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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여왕 김연아가 21일 오전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서 무결점 연기를 마친 뒤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김연아는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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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21일 새벽 3시 50분(한국 시각),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얼음 밖으로 나왔다.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이후 꼬박 18년 만이다.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났다. 은퇴 무대, 수천만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빙판 위에 선 그는 늘 그랬듯 의연했다.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3Lz+3T) 콤비네이션 점프를 가볍게 뛰며 기분 좋게 연기를 시작했다. 이어진 트리플 플립(3F),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3S+2T) 콤비네이션도 침착하게 수행했다. 스핀과 스텝 시퀀스도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지난 1월 소치올림픽 리허설 무대로 택한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싱글 처리했던 마지막 점프 더블 악셀(2A)도 이번에는 완벽했다. 체력을 키운 김연아는 마지막 점프를 첫 점프처럼 높이 도약한 뒤 깨끗하게 착지했다. 

의연했던 피겨 여왕, 스승과 포옹하며 울컥

김연아는 탱고의 선율에 맞춰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안무를 깔끔하게 수행해나갔다. 마지막 과제인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은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끝까지 집중해서 경기를 끝낸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클린으로 장식했다. 그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4분 10초간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한 김연아의 경기가 끝났다. 자신의 바람대로 실수 없이 대회를 마쳤으나 김연아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가슴을 누르며 눈물을 흘리던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긴장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김연아가 관중석에 인사를 건넨 뒤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첫 스승, 류종현 코치와 눈을 맞춘 뒤 포옹을 하던 김연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7살 꼬마를 세계적인 피겨 선수로 길러낸 스승이었다.

스승과 '키스앤크라이존'에 앉은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성적표를 기다렸다. 점수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고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김연아는 기술점수(TES) 69.69점과 예술점수(PCS) 74.50점을 얻어 총점 144.19점을 받았다. 그는 점수가 발표되자 예상했다는 듯 웃어넘겼고, 양 옆에 앉은 신혜숙-류종현 코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144.19점, 자신이 밴쿠버올림픽 때 세운 프리스케이팅 세계신기록에는 5.87점 모자랐고 소치올림픽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5.48점이 부족했다. 심판들은 김연아의 연기를 은메달이라 판단했다.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편파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클린 연기. 은메달에 그칠 경기력이 아니었다. 잠을 설치며 피겨 여왕을 응원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 등 피겨 전설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금메달은 제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며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분 좋고 감사드린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김연아 경기가 끝난 직후 한 포털 사이트에 "연아야 고마워"란 문구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여왕에게 전하는 찬사였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그가 국민에게 준 행복은 금메달 그 이상이었다고 이제야 고백하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시니어 선수로 데뷔했다.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연기한 소녀는 16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과 안정된 점프를 선보였다. 이후 두 번의 국내 대회를 포함해 총 25번의 대회에 출전했다. 25번의 경쟁과 비교 그리고 25번의 긴장감과 부담감.

'피겨 여왕' 김연아, 피겨 역사 속으로

김연아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냈다. 이를 견뎌낸 보상은 짜릿했다. 이번 소치올림픽을 포함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했다. 피겨 100년 역사상 김연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타이틀이다.

간절히 원하던 세계챔피언 타이틀은 두 번(2009년, 2013년)이나 따냈고 10년 넘게 간직해 온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꿈도 4년 전에 이뤘다. '밴쿠버올림픽 챔피언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면 멋지지 않을까?' 꿈을 이룬 김연아의 고민이 시작됐다.

2011년 세계선수권 출전 이후 1년여간 방황의 시간을 보낸 그는 자신의 은퇴 무대를 소치올림픽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곳에 후배 선수들과 함께 가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끝냈어도 될 선수 생활을 연장했고 지독한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반이 흘렀다.

2013-2014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시즌이 시작됐고  2월 21일 새벽 3시 46분,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 출전을 위해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경기장에 들어섰다. 출전 선수 중 마지막 순서로 빙판에 선 김연아는 끝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후회없는 연기를 펼쳤고, 소치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자신의 선수 인생을 마무리했다.

시니어 데뷔 무대에서 '록산느의 탱고'를 연기하던 어린 소녀는 이후 기술력과 표현력, 정신력과 신체 조건까지 피겨 선수로서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갖춰나갔다. 수년간 피겨 여왕 자리에서 군림했던 김연아가 2014년 2월 21일, 18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피겨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록 그는 얼음을 떠나지만 김연아가 걸어온 위대한 여정은 국민과 세계 피겨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by heyuna 2014. 2. 21. 09:20
예상대로 1위였다. 우려했던 편파 판정 의혹도 어김없이 불거졌다. 20일 새벽(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출전한 김연아가 무결점 연기를 펼쳐 기술점수(TES) 39.03점과 예술점수(PCS) 35.89점을 얻었다. 총점 74.92점을 받은 김연아는 출전 선수 30명 중 1위로 경기를 마쳤다.

'디펜딩 챔피언' 김연아의 선전은 예상했던 결과였다. 올림픽 직전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80.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어 자신감을 충전한 김연아는 지난 13일 소치에 도착한 이후 실시한 훈련에서 모든 점프 성공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보조 링크에서 이틀간 연습을 마친 김연아는 쇼트트랙 빅매치가 열리던 지난 15일, 국가대표 응원단으로 변신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후배 선수인 김해진과 박소연의 연습 경기를 지켜보며 힘을 불어넣어준 김연아는 이날 오후 이상화, 박승희 등 빙상 선수들과 함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를 찾았다. 

'올림픽 2연패'보다는 동료 응원이 우선

자신이 연기할 경기장에 먼저 들어가 관중석 분위기와 조명 등을 살피며 간접적으로 적응을 마친 김연아는 당일 출전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응원하며 한 템포 쉬어 갔다. 시합 직전까지 연습에 몰두하던 4년 전 밴쿠버올림픽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피겨여왕에게만 주어진 여유인 듯 보였다.

당시 언론은 느긋한 김연아와 다급한 아사다 마오를 비교하는 기사를 쏟아 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음 위에서는 점프 성공률로, 얼음 밖에서는 심리 싸움으로 늘 경쟁구도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나흘이 흘렀다. 마지막 담금질을 마친 선수들이 마침내 얼음 위에 섰다. 소치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 쇼트 경기가 시작됐다. 

김연아는 메달 후보권 선수들이 포진한 5조(마지막조)에 비해 다소 이른 순번인 3조 5번째로 경기를 펼쳤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3Lz+3T) 콤비네이션 점프와 이어지는 트리플 플립(3F) 점프를 가볍게 뛰어내며 자신의 마지막 쇼트프로그램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이후 스핀과 스텝 시퀀스 등을 무리 없이 소화했고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2A)까지 깔끔하게 뛰었다. 서정적이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는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에 맞춰 2분 50초간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경기가 끝나자 긴장했던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얼음 위를 빠져 나왔다.

올리브 그린색 의상을 입고 연기를 펼친 김연아의 모습은 마치 나비 같았다. 가벼워 보였고 얼음 위에서 더 자유로워 보였다. 실수 없이 연기를 끝냈고 선수도 지켜보는 국민들도 고득점을 예상했다. 4년 전, '제임스 본드 메들리(James Bond Medley)'를 연기해 쇼트프로그램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던 밴쿠버올림픽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하지만 4년 전과는 달리 기대했던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선수와 코치의 얼굴은 후련해 보였지만 밝지 않았다. 상황을 중계하던 해설위원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움직이지 않던 다리, 자신만을 믿고 경기

키스앤크라이존을 나선 김연아에게 현지 취재단이 소감을 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웜업(준비운동) 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어요. 긴장을 많이 해서 시합 직전까지도 점프를 제대로 뛰지 못했어요. 점프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도 없었는데 '연습했던 거랑 뭐가 다르겠어, 믿고 하자'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마무리를 잘 지은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당당하고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던 그도 자신의 마지막 쇼트 무대 앞에서는 23살 여자 선수에 불과했다. 자신이 컨트롤조차 할 수 없는 긴장감을 안고 얼음 위에 서야 했다. 그간의 연습량 그리고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김연아가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감당하고 있을 때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아사다 마오,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등 도전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많은 국민들이 김연아의 경기를 '선수의 마지막 무대'로 감상하고 즐기기 보다는 경쟁 상대를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김연아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지난 1일 방송된 KBS 특집 다큐멘터리 <김연아, 챔피언>에서 그는 "제가 당연히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이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랑 너무 다르다'라는 생각을 좀 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금메달을 따지 않더라도 저는 만족스럽고 후회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 자신만 생각하고 제가 목표로 한 것만 열심히 해서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생겼다가 곧 사라지는 '이상한' 라이벌 

주니어 때부터 시작된 아사다 마오와의 라이벌 구도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그의 마지막 은퇴 무대인 소치올림픽에서는 라이벌 목록에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도 추가됐다. 열흘 전만 해도 율리아의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었지만, 현재 율리아는 가장 짧은 시간에 높은 인지도를 쌓은 외국인 중 한사람이 됐고, 그와 관련된 소식은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그리고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현재, 예상했던 라이벌 아사다와 율리아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언론들은 김연아에 이어 2, 3위를 차지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와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를 새롭게 끌어들여 비교하고 있다.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시니어 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두 번의 국내 대회를 포함해 총 24번의 대회에 출전했다. 24번의 경쟁과 비교 그리고 24번의 긴장감과 부담감. 김연아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냈다. 이를 견뎌낸 보상은 짜릿했다.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 입상. 피겨 100년 역사상 김연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타이틀이었다. 

25번 째 대회, '1등' 아닌 '김연아'에 집중

2014 소치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김연아 선수의 25번째 대회이자 은퇴 경기다. 2006-2007시즌, ISU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준비한 김연아는 당시 1조 1번으로 시니어 무대에 입성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2013-2014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시즌, 소치올림픽 프리스케이팅만을 남겨놓은 김연아는 내일 새벽 3시 46분, 출전 선수 중 가장 마지막 순서로 얼음 위에 오른다. 프로그램 곡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inino)'.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 16살 소녀답지 않은 표현력과 기술로 피겨계에 깜짝 등장했던 어린 소녀가 이제 이별을 말하려 한다. 

그의 관심사는 올림픽 2연패도, 라이벌 구도도 아니다. 오직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할 뿐이다. 지난 24번의 대회에서 '1등' '경쟁'만을 강조해왔던 우리. 마지막인 만큼 이를 떨쳐내고 '선수 김연아'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피겨여왕 김연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밤이다. 


by heyuna 2014. 2. 21. 00:07
심석희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실격당했다. 막내의 은빛 메달에도 불구하고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15일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들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대회 8일차, 이상화의 금메달(스피드스케이팅 500m)과 박승희가 따낸 감동의 동메달(쇼트트랙 500m)로 종합 순위 16위에 랭크한 한국은 '동계 효도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메달 수집에 나설 계획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1500m 준준결승에 출전한 든든한 막내 심석희와 대표팀 맏언니 조해리가 가벼운 몸으로 얼음을 지쳤고 각 조 1위로 준결승에 올랐다. 급성위염에도 불구하고 준준결승 경기를 마친 김아랑은 준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한 20살 소녀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국민들이 힘을 불어 넣었다. 투혼이 시작된 것이라 믿었다.

동생을 위한 레이스, 결과는 실격

오후 8시 24분(한국시각), 여자 1500m 준결승 경기가 시작됐다. 몸이 좋지 않은 김아랑은 일찌감치 선두에 자리를 잡았고 체력이 좋은 조해리가 그 뒤를 바짝 붙었다. 중위권 선수들이 치고 올라올 때마다 조해리가 막아냈다. 덕분에 김아랑은 힘 조절을 하며 스케이팅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 내내 중위권 선수들을 방어하던 조해리는 결국 결승선을 두 바퀴 남긴 상황에서 3위로 밀려났고, 그 사이 뒤에서 힘을 아끼던 중국의 리 지안루가 선두로 올라섰다. 김아랑은 스피드를 유지하며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위를 차지한 김아랑은 결승전 진출에 성공했고 자리싸움 도중 미국 애밀리 스캇을 손으로 밀친 조해리에게는 실격이 선언됐다. 무릎 부상을 당한 박승희를 대신해 1500m에 출전하게 된 조해리는 이날 유난히 몸이 가볍고 힘이 넘쳐 보였다. 동생 김아랑을 충분히 역전할 수 있음에도 힘을 아끼며 스케이팅 하는 듯 보일 정도였다. 급성위염으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동생은 언니의 보호를 받으며 결승전에 진출했고, 동생을 위한 레이스를 펼친 맏언니는 실격으로 개인전을 마무리했다.

19분 뒤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가 시작됐다. 신다운과 이한빈이 한 조에서 경기를 펼쳤는데, 이한빈이 네덜란드 싱키 크네흐트와 몸싸움을 벌이다 트랙에서 밀려났고 그대로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넘어지지 않았음에도 남은 레이스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틀 전, 500m 결승전에 출전한 자신의 여자친구 박승희가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레이스를 마쳐 큰 감동을 안긴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8시 24분-8시 43분-9시 12분-9시 25분

또다시 19분이 지났다. 여자 1500m 결승전이 열렸고 이 경기에서 또 한 명의 한국 선수가 실격 당했다. 김아랑이었다. 1500m 세계랭킹 1위인 심석희가 여유로운 레이스를 펼치며 선두에서 경기를 이끌어간 반면, 중위권 싸움을 하던 김아랑은 경기 중반 미국 애밀리 스캇과 자리 다툼을 하던 도중 넘어졌고, 실격 처리 됐다. 1시간 사이에 조해리-이한빈-김아랑 총 세 명의 한국 선수가 실격을 당한 것이다.

악몽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빅토르 안(안현수)과 함께 남자 1000m 결승에 오른 신다운이 남아있었다. 홈 관중의 압도적인 응원을 받고 스타트라인에 선 빅토르 안은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빅토르 안은 평소 뒤쪽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막판에 스퍼트를 올려 선두로 치고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러시아 동료 선수와 함께 초반부터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1000m내내 경기를 이끌어갔다. 동료와 1위, 2위 자리를 번갈아 타며 체력도 유지했다. 신다운과 네덜란드 싱키 크네흐트가 선두 자리를 차지하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결승선을 앞둔 마지막 코너, 1위와 2위를 확정 지은 러시아 선수들 뒤로 마지막 메달을 위한 신다운과 싱키 크네흐트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평소 과감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신다운이 무리하게 인코스를 파고들어 크네흐트와 몸을 부딪혔고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잃었다. 결국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신다운은 비디오판독 결과 실격 판정을 받았다.

은메달을 딴 심석희를 제외하고 이날 경기에 출전한 한국 선수 네 명이 실격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중국, 미국 선수들의 '더티 플레이'에 피해를 받던 한국이 이젠 무리한 끼어들기와 거친 플레이로 가해자가 된 것이다.

실력만큼 '멘탈'관리도 필요한 쇼트트랙 대표

김동성-안현수-이정수 등 엘리트 선수들이 혼자서 올림픽 2연패 이상을 달성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전설의 김동성은 은퇴했고 천재 안현수는 러시아의 국가대표다. 4년 전, '짬짜미' 의혹을 폭로했던 이정수는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계를 받은 이후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카자흐스탄 쇼트트랙 대표팀의 코치는 한국인다. 한국 특유의 코칭법이 세계 곳곳에 전파되고 있고 그만큼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됐다. 이러한 흐름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 또한 '무조건 금메달'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지더라도 멋있게 지는 모습이 보고 싶을 뿐이다.

만회할 기회는 남아있다. 18일 여자 1000m와 남자 500m, 여자 3000m 계주 결승 A가 열리고 22일 남자 5000m 계주 결승 B 경기가 예정되어있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메달권이 아님을 알면서도 끝까지 역주를 펼쳐 '금메달 그 이상'이 무엇인지 보여준 이규혁 선수처럼 메달, 순위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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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una 2014. 2. 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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