상)를 터치하고 내려오는 볼더링(bouldering)과 13m 이상의 코스를 주어진 시간 내에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겨루는 리드(lead), 15m 인공암벽에 정해진 코스를 누가 더 빨리 오르느냐 가리는 스피드(speed), 총 3개 부문으로 나뉜다. 김자인의 주종목은 리드다. 



김 선수는 9살 때 처음으로 암벽에 올랐다. 경기도 고양시 산악연맹 부회장인 아버지와 클라이밍 1급 공인 심판인 어머니 아래, 오빠 자하(28) 자비(25)도 모두 클라이밍 선수다. 그녀가 암벽을 타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53cm에 42kg, 평균 신장이 163cm인 클라이밍 선수들에 비해 작은 체구를 가진 김 선수는 '타고나지 못한' 신체조건을 남자 선수 못지 않은 훈련으로 극복하고 있다. 눈 밑이 파르르 떨릴 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 타고난 것을 바꿀 수 없으니 잘 하는 것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제가 키가 작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그만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키가 작으면 물론 불리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어요. 아무래도 키 큰 선수들보다 유연성이 좋고, 좁은 구간에서 몸을 더 웅크리거나하는 동작에서 굉장히 유리할 수가 있어서 그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암벽을 가볍게 오르기 위해서는 체중조절도 필수다. 먹고 싶은 것은 메모만 해두고 오늘 저녁도 블루베리로 때운다. 끊임없는 훈련과 자기관리 덕분일까. 2004년 세계대회에 첫 출전해 41위를 기록한 김 선수는 5년 만에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전세계 150명의 클라이밍 선수 중 한국 선수는 김자인을 포함해 둘 뿐이다. 클라이밍의 불모지 한국에서 암벽 위의 스파이더 걸이 탄생한 것이다. 

2009 중국 칭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과 동시에 첫 완등에 성공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김 선수는 이후 IFSC(국제스포츠 클라이밍연맹)이 주최하는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왕좌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10 IFSC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 5회 연속 우승에 이어 2011년에는 IFSC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에서만 총 6차례(리드 5회, 볼더링 1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1 밀라노 IFSC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에서는 볼더링 부문에서도 우승해 양 종목을 석권한 최초의 여자 선수가 됐다.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들도 많이 어려워하는 종목인 볼더링에서 리드가 주종목인 김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볼더링 대회에 참여한지 1년 되던 해였다.

"볼더링은 제게 도전에 가까운 것 같아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그걸로 동기부여를 느끼게 하는 도전, 도전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볼더링 보다는 리드에 강한데 볼더링도 제게 매력이 있는 종목이고, 리드는 할 때 행복감을 느끼게 해줘요. 두 종목 모두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지난 4월, 또 하나의 낭보가 들려왔다. 김 선수가 중국 러예에서 열린 2012 스포츠 클라이밍 아시아선수권 대회 리드 부문에서 우승해 대회 8회 연속 금자탑을 쌓았다는 소식이었다. 같은 대회 볼더링 부문에서도 우승해 올어라운드(all-around) 1위의 영광도 안았다. 올어라운드는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리드, 볼더링, 스피드 세 종목 점수를 합산해 매기는 상이다. 주종목은 물론 볼더링에서까지 아시아 최강임을 확인한 김자인. 최고를 향한 김 선수의 욕심은 암벽뿐 아니라 책상 위에서도 이어졌다.

올 2월 고려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김 선수는 동 대학원 스포츠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잘 나가는 현역이 굳이 대학원에 가야 하느냐는 주위 반대도 있었지만,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이론 공부도 병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인이는) 자기 자신을 잘 컨트롤 하는데 그것이 시합, 연습에서뿐 아니라 자기 삶과 학습에까지도 나타난다는 점이 굉장히 좋습니다. 세계 챔피언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운동을 끝낸 다음의 지도자 삶이라든지 그런 것을 다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죠. (문익수•고려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데 지지대와 길잡이가 되어주는 홀드(암벽을 오를 때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곳), 비슷한 실력을 가진 선수라면 어떤 홀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코스가 갈리고 승패가 달라진다. 김 선수는 클라이밍만큼 인생에서의 홀드 선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분명 클라이밍과 관련된 일을 하겠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거죠.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홀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by heyuna 2012. 5. 3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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