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언니 영광, 경아가 이을래요”
[단비인터뷰] 아직은 척박한 환경에서 꿈 키우는 피겨선수 조경아
2011년 08월 25일 (목) 11:06:21정혜정 기자  smse7728@naver.com

지난 달 7일 자정, 자크 로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는 순간 많은 국민들은 각자 올림픽 선수라도 된 듯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 순간, 진짜로 평창 무대에서의 영광을 꿈꾸고 있는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조경아 선수(14·과천중)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트위터에 “평창이닷!ㅋㅋ”라고 썼다. 7년 후 평창 동계올림픽 무대에서 화려한 피겨 연기를 펼친 뒤 메달을 목에 거는 그 순간을 그리면서.

경쟁의식 아닌 우정으로 똘똘 뭉친 샛별 5인방

  
▲ 97년생 동갑내기들. (시계방향으로) 조경아, 이호정, 박연준, 김해진, 박소연 선수.

조 선수는 지난 1월 태릉빙상장에서 열린 제65회 전국 남녀종합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주니어부에서 우승을 차지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김해진, 박소연, 박연준, 이호정 등 동갑내기 피겨 샛별 5인방 중 마지막으로 국가대표가 된 조 선수는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훈련을 할 수 있어 신이 났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같이 훈련하게 돼 좋고 (김)연아 언니, (곽)민정 언니랑 함께 훈련한다는 사실이 새로웠어요. 분위기도 좋고 재밌어요. 민정 언니가 분위기메이커고요. 친구들 만나면 쉬는 시간에도 수다 떨고 스케이트 타다가도 한마디 툭 던지고 지나가고요. (웃음)”

지난 6월 태릉빙상장에서 만난 조 선수는 동갑내기들과 경쟁하기보다 서로 응원하며 힘든 훈련시간을 즐겁게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끈끈한 동료애로 똘똘 뭉친 5인방은 피겨 세대교체의 주역들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조경아 선수와 어머니 신윤정씨. ⓒ 정혜정

조 선수는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안양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에서 진윤기 코치(34)에게 피겨를 배우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눈에 띄게 늘자 차츰 선수로서 목표를 갖게 됐다. 어머니 신윤정씨(46)는 매일 딸에게 물었다고 한다.

“경아야, 오늘 목표는 뭐야?” 
“더블악셀 (공중에서 2바퀴 반 회전한 후 착지하는 점프)을 완벽하게 뛰는거야.” 
“그래, 오늘은 더블악셀 하나만 뛰어도 성공이겠다.”

모녀는 매일 작은 목표를 세웠고 어린 경아는 그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갔다. 나날이 실력이 늘었지만 시련의 순간도 있었다. 2009년 마지막 날 지상훈련 도중 발목을 삔 것이다. 전국남녀종합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고, 이 부상 때문에 대회에서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절치부심, 1년 후 대회에서는 주니어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피겨 여왕' 나온 나라임에도 훈련 환경 여전히 아쉬워

  
▲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반인에 개방하고 있다. ⓒ 태릉선수촌홈페이지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된 조 선수는 훈련 환경이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마음 편히 연습하기 힘들었던 이전과 달리 국가대표 선수촌인 태릉에서는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는 실내빙상장에서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3종목의 국가대표들이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한 종목을 여유 있게 타긴 어렵다. 실내빙상장은 오전 6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에 닫는데 피겨스케이팅선수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훈련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400미터 트랙을 갖춘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장소다. 그런데 이곳은 등록 선수(06시~08시, 18시~20시)와 국가대표 선수(08시~10시, 16시~18시)를 위한 훈련시간보다 일반(10시~19시)에게 공개된 시간이 더 많아 선수들이 한 곳에서 훈련하지 못하고 한국체대 빙상장 등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있다. 조 선수는 이런 점이 아쉽다고 한다.

“전지훈련을 가보니 외국 링크는 일반 개장 시간보다 선수들을 위한 훈련 시간이 많아서 부러웠어요. 우리는 그게 안 되니까 밤늦게까지 훈련하고 또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타야하는데 그게 좀 힘들어요.”

지난 8일 단비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국제스케이트장 관리자는 선수보다 일반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태릉선수촌은 대한체육회에서 관리하는 것이고, 우리는 정해진 규칙을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관리자에 따르면 비수기(3월~6월, 10월)에는 하루에 300~400명, 성수기(11월~2월) 때는 1천 명에서 많게는 2천여 명이 국제스케이트장을 찾는다고 한다.

  
▲ 조경아 선수가 웃으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정혜정

중학생 조경아의 일상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촘촘히 짜여있다. 집에서 태릉선수촌까지는 꼬박 1시간 거리. 오전 9시에 태릉실내빙상장에 도착해 지상훈련으로 몸을 풀고 10시 부터 12시까지 코치에게 레슨을 받는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사이버 강의로 학교 수업을 대신한다. 이 시간에 가끔 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다시 지상훈련 시간이다. 스트레칭, 계단뛰기 등을 반복하며 체력을 보강한다. 지상훈련이 끝나면 표현력과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발레 학원으로 향한다. 발레 학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집 근처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에서 빙상훈련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밤 12시까지 스케이팅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 1시. 다음날 오전 훈련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든다.

  
▲ 조경아 선수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 정혜정

국가대표 훈련 때문에 학교 수업을 할 수 없어 대신 듣는 사이버 강의는 제도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온라인 학습 사이트에 가입해 하루 1~2개 강의씩 공부하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중 김연아(21‧고려대)와 김민석(19‧고려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중고등학생들인데, 이들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태릉빙상장에서 훈련하고 이후 과천시민회관링크장, 목동아이스링크장 등을 돌며 밤늦게까지 연습하느라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빙상장과 빙상장을 옮겨 다니는 시간에 짬을 내 사이버강의를 듣거나 학교 숙제를 해결한다. 어린 선수들은 이런 일상이 버겁고, 수업과 훈련을 체계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기를 희망한다.

  
▲ 연아언니와의 만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경아 선수. ⓒ 정혜정
조 선수는 가장 닮고 싶은 선수로 ‘연아 언니’를 꼽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머니가 ‘연아 효과’를 설명했다.

“연아 선수가 얼굴만 보여줘도 애들 태도가 달라져요. 애들이 힘들어서 펜스에 붙어 있다가도 연아 선수가 링크에 등장하면 (활주)속도를 높이고 점프를 뛰기 시작해요. 연아 언니한테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요. (웃음) 연아 선수 등장 자체가 후배들한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후배들은 ‘피겨여왕’ 김연아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김 선수는 또 그런 후배들을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훈련 환경 개선을 촉구하지만 현실은 그리 빨리 나아지지 않는 듯 하다. 

열심히 연습해서 ‘연아 언니의 영광’을 이어가겠다는 조 선수 옆에서 신 씨는 조심스럽게  어머니로서의 바람을 내비쳤다.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내일의 행복을 꿈꿀 수 있겠어요.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면서 경아가 즐겁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 선수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공간, 보다 충실하게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0

by heyuna 2012. 5. 11. 20:28

"구토할 것 같다는 이승엽 심정... 직접 겪어봤다"
[인터뷰] KBS 스포츠하이라이트 이정화 기자... "성적 지상주의 바뀌어야"
11.09.01 09:00 ㅣ최종 업데이트 11.09.02 13:56 정혜정 (heyuna)
  
▲ 이 기자는 ‘스포츠를 좋아 하고, 많이 알고, 할 줄 아는 것’을 스포츠 기자가 갖춰야 할 자격요건으로 꼽았다. ⓒ 정혜정
ⓒ 정혜정
 이정화 기자

약 12년 전, 연세대학교 화학과 대학원에서 한 여학생이 라디오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중계를 들으며 실험하다 교수에게 혼쭐이 났다. 

"실험하는데 왜 이렇게 딴 생각이 많은가. 자네는 화학 외에 관심 갖는 게 너무 많아." 
 

지도교수와의 공동연구로 대학원 2학기 차에 해외 유명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등 촉망받던 그는 '온 신경을 화학에만 쏟아야 교수가 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적잖이 상심했다. 야구를 좋아하던 아버지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야구를 보며 '삼진 아웃' '볼 넷'을 외쳤고, 대학시절엔 야구와 비슷한 소프트볼 동아리에서 맹활약했던 그에게 '야구사랑'을 버려야 하는 학자의 삶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외환위기 영향으로 경제적 형편이 나빠져 유학 가기 어렵게 되자, 그는 1999년 가을에 대학원을 그만뒀다. 

 

화학도에서 스포츠 기자로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6개월여의 방황 끝에 '야구선수를 인터뷰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렸다. '평생 후회하지 않으려면 도전해 봐야겠다'고 결심하고 2000년 3월부터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사들은 응시자 연령에 제한을 뒀다. 만 26세였던 그에게는 2000년이 시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그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언론인인 손석희 전 아나운서(성신여대 교수)의 사진을 걸어 놓고, 야구장에 가서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자신을 상상하며 시험 준비에 매진했다. SBS, 한겨레, MBC, 중앙일보 등 여러 언론사 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다 그해 12월 KBS 스포츠기자 시험에 합격, 꿈을 이뤘다. 

이정화 기자(38)는 KBS에 입사한 뒤 6개월간 경찰서를 출입하며 사회부 사건기자로 훈련을 받았다. 2001년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스포츠부에서 10년간 취재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지금은 제작부 소속으로 KBS 2TV '스포츠하이라이트'에 출연중이다. 취재기자 생활 첫 1년은 축구와 배구 담당이었고 마지막 1년은 빙상, 피겨, 역도, 수영, 골프, 핸드볼 등 생활체육과 장애인 체육을 맡았다. 그 중간의 8년은 야구와 농구를 전담했다. 

  
▲ 이 기자가 KBS 2TV <스포츠하이라이트>에 출연해 스포츠 소식을 전하고 있다.
ⓒ KBS 화면 캡처
 이정화 기자

야구 '마니아'와 스포츠 '기자' 사이

야구 '마니아'지만 야구장에서 일하는 게 늘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감독과 선수를 만나서 주변 취재를 하고 경기를 보면서 게임의 승부처가 어디였는지 맥을 짚어요. 경기가 끝나면 수훈 선수와 감독을 인터뷰하고 홍보팀 등 주변 취재를 한 뒤 기사를 쓰죠. 보통 스포츠뉴스가 시작 됐을 때 야구경기가 진행 중일 때도 많기 때문에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늘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일하러 갔을 때는 야구를 즐길 수가 없어요."
 

모든 걸 잊고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응원하고 싶지만 일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이 기자는 대신 주말이나 휴가 때는 무조건 야구장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라 틈만 나면 남편과 함께 야구를 보러 간다고. 

야구선수들 만큼이나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장에 많이 드나들어선지 취재기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두산베어스 내야수 손시헌(31)을 꼽았다. 그는 첫 만남에서 손 선수가 대성할 재목이라는 것을 알아봤다고 한다.  

"두산베어스가 2004년 일본 쓰쿠미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같이 갔어요. 신인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한 선수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뛰어오더라고요. 심한 감기로 훈련에도 빠지고 누워 있었는데 인터뷰가 잡혔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다는 거예요. 2003년 8월 두산베어스 연습생으로 들어온 손 선수에게 방송사 인터뷰는 놓칠 수 없는 큰 기회로 보인 거예요. 얼굴이 정말 안 돼 보였는데, 끝까지 괜찮다며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인터뷰하던 게 인상 깊었어요. 결국 국가대표 유격수에 두산베어스를 대표하는 타자가 되더군요."

이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선수도 야구선수 이승엽(35·일본 오릭스)이다. 

"지난 2006년 이승엽 선수를 취재했을 때 이 선수가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구토가 나올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도대체 얼만큼 힘들면 토할 것 같을까 하는 궁금증에 저도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올해로 4년째 하고 있는데 이제는 선수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전 제 몸을 만들기 위해서 훈련하지만 선수들은 이걸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고 생각하니 존경심도 생기고 그들의 고통도 이해할 것 같아요."

그는 '스포츠를 좋아 하고, 많이 알고, 할 줄 아는 것'을 스포츠 기자가 갖춰야 할 자격요건으로 꼽았다. 경기에서 졌을 때 얼마나 분한지, 선수가 재활치료를 끝내고 다시 경기장에 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면 선수들과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기자로 일하다 보면 가끔 사람들이 갖는 편견에 화가 날 때도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해체 위기에 몰린 용인시청 핸드볼팀을 취재하던 중 용인시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9시 뉴스 끝자락에 방송되는 거면 직원으로 충분하지 시장까지 인터뷰할 필요가 있느냐"하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스포츠뉴스를 폄훼하는 태도였다. 같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스포츠 기자는 고민이 필요 없고, '이겼다 졌다'만 보도하는 사람들이니 기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낮춰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고 한다. 이런 편견들은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생각이 왜곡됐기 때문이라는 게 이 기자의 견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둘 중 하나만 뛰어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선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운동까지 잘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운동선수는 운동만 하도록 교육시스템이 자리 잡혀 있어요."

"학교에서 운동과 공부 균형이 맞아야" 

KBS 스포츠뉴스가 기획 방영한 <2010 학교체육 새로운 시작> 시리즈는 한국과 일본의 운동부 교육시스템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연세대, 고려대와 일본 명문대인 와세다, 게이오 대학의 야구부 졸업생 취업률을 비교해보니 연고대 졸업생 14명 중 절반이 취업을 하지 못 하고 '백수'로 지내는 반면, 와세다, 게이오 두 대학의 졸업생 73명은 전원이 취업에 성공했다. 그중 언론사나 공기업에 취직한 경우도 30명이 넘었다. KBS 스포츠뉴스는 한일 대학 야구부 취업률의 이 같은 차이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시스템 유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학생들의 체육 학습권과 운동부 선수들의 공부 학습권,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KBS 스포츠가 앞장서서 바꿔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KBS 스포츠뉴스가 기획 방영한 <2010 학교체육 새로운 시작>시리즈 중 '한일 대학 야구부, ‘극과 극’ 취업률' 편.
ⓒ KBS 화면 캡처
 2010학교체육 새로운 시작

이 기자는 우리 스포츠계의 '승리 지상주의'에도 유감이 있다. 지난 5월 2011년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 여자 46kg 이하급에 출전한 국가대표 막내 김소희 선수(17)는 16강전에서 상대방의 발차기를 막다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뼈가 삐져나온 부상이어서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손가락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다"며 출전을 만류했다. 하지만 김 선수는 아픔을 참고 시합을 강행했고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김 선수를 취재한 이 기자는 당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회고했다.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손가락 마비쯤은 무시해도 될 만큼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이 대회 나흘째까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상황에서 이 친구가 어떻게 그만 둘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는 당시 언론에서 '부상 투혼'으로 미화할 수 있었지만 1등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한국 스포츠 현실에 답답함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 기자는 "공영방송의 스포츠기자로서 우리 스포츠계의 문제를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고, 체육이 생활의 일부가 되도록 변화를 이끌어 내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by heyuna 2012. 5. 11. 20:27

“화학교수직 대신 야구장 선택했죠”
[신문쟁이 방송쟁이] KBS 스포츠하이라이트 이정화 기자
2011년 08월 31일 (수) 19:25:59정혜정 기자  smse7728@naver.com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 연세대 화학과 대학원에서 한 여학생이 라디오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중계를 들으며 실험을 하다 교수에게 혼쭐이 났다.

“실험하는데 왜 이렇게 딴 생각이 많은가. 자네는 화학 외에 관심 갖는 게 너무 많아.”

  
▲ 이정화 KBS 스포츠기자. ⓒ 정혜정
지도교수와의 공동연구로 대학원 2학기 차에 해외 유명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등 촉망받는 화학도의 길을 가던 그는 ‘온 신경을 화학에만 쏟아야 교수가 될 수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에 적잖이 상심했다. 야구를 좋아하던 아버지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야구를 보며 ‘삼진 아웃’ ‘볼 넷’을 외쳤고, 대학시절엔 야구와 비슷한 소프트볼 동아리에서 맹활약했던 그에게 ‘야구 사랑’을 버려야 하는 학자의 삶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경제적 형편이 나빠져 유학을 가기 어렵게 되자, 그는 1999년 가을에 대학원을 그만뒀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6개월여의 방황 끝에 ‘야구선수를 인터뷰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렸다. ‘평생 후회하지 않으려면 도전을 해 봐야겠다’고 결심하고 2000년 3월부터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사들은 응시연령에 제한을 뒀다. 만 26세였던 그에게는 2000년이 시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그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언론인인 손석희 전 아나운서(성신여대 교수)의 사진을 걸어 놓고, 야구장에 가서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자신을 상상하며 시험 준비에 매진했다. 서울방송(SBS), 한겨레, 문화방송(MBC), 중앙일보 등 여러 언론사 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다 그해 12월 한국방송(KBS) 스포츠기자 시험에 합격, 꿈을 이뤘다.

이정화 기자(38)는 KBS에 입사한 뒤 6개월간 경찰서를 출입하며 사회부 사건기자로 훈련을 받은 뒤 2001년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스포츠부에서 10년 간 취재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지금은 제작부 소속으로 KBS 2TV ‘스포츠하이라이트’에 출연하고 있다. 취재기자 생활 첫 1년은 축구와 배구 담당이었고 마지막 1년은 빙상, 피겨, 역도, 수영, 골프, 핸드볼 등 생활체육과 장애인 체육을 맡았다. 그 중간의 8년은 야구와 농구를 전담했다.

  
 ▲ 이 기자가 KBS 2TV <스포츠하이라이트>에 출연해 스포츠 소식을 전하고 있다. ⓒ KBS 홈페이지

야구 '마니아'와 스포츠 '기자' 사이

야구 ‘마니아’인 그지만 야구장에서 일하는 게 늘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감독과 선수를 만나서 주변 취재를 하고 경기를 보면서 게임의 승부처가 어디였는지 맥을 짚어요. 경기가 끝나면 수훈 선수와 감독을 인터뷰하고 홍보팀 등 주변 취재를 한 뒤 기사를 쓰죠. 보통 스포츠뉴스가 시작 됐을 때 야구경기가 진행 중일 때도 많기 때문에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늘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일하러 갔을 때는 야구를 즐길 수가 없어요.”

모든 걸 잊고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응원하고 싶지만 일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이 기자는 대신 주말이나 휴가 때는 무조건 야구장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라 틈만 나면 남편과 함께 야구를 보러 간다고.

  
 ▲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정화 기자. ⓒ 정혜정

야구선수들 만큼이나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장에 많이 드나들어선지 취재기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두산베어스 내야수 손시헌(31)을 꼽는다. 그는 첫 만남에서 손 선수가 대성할 재목이라는 것을 알아봤다고 한다. 

“두산베어스가 2004년 일본 쓰쿠미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같이 갔어요. 신인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한 선수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뛰어오더라고요. 심한 감기로 훈련에도 빠지고 누워 있었는데 인터뷰가 잡혔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다는 거예요. 2003년 8월 두산베어스 연습생으로 들어온 손 선수에게 방송사 인터뷰는 놓칠 수 없는 큰 기회로 보인 거예요. 얼굴이 정말 안 돼 보였는데, 끝까지 괜찮다며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인터뷰하던 게 인상 깊었어요. 결국 국가대표 유격수에 두산베어스를 대표하는 타자가 되더군요.”

이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선수도 야구선수 이승엽(35·일본 오릭스)이다.

“지난 2006년 이승엽 선수를 취재했을 때 이 선수가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오바이트가 나올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도대체 얼마만큼 힘들면 토할 것 같을까 하는 궁금증에 저도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올해로 4년 째 하고 있는데 이제는 선수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전 제 몸을 만들기 위해서 훈련하지만 선수들은 이걸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고 생각하니 존경심도 생기고 그들의 고통도 이해할 것 같아요.”

그는 ‘스포츠를 좋아 하고, 많이 알고, 할 줄 아는 것’을 스포츠 기자가 갖춰야 할 자격요건으로 꼽았다. 경기에서 졌을 때 얼마나 분한지, 선수가 재활치료를 끝내고 다시 경기장에 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면 선수들과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기자는 ‘스포츠를 좋아 하고, 많이 알고, 할 줄 아는 것’을 스포츠 기자가 갖춰야 할 자격요건으로 꼽았다. ⓒ 정혜정
스포츠기자로 일하다 보면 가끔 사람들이 갖는 편견에 화가 날 때도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해체 위기에 몰린 용인시청 핸드볼팀에 대해 취재하던 중 용인시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9시 뉴스 끝자락에 방송되는 거면 직원으로 충분하지 시장까지 인터뷰할 필요가 있나’하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스포츠뉴스를 폄하하는 태도였다. 같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스포츠 기자는 고민이 필요 없고, 이겼다 졌다만 보도하는 사람들이니 기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낮춰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고 한다. 이런 편견들은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생각 자체가 왜곡된 탓이 크다는 게 이 기자의 의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둘 중 하나만 뛰어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선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운동까지 잘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운동선수는 운동만 하도록 교육시스템이 자리 잡혀 있어요.”

당장의 성적보다 균형잡힌 교육 시스템으로 선수들 길러내야

KBS 스포츠뉴스가 기획 방영한 <2010 학교체육 새로운 시작>시리즈는 한국과 일본의 운동부 교육시스템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연세대, 고려대와 일본 명문대인 와세다, 게이오 대학의 야구부 졸업생 취업률을 비교해보니 연고대 졸업생 14명 중 절반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백수’로 지내는 반면, 와세다, 게이오 두 대학의 졸업생 73명은 전원이 취업에 성공했다. 그 중 언론사나 공기업에 취직한 경우도 30명이 넘었다. KBS 스포츠뉴스는 한일 대학 야구부 취업률의 이 같은 차이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시스템 유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학생들의 체육 학습권과 운동부 선수들의 공부에 대한 학습권,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KBS 스포츠가 앞장서서 바꿔나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KBS 스포츠뉴스가 기획 방영한 <2010 학교체육 새로운 시작>시리즈 중 '한일 대학 야구부, ‘극과 극’ 취업률' 편. ⓒ KBS 홈페이지 
이 기자는 우리 스포츠계의 ‘승리 지상주의’에도 유감이 있다. 지난 5월, 2011년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 여자 46kg 이하급에 출전한 국가대표 막내 김소희 선수(17)는 16강전에서 상대방의 발차기를 막다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뼈가 삐져나온 부상이어서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손가락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다’며 출전을 만류했다. 하지만 김 선수는 아픔을 참고 시합을 강행했고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김 선수를 취재한 이 기자는 당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회고했다.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손가락 마비쯤은 무시해도 될 만큼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승리지상주의에 빠져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이 대회 나흘째까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상황에서 이 친구가 어떻게 그만 둘 수 있었겠는가 이해도 되고요.”

그는 당시 언론에서 ‘부상투혼’으로 미화할 수 있었지만 1등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한국 스포츠 현실에 답답함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 기자는 “공영방송의 스포츠기자로서 우리 스포츠계의 문제를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고, 체육이 생활의 일부가 되도록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3

by heyuna 2012. 5. 1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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