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이천수 "고교 이후 축구 인생, 지우고 싶다"
[TV리뷰]이천수,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재출연해 사과 반복
12.07.18 16:33ㅣ최종 업데이트 12.07.18 17:13ㅣ정혜정(heyuna)
태그이천수백지연박지성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TVN 


장맛비를 뚫고 모였다. 3만 명이 넘는 관중과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들, 현 K리그 선수들과 감독들이 궂은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아 축제를 즐겼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에 2002 한일 월드컵 10주년을 기념해 히딩크 감독을 포함 2002년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2012 K리그 올스타팀과 경기를 펼쳤다.


  
▲ 지난 5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축제,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
ⓒ 정혜정
태그K리그

히딩크 감독 이하 홍명보·황선홍·김남일·박지성 등 영웅들이 그라운드에 등장하자 관중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골이 터질 때마다 선수들은 다양한 세레머니를 선보여 팬들을 즐겁게 했다. 특히 박지성 선수는 10년 전 포르투갈 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히딩크 감독에게 안긴 세레머니를 재현해 보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모두가 즐겁고 유쾌했던 그 공간에 '악동' 이천수가 설 자리는 없었다. "2002년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에 꼭 참석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천수는 2002년 국가대표 23명 가운데 유일하게 축제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라운드에 서지 못한 이천수가 백지연 앞에서 심경을 털어놓았다. 17일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는 '임의탈퇴 이천수, 이대로 잊혀지나' 편을 방송했다.

 

정리되지 않은 상황, 어두운 얼굴로 등장

 

이천수는 등장부터 심각한 표정이었다. 백지연이 인사말로 "멋을 많이 냈다, 원래 잘 차려 입고 다니냐"고 묻자 대뜸 "힘들 때 더 잘 입어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셔서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국내 축구 경기에 뛰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힘든 상황에 처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3년 만에 다시 출연한 이천수 선수가 진행자 백지연 씨의 질문을 듣고 있다.
ⓒ tvN
태그이천수
2009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던 이천수는 6월 28일, 포항전 원정경기에 동행하라는 박항서 감독의 지시에 항의하다 코칭스태프와 언쟁을 벌였다. 이에 박 감독은 2군행 징계를 내렸으나 이천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팀을 무단이탈했다. 구단은 나흘 뒤인 7월 2일, 이천수를 임의탈퇴 시켰고 이천수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그 <알나스르>로 이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임금 체불 문제로 9개월 만에 팀을 떠난 이천수는 J리그로 눈을 돌렸다. 2011년 12월까지, 1년 6개월간 J리그에서 뛴 그는 J리그의 재계약 요청을 거절하고 K리그 복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올해 1월 6일, 전남 드래곤즈 홈페이지에 '전남 드래곤즈 구단과 전남 팬들께 드리는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K리그 복귀를 희망하며 이천수가 3년 전 일에 대해 구단에 공식으로 사과한 것이다. 전남이 임의탈퇴선수 공시를 철회해야 K리그 복귀가 가능한 상황. 하지만 전남의 입장은 단호했다. 전남은 "임의탈퇴선수 공시를 철회할 의사가 없고, 이천수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갈 데가 없으니까 사과를 해서 그걸 풀고, K리그에서 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구단 측에서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가슴 속에 뭔가 뭉쳐있는 느낌이었어요. 외국에서 잘 해도 기쁨이 별로 없고 K리그에 좋았던 생각만 들고…. 머릿속에는 K리그 복귀뿐입니다."
 
이천수는 사과를 받는 입장에서는 급하게 사과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며, 시기상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문제가 된 '진정성'을 구단 측에 보여주기 위해 스승과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자선 축구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님을 만나 조언을 얻었어요. '네가 잘못한 거니까 사과하고 (K리그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운재 형과도 최근에 통화했어요. 형이 전남 소속이거든요. 정해성 감독님(2002년 당시 대표팀 코치)께 좋은 이야기 좀 많이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솔직히 어떤 방식으로 보여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천수는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3년 전에도 했던 말 "다 제 잘못이죠"

  
▲ 2009년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3회 차에 출연한 이천수 선수가 부모님께 영상 편지를 보내고 있다.
ⓒ tvN
태그이천수
이천수의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 출연(2009.6.14일 방송)해 비슷한 이야기들로 분량을 채운 바 있다.
 
"주먹감자 사건(골을 오프사이드 선언한 심판을 향해 손으로 욕설한 사건)으로 출연했을 당시, 녹화 전에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을 거냐, 그러면 저희가 이천수씨 편에서 인터뷰 해드릴게요'라고 말한 거 기억하시죠? 그때 눈물도 보이셨고 박항서 감독님께 영상 편지도 썼고,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얘기 하셨는데…" (백지연)
 
당시 방송에서 백지연은 '비난보다는 격려를 부탁한다'며 이천수를 믿고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천수가 팀을 배신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적한다'는 소식을 들은 백지연은 놀랐다고 말했다. 언론인으로서 본의 아니게 난처한 상황을 맞은 백지연. 이 말을 듣고 있는 이천수는 진행자 백지연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손만 만지작거렸다. 백지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3년 전에 인터뷰에서도 지금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반복된 건 뭘까요, 왜 그랬을까요?" (백지연)
 
"제 잘못이죠. 제가 한 것이고, 어떻게 됐든 경제적 문제도 제가 만든 거고요." (이천수)
 
  
▲ 1년 선배인 박지성 선수의 활약상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이천수 선수
ⓒ tvN
태그이천수

백지연은 이천수에게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도 이어갔다. 2002년 같은 '막내 라인'이었던 박지성과 이천수. 10년이 지난 지금, 둘은 많이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박지성 선수는 계속 탄탄대로를 걸어가는데 이천수 선수는 이유가 어찌됐든 굴곡이에요. 이천수 선수를 지지했던 팬들로선 정말 안타까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달라진 길,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백지연)

"어릴 적에 재능 있다, 잘한다, 천재다, 이런 말들 때문에 굉장히 거만해지고 나약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성이 형 같은 경우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더 (고개) 숙이고 노력했고, 저는 천재가 아님에도 그런 말에 휩쓸렸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천수)

이천수의 한숨 "이제부터는 한달 한달이 고통일텐데…"
 
32살인 이천수는 '축구선수로서 생명은 35살에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선수 생활, 'K리그 복귀 가능' 소식만을 기다릴 수 없다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기다려서 정말 좋은 일이 생긴다면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한달 한달이 굉장히 저한테 고통일 것이고, 지금 6개월 쉬었는데 1년을 더 쉬게 되면 나올 수 있는 기사의 내용은 2002년 월드컵 선배님들께서 많이 하는 은퇴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더 이상 저를 찾는 팀도 없을 것이고, K리그에서도 잊혀질 것이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제 입장에서는…."

이천수를 찾는 곳이 많지 않은 상황, 정말 운동을 해야겠다고 판단이 들었을 때는 모든 나라가 뛰고 싶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이천수. 하지만 그 곳이 K리그라면 더 좋다는 그.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중 한 명인 그는 지금 어디에도 설 곳이 없다. 고등학교 이후 축구 인생을 모두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그에게 전남 구단이 관용을 베풀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줄까. 2002 한일 월드컵 10주년을 맞아 팬들과 국민들의 관심이 호의적인 이때, 이천수가 전남을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by heyuna 2012. 7. 18. 19:35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