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1000m 세계 랭킹 1위 심석희가 자신이 이 종목 1인자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15일 새벽(한국시간)부터 사흘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14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1000m 결승전에 출전한 심석희가 1분30초488의 기록으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은 박승희(1분30초597)가 차지했다.

발레리 말테(캐나다), 엘리스 크리스티(영국)를 포함해 네명의 선수가 결승전에서 올랐다.

경기 초반 심석희가 2위 박승희가 3위에 자리 잡았고, 결승선을 7바퀴 남기고 심석희가 선두로 올라섰다. 이후 박승희도 3위에서 2위로 치고 올라가며 남은 레이스를 한국 선수들이 이끌었다.

서로 1, 2위 자리를 주고 받으며 경기를 운영한 심석희와 박승희는 경기 막판, 본격적인 승부를 펼쳤다. 2위에 자리했던 심석희가 결승선을 두바퀴 남기고 박승희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끝까지 스피드를 잃지 않은 심석희는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 금메달을 차지했다.

지난 15일 열린 1500m에 이어 1000m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심석희는 단번에 34포인트를  얻어 총 68점을 획득, 박승희와 함께 종합 우승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다. 박승희 또한 500m 금메달, 1000m 은메달, 1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총 68점을 얻은 상태였다.

이후 종합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3000m 슈퍼 파이널 경기가 열렸다. 이 레이스에서 심석희가 4분50초829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박승희는 4분53초674로 5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또 한번의 우승으로 34점을 추가한 심석희가 총점 102점으로 2014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또한 이날 여자부 마지막 경기로 펼쳐진 3000m 계주 결승에서 중국 캐나다 이탈리아와 함께 경기를 펼친 한국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1위에 자리를 잡은 뒤 마지막까지 선두를 빼앗기지 않는 여유로운 레이스를 펼쳤다.

하지만 마지막 주자였던 심석희가 중국 선수와 자리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팔꿈치를 썼다는 판정을 받아 실격 처리 됐다. 계주 우승은 중국에게 돌아갔다.

한편 2002년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올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온 조해리는 이날 계주 경기를 마지막으로 13년 간의 국가대표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by heyuna 2014. 3. 17. 15:07
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18일이 지났다. 영광의 순간을 만끽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박승희-세영 남매가 쇼트트랙 500m에서 동반 우승을 차지했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일반부 1000m 경기에 출전한 이상화는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남자일반부 1500m에서 우승한 이승훈은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대회를 마쳤다. 

'올림픽 특수' 예능에 진출한 국가대표 선수들

4년간의 노력을 쏟아 붓고 온 선수들은 밀려오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국가대표로서 주어진 마지막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방송사 인터뷰, 선수상 시상식, 포상금 수여식, 대통령과의 오찬 등 짜인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였다. 

올림픽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한 선수도 있다. 이상화·박승희·조해리는 짬을 내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아빠!어디가?2> 녹화를, 이상화는 인기 예능 <무한도전> 촬영을 마치기도 했다. 주형준·김철민과 함께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승훈은 13일 저녁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했다. 올림픽 영웅의 또 다른 모습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나들이를 마친 선수들이 다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스케이트화를 조여 매고 세계선수권 대비 훈련을 시작했다. 폭풍 같았던 한 달이 지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국민이 들썩

기사 관련 사진
▲ 밝은 표정의 김연아 김연아 선수가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대부분의 올림피언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데 비해, 의외의 폭풍에 휩싸인 선수가 한명 있다. 김연아(24·올댓스포츠)다. 선수 생활 내내 전국민적인 관심과 기대를 어깨에 짊어진 채 빙판 위에 올라야 했던 그는 얼음 밖을 나선 뒤에도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일정이었던 청와대 오찬을 가진 다음날, 온라인 연예전문매체 <디스패치>가 김연아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하루 종일 김연아의 열애와 관련한 단어들로 도배됐고 각종 인터넷사이트에는 관련 게시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날 하루 '김연아'가 제목에 포함된 기사는 총 2229건, '피겨 여왕'이 포함된 기사는 1239건으로 집계됐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양의 기사가 출고된 만큼 중복 기사도 과장된 내용도 많았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소식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네티즌은 댓글로 기자들은 기사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실어 날랐다. 미국 매체 <야후 스포츠>가 김연아와 군인 신분인 김원중(30·대명 상무)이 군 휴가에 맞춰 데이트를 즐겼다고 보도한 것을 몇몇 국내 매체에서 오역한 것이 화근이 됐다. 

군 휴가를 밀월 여행급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루머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김원중 선수와 가족의 신상 털기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김연아의 남자 친구로 지목된 김원중 선수 관련 기사는 6일 하루 동안 1966건이 생산됐다.

7일 오후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는 "여러 매체와 SNS, 인터넷 댓글 등에서 사생활을 침해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으로 인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가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악의적인 글을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올릴 경우 명예훼손 차원에서 신속하게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그가 필요한 건 자유

기사 관련 사진
▲  '피겨여왕' 김연아가 2월 21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소치올림픽 당시 메달 시상식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선 김연아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달리기만 해서요. 여유를 갖고 새로운 삶을 찾아야죠. 그동안 너무 감사드렸고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복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행복을 얘기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 6일 열애설이 터진 이후 일 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연아의 연애'는 핫한 키워드 중 하나다.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은 마감했지만 김연아를 향한 국민적 관심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연아에게 자유는 닿지 않을 희망 사항인 걸까?

사실 김연아는 훨씬 전부터 자유롭길 원했다. 김연아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힘든 훈련을 견뎌왔다. 하지만 그는 밴쿠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섣불리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왜 내가 지금 스케이트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으며 훈련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2010년 3월,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김연아는 2011년 1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내 선수생활은 끝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금메달을 따고 한 달 뒤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2010년 3월)에 나가라는 거예요. 그전에 출전 약속은 되어 있었어요. 올림픽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라 의욕도 없고 연습도 못하겠어요. 괜히 나갔다가 망신만 당할 수 있고요. 제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어쨌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1년 뒤인 2011년 4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 또한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 년 이상 안 나가겠다고 싸웠죠. 주변에서 워낙 설득을 하니 어쩔 수 없었는데, 나가기로 해놓고도 후회하고 포기하고 싶었지요. 주위에서 안 나가면 매스컴이나 팬들, 국민들이 저를 외면할 거라고 했어요. 아직도 전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러는지." (2011.11.21 <조선일보> 인터뷰 중)

오로지 선수의 의지만으로 진행된 선수 생활 연장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이 대회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아리랑을 포함한 한국 전통음악을 편집해 사용했다.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바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한동안 얼음을 떠났던 그가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했고, 지난 2월 올림픽에서 은퇴 무대를 마쳤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

쇼트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와 프리스케이팅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얼음 위에 선 김연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7분 동안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그가 마침내 얼음 위를 걸어 나왔다. 

아디오스 김연아. 18년간 선수로 지내며 자유롭지 못했을 그. 셀러브리티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의 연기로, 그의 존재 자체로 희망을 얘기하던 나날이 많았다. 이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제는 조금 물러서서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 아디오스 김연아.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다.


by heyuna 2014. 3. 14. 15:54
기사 관련 사진
▲ 초콜릿 메달 받은 선수단 "화이팅"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김아랑, 조해리, 심석희, 공상정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대한체육회가 준비한 초콜릿 메달을 목에 걸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7일간의 축제가 끝났다. 축제를 빛낸 영웅들이 돌아왔다. 지난 25일 오후 3시 40분,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장은 수백 명의 취재진과 팬, 선수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기수 이규혁을 선두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선수단이 차례로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대기 중이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 등이 선수들에게 다가가 '국민행복 금메달'을 전달했다. 대한체육회가 격려와 감사의 표시로 준비한 초콜릿 금메달이었다. 선수단은 깜짝 선물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웃음을 찾은 뒤, 초콜릿 메달을 입에 물고 사진을 찍었다.

'센터'의 주인공은 김연아도 이상화도 아닌...

이날 준비된 초콜릿 메달은 지름 9cm, 두께 1cm 크기였다. 특히 이규혁 선수에게는 최다 올림픽 참가를, 김연아 선수에게는 은퇴를 기념하는 의미로 다른 선수들 것보다 3cm 더 큰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깜짝 이벤트와 기념 촬영을 끝낸 선수단과 임원들은 인천국제공항 1층 밀레니엄홀 야외무대로 자리를 옮겨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했다. 첫째 줄은 역시 메달리스트들의 몫이었다. 김연아와 이상화가 양쪽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빙상연맹 회장이 앉았다. 두 선수 옆으로는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이 나눠 앉았다.

해단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다소 엄숙하게 진행됐다.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답지 않게 행사 내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임원들의 말씀이 시작됐다. 최종삼 선수촌장의 성적보고를 시작으로 김정행 회장의 식사, 유진룡 장관의 치사에 이어 김재열 단장의 답사 그리고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인사까지. 14분 동안 격려와 감사의 말들이 오갔다. 긴 비행으로 피곤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말씀'의 시작과 끝에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이후 평창 소개 영상이 상영됐고 주요 선수들과 임원들이 나와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소 지루했던 해단식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인터뷰 시작 전, 진행자는 시간 관계상 10분간 다섯 개의 질문만 받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미숙한 진행 이어져

첫 번째 질문부터 식상했다.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는 김연아에게 "갈라쇼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박승희에게 "500m 동메달을 딴 이후 가장 기뻐해 준 사람이 혹시 '그 분'이 아닌지"에 대해 물었다.

기사 관련 사진
▲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다짐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 및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에서 이상화, 김연아, 심석희 등 선수들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등이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마지막 갈라쇼까지 소치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갈라에서도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감정들은 없었던 것 같고요. 마지막이긴 하지만 앞으로 예정된 공연도 있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연아의 대답이 끝나고 박승희가 마이크를 잡으려는 순간, 불쑥 다른 질문자가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에 유 장관이 '박승희 선수 차례'라며 손짓으로 제지했고, 박승희가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 분은 아니었고요. 저희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 너무 멀리 있어서요. 제가 느끼기에는 같이 있었던 쇼트트랙 대표팀이 제일 기뻐해주셨던 것 같고, 그 기쁨이 제게도 가장 크게 느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질문자는 유 장관과 김 단장에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건립 예정인 빙상장을 '김연아 빙상장'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김연아 빙상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당사자인 김연아는 불편한 웃음을 지었고, 현장에 있던 일부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유 장관은 "올림픽 공원에 그 시설을 짓는 것은 국가 기밀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다. 그 시설의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금부터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 나가야 할 사항이다. 의견은 잘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김연아 선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스케이터"라며 "빙상연맹회장으로서 정부가 하는 일에 손을 맞춰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질문도 김연아에게 향했다. 팬들이 자신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인정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냐는 물음에 김연아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힘들게 준비한 만큼 다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을 했고요. 마지막 대회인 만큼 후련하게 끝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고, 또 많은 분들이 제가 경기한 것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뒷줄에 앉은 모태범, 윤성빈뿐 아니라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며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은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 주형준, 김철민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을 마치고 온 이규혁까지. 아직 입을 열지 못한 선수가 많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선수 이름을 모르는 질문자와 대답을 끊는 진행자

마지막 질문 기회를 잡은 사람은 한 방송사 PD였다.

"박상희... 박상희 선수에게 질문을 하겠는데요. 평창 올림픽이 이제 4년 남았는데 자신의 포부가 있다면요? 심석희 선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500m 결승전에서 선두로 달리다 뒤에 오던 선수에게 걸려 넘어진 박승희. 일어나서 다시 달리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넘어졌음에도 끝까지 레이스를 펼쳐 감동을 안겨 준 박승희. 그리고 끝내 동메달을 목에 건 박승희. 이날 당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1000m에서 금메달을 따 낸 박승희. 질문자는 가장 기본적인 선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박승희가 답했다.

기사 관련 사진
▲ 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 인파 가득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한 가운데, 취재진과 팬들이 입국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이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제가 평창올림픽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해서 가게 된다면 큰언니 역할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심석희가 마이크를 건네받는 순간, 진행자가 말했다.

"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기념 촬영을… 아, 네 계속해서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요. 이번 올림픽도 좋은 경험이 됐는데, 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4년 뒤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심석희)

미숙하고 불편했던 기자회견이 끝이 났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의 소감도, 마지막 올림픽을 끝낸 이규혁의 심정도 듣지 못했다. 선수 생활 2년 만에 올림픽에서 썰매 종목 한국 역대 최고 순위를 갈아치운 윤성빈 선수의 사연 또한 들을 수 없었다.

축제의 주인공들은 입을 다문 반면 행사에 참여한 정부, 협회, 연맹 임원들은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각자에게 주어진 2~3분의 발언 시간을 아낌없이 썼다. 식사, 치사, 답사로 구분해 진행했지만 이들이 말한 내용은 비슷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평창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선수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언제까지?

2년 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단은 인천공항에서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뒤 올림픽 특집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로 이동했다. 이날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렸지만 방송은 예정대로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다. 선수들은 빗물이 고인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선수단과 대통령의 오찬은 메이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치러지는 행사가 됐다.

6년 전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은 해단식을 마친 뒤 퍼레이드에 참가해야 했다. 대한체육회는 박태환과 장미란을 앞세워 서울 세종로사거리부터 서울광장 구간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도 비가 내려 퍼레이드에 참가한 선수단이 고생을 했다.

4년 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단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을 때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그보다 앞서,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이 소치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오찬을 가진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것은 아닐까? 선수를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by heyuna 2014. 2. 26. 18:38
| 1 2 3 4 5 6 7 ···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