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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메달 받은 선수단 "화이팅"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김아랑, 조해리, 심석희, 공상정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대한체육회가 준비한 초콜릿 메달을 목에 걸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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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의 축제가 끝났다. 축제를 빛낸 영웅들이 돌아왔다. 지난 25일 오후 3시 40분,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장은 수백 명의 취재진과 팬, 선수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기수 이규혁을 선두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선수단이 차례로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대기 중이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 등이 선수들에게 다가가 '국민행복 금메달'을 전달했다. 대한체육회가 격려와 감사의 표시로 준비한 초콜릿 금메달이었다. 선수단은 깜짝 선물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웃음을 찾은 뒤, 초콜릿 메달을 입에 물고 사진을 찍었다.

'센터'의 주인공은 김연아도 이상화도 아닌...

이날 준비된 초콜릿 메달은 지름 9cm, 두께 1cm 크기였다. 특히 이규혁 선수에게는 최다 올림픽 참가를, 김연아 선수에게는 은퇴를 기념하는 의미로 다른 선수들 것보다 3cm 더 큰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깜짝 이벤트와 기념 촬영을 끝낸 선수단과 임원들은 인천국제공항 1층 밀레니엄홀 야외무대로 자리를 옮겨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했다. 첫째 줄은 역시 메달리스트들의 몫이었다. 김연아와 이상화가 양쪽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빙상연맹 회장이 앉았다. 두 선수 옆으로는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이 나눠 앉았다.

해단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다소 엄숙하게 진행됐다.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답지 않게 행사 내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임원들의 말씀이 시작됐다. 최종삼 선수촌장의 성적보고를 시작으로 김정행 회장의 식사, 유진룡 장관의 치사에 이어 김재열 단장의 답사 그리고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인사까지. 14분 동안 격려와 감사의 말들이 오갔다. 긴 비행으로 피곤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말씀'의 시작과 끝에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이후 평창 소개 영상이 상영됐고 주요 선수들과 임원들이 나와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소 지루했던 해단식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인터뷰 시작 전, 진행자는 시간 관계상 10분간 다섯 개의 질문만 받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미숙한 진행 이어져

첫 번째 질문부터 식상했다.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는 김연아에게 "갈라쇼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박승희에게 "500m 동메달을 딴 이후 가장 기뻐해 준 사람이 혹시 '그 분'이 아닌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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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다짐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 및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에서 이상화, 김연아, 심석희 등 선수들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등이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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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갈라쇼까지 소치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갈라에서도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감정들은 없었던 것 같고요. 마지막이긴 하지만 앞으로 예정된 공연도 있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연아의 대답이 끝나고 박승희가 마이크를 잡으려는 순간, 불쑥 다른 질문자가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에 유 장관이 '박승희 선수 차례'라며 손짓으로 제지했고, 박승희가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 분은 아니었고요. 저희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 너무 멀리 있어서요. 제가 느끼기에는 같이 있었던 쇼트트랙 대표팀이 제일 기뻐해주셨던 것 같고, 그 기쁨이 제게도 가장 크게 느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질문자는 유 장관과 김 단장에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건립 예정인 빙상장을 '김연아 빙상장'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김연아 빙상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당사자인 김연아는 불편한 웃음을 지었고, 현장에 있던 일부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유 장관은 "올림픽 공원에 그 시설을 짓는 것은 국가 기밀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다. 그 시설의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금부터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 나가야 할 사항이다. 의견은 잘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김연아 선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스케이터"라며 "빙상연맹회장으로서 정부가 하는 일에 손을 맞춰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질문도 김연아에게 향했다. 팬들이 자신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인정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냐는 물음에 김연아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힘들게 준비한 만큼 다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을 했고요. 마지막 대회인 만큼 후련하게 끝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고, 또 많은 분들이 제가 경기한 것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뒷줄에 앉은 모태범, 윤성빈뿐 아니라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며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은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 주형준, 김철민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을 마치고 온 이규혁까지. 아직 입을 열지 못한 선수가 많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선수 이름을 모르는 질문자와 대답을 끊는 진행자

마지막 질문 기회를 잡은 사람은 한 방송사 PD였다.

"박상희... 박상희 선수에게 질문을 하겠는데요. 평창 올림픽이 이제 4년 남았는데 자신의 포부가 있다면요? 심석희 선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500m 결승전에서 선두로 달리다 뒤에 오던 선수에게 걸려 넘어진 박승희. 일어나서 다시 달리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넘어졌음에도 끝까지 레이스를 펼쳐 감동을 안겨 준 박승희. 그리고 끝내 동메달을 목에 건 박승희. 이날 당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1000m에서 금메달을 따 낸 박승희. 질문자는 가장 기본적인 선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박승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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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 인파 가득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한 가운데, 취재진과 팬들이 입국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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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이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제가 평창올림픽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해서 가게 된다면 큰언니 역할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심석희가 마이크를 건네받는 순간, 진행자가 말했다.

"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기념 촬영을… 아, 네 계속해서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요. 이번 올림픽도 좋은 경험이 됐는데, 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4년 뒤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심석희)

미숙하고 불편했던 기자회견이 끝이 났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의 소감도, 마지막 올림픽을 끝낸 이규혁의 심정도 듣지 못했다. 선수 생활 2년 만에 올림픽에서 썰매 종목 한국 역대 최고 순위를 갈아치운 윤성빈 선수의 사연 또한 들을 수 없었다.

축제의 주인공들은 입을 다문 반면 행사에 참여한 정부, 협회, 연맹 임원들은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각자에게 주어진 2~3분의 발언 시간을 아낌없이 썼다. 식사, 치사, 답사로 구분해 진행했지만 이들이 말한 내용은 비슷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평창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선수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언제까지?

2년 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단은 인천공항에서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뒤 올림픽 특집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로 이동했다. 이날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렸지만 방송은 예정대로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다. 선수들은 빗물이 고인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선수단과 대통령의 오찬은 메이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치러지는 행사가 됐다.

6년 전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은 해단식을 마친 뒤 퍼레이드에 참가해야 했다. 대한체육회는 박태환과 장미란을 앞세워 서울 세종로사거리부터 서울광장 구간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도 비가 내려 퍼레이드에 참가한 선수단이 고생을 했다.

4년 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단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을 때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그보다 앞서,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이 소치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오찬을 가진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것은 아닐까? 선수를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by heyuna 2014. 2. 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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