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김연아에게 거는 과도한 ‘태클’

아이스 쇼, 교생실습 전후에 불거진 맥주 광고 논란


'피겨 여왕의 남장'과 올림픽 챔피언, 세계선수권 우승자들이 참가해 화제를 모은 'E1 올댓스케이트 스프링 2012'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김연아의 아이스 쇼는 등장부터 여느 공연과 달랐다. 선수들은 이벤트를 통해 미리 선발된 일반인과 동반 입장했다. 세계적인 선수와 손을 잡고 얼음 위에 오른 팬들은 선수를 따라서 스파이럴을 선보이는 등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이들과 함께 3만 여 관중들도 '피겨낙원'에 입장했다.

 

세계적인 선수들만 서는 무대라고 인식됐던 아이스 쇼. 김연아는 국내 피겨 꿈나무들도 '피겨 낙원'으로 초대했다. 2012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남녀 시니어 싱글 부문 우승자 김진서(16·오륜중)와 김해진(여·15·과천중), 올해 여대생이 된 곽민정(19·이화여대)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선수로 참가하지 못한 피겨꿈나무들을 위해 김연아는 초대권을 제공했고, 꿈나무들은 아이스 쇼를 관람하며 '나도 언젠가 저 무대에 서겠다'는 꿈을 키웠다. 


          ▲ 'E1 올댓스케이트 스프링 2012'을 찾은 피겨 선수들. (왼쪽부터) 조경아, 이호정, 김하은 선수. ⓒ 정혜정


김연아의 아이스 쇼는 선수들만 즐기는 축제가 아니다. 아이스 쇼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팬들은 기부 이벤트를 기획했다. 스타의 선행을 함께하자는 의미에서 '쌀 화환 기부 이벤트'를 진행한 김연아의 팬들도 이번 아이스 쇼의 주인공이었다. 이벤트 운영진은 진행 기간 동안 모인 400만 원의 모금액으로 쌀 1.2톤을 구매했다.

 

이 쌀은 아이스 쇼 기간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정문 앞에 진열해뒀다가 지난 11일 경기도 구리시청(700kg)과 서울 신길동에 위치한 살레시오 수녀원(500kg)에 전달됐다. 일반인도 함께하는 쇼, 팬들의 기부 이벤트. 김연아의 아이스 쇼는 갈라 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선수와 팬들은 매해 봄, 여름 두 차례 열리는 아이스 쇼를 사계절 내내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스케이터와 팬뿐 아니라 '연아의 아이스 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또 있다. '올댓스케이트 섬머 2010' 이후 지금까지 아이스 쇼 기간 전후의 포털 사이트와 언론은, 김연아를 비방하는 기사들로 채워져 왔다. 감성 연기로 기립박수를 받은 현장과 달리 포털 사이트 메인에는 점프하다 기우뚱한 '위기의 연아' 사진이 걸렸고,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 대신 찡그린 표정을 한 선수의 얼굴이 '명당'에 자리잡았다. 이번 아이스 쇼에서도 같은 행태는 반복됐고, 아이스 쇼는 끝났지만 주제를 바꾼 비방 기사는 이어졌다. 아이스 쇼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교생실습에 매진하고 있는 김연아에게 갑자기 '맥주광고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 김연아 선수가 출연한 맥주 광고의 한 장면.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정희준 교수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춤추며 맥주 마시는 선생님, 우리 김연아 선생님!"이란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김연아가 '국가대표 은퇴나 프로 전향에 대해 의견 표명은 하지 않으면서 국가 대표 이미지를 이용해 광고 섭외에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연아가 학교 출석도 잘 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교생실습은 제대로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공인 김연아는 (맥주 광고를 찍기 전에)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고민을 했어야 한다' 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글을 적었다. 일부 언론들은 이에 대한 갑론을박을 담은 내용들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2006년 시니어 선수로 데뷔한 뒤부터 2011년 4월 열린 세계피겨선수권 대회까지, 끊임없는 부상에도 한 시즌도 쉬지 않고 대회에 출전해온 김연아가 '휴식'을 선언한지 1년이 됐다. 과연 정 교수의 주장대로 김연아는 선수생활 은퇴에 대한 입장을 보류한 채 국가대표 이미지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김연아는 지난해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기여를 했다. 뿐만 아니라 유니세프, 동계유스올림픽, 평창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한국을 널리 알리고 피겨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선수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으로 해내고 있다. 2007년 첫 CF를 찍은 김연아는 CF로 얻은 수익 중 1200만 원을 피겨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으로 지원한 이후 지금까지 매년 소년소녀 가장을 비롯한 청소년들과 스포츠 유망주를 후원하고 있다. 이쯤이면 스포츠 스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감'을 기대 이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학교 출석도 잘 하지 않은 걸로 안다'며 정 교수가 지적한 불성실한 태도도 전후 사정을 파악 못한 일방적인 비방에 불과하다. 2009년 체육특기자로 고려대에 입학한 김연아는 대학진학을 고민하던 2008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려면 1년 정도 대학 생활을 하기 어려울텐데 이런 점을 이해해주는 대학이면 좋겠다"며 선수 생활에 대한 지원을 대학 선택의 최우선 조건으로 꼽았다.

 

고려대는 "김연아가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올림픽을 비롯한 선수로서 활동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지원하고, 훈련장소로 아이스링크를 제공하는 등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생활, 올림픽을 대비한 훈련 환경이라 판단한 김연아는 고려대를 선택했다. 김연아는 "앞으로 선수생활 중 있을 많은 어려움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대학이라고 생각했다"고 지원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2011 세계피겨선수권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김연아는 지난해 4월 학교로 돌아갔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학교에서 연아를 보니 사인 받고 싶었지만 연아의 일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멀리서만 지켜봤다' '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등의 '연아 등교 인증 후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국내에 머무를 때 꾸준히 출석한 김연아가 어느새 졸업반이 됐다.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4학년인 김연아는 4주간의 교직 이수과정을 마쳐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김연아는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진선여자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시작했다. 스승의 날, 김연아의 공식홈페이지에 2-11반 제자들과 김연아 그리고 지도 교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교생 선생님으로 출근한 지 이제 막 1주일이 지났지만 진선여고 학생들의 후기와 김연아가 학생들에게 작성한 싸인 등은 '자주 결근해도 김연아이기 때문에 교사 자격증이 그냥 나가는 것 아니냐'는 정 교수의 생각이 불필요한 기우임을 증명하기 충분한 듯 하다.  


               ▲ 교생실습 중인 김연아 선수가 제자들, 지도 교사와 함께 찍은 사진. ⓒ 김연아 선수 공식홈페이지       

 

'어리고 순수한' 김연아가 맥주 광고를 찍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음주문화를 조장한다는 것은 청소년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발언이고, 국가대표인 김연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연아를 '순수한 국민 여동생'으로 규정한 것은 선수 자신이 아닌 언론과 대중이었다. 23살의 나이, 교생실습을 할 정도로 훌쩍 커버린 김연아를 마냥 어린 아이로 보고 맥주 광고를 찍은 것에 비난하는 행동, 기부활동과 선행에 앞장 설 때는 국가대표 선수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고 여기고 논쟁거리도 아닌 사항을 굳이 문제화시켜서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들. 박지성, 홍명보, 추성훈 등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주류 광고를 찍었지만 유독 '김연아의 맥주'에만 유난이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해 국위 선양한 김연아에게 박수는커녕 유난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에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by heyuna 2012. 5. 17. 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