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FF]뜨거운 공연 끝난 후 그들이 향한 곳은...
텐트 2백 개로 숙박난 해결, 낭만 넘치는 캠프촌
12.08.14 16:07ㅣ최종 업데이트 12.08.14 16:07ㅣ정혜정(heyuna)
태그짐프캠프JIMFF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지난 9일 시작된 제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MF)는 매일 밤 영화 한 편과 뮤지션의 라이브 무대로 구성되는 [원 썸머 나잇]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11일은 '힙합 나잇'이었다. 국내 개봉을 앞둔 <스텝업4: 레볼루션>(Step Up Revolution) 상영에 이어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와 박재범의 공연이 청풍호반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공연이 끝난 시간은 밤 11시. 아쉬움 속에 뿔뿔이 흩어지던 약 3200명 관중 가운데 수백 명은 셔틀버스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 충북 제천시 고암동 모산 비행장에 마련된 JIMFF 캠프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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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샤워장 갖춘 깔끔한 텐트촌

이들이 버스로 30분쯤 걸려 도착한 곳은 청풍호반에서 약 25km 떨어진 JIMFF 캠프촌. 충북 제천시 고암동의 모산비행장 활주로 부지 27,000㎡(약 8,000평)에 4인용 텐트 200동이 설치돼 있다. 짧은 기간 진행되는 영화제를 위해 숙박시설을 늘릴 수 없는 형편이라 주최 측이 고심 끝에 올해 처음 시도한 '대안 숙소'다. 이날 밤, 1동 당 4명까지 수용 가능한 텐트는 200동 모두 가득 찼다. 평일에는 보통 70~130여 개 텐트가 손님을 맞고 있다.

이 캠프촌의 텐트는 아웃도어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가 무상 임대하고 천막업체 모던탑에서 설치를 맡았다. 코오롱은 영화제가 끝난 후 중고텐트를 팔아 가난한 독립영화인과 음악인들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천시는 한번에 남녀 각각 10명씩 이용할 수 있는 샤워장과 화장실 등의 기반시설을 준비했다. 이용객들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제천시와 코오롱스포츠의 후원으로 조성된 JIMFF 캠프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짐프캠프 입구, 세면대, 화장실, 샤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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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2박 3일 일정으로 영화제를 찾았다는 최다미(30•여•서울 도봉구)씨는 13일 낮 캠프촌을 나오면서 "처음 방문한 제천에서의 경험이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20살 대학생 때 이후 텐트 치고 캠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정말 좋네요. 어제 저녁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추웠는데 챙겨온 이불을 덮고 자니 괜찮았어요. 또 밤늦게까지 공연 즐기다가 캠프장 와서 씻고 바로 자니 피곤해서 그런지 잠도 잘 오더라고요. 큰 축제들과 비교해 제천 영화제에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불편하니까 청춘, 젊으니까 캠핑

캠프에는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주최 측은 '불편하니까 청춘이다. 젊으니까 캠핑이다'를 구호로 내걸고 미리 이용자의 양해를 구했다. 캠프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더울 수도 있습니다. 잠자리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축제니까 가능합니다.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 이용자들은 불편함을 각오하고 왔더니 오히려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 서진미(30?왼쪽), 최다미(30) 씨는 2박 3일 일정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았다. 낮에는 의림지와 제천 맛집을 둘러보고 밤에는 청풍호반무대에서 공연을 관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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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6회 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로 제천을 찾았다는 강아라(29•여•경기도 의정부)씨는 불편한 점이 없느냐는 질문에 "기대한 것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어 편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캠프 주최 측은 4인용 텐트에 매트리스를 제공했고 침낭, 담요, 랜턴과 같은 캠핑 장비와 세면도구는 필요에 따라 각자 준비하도록 했다. 

"다만 어제 새벽 늦게까지 뒤 텐트에 계신 분이 기타를 치시더라고요. 아침에도 기타 소리에 일어났어요. 낮이었으면 같이 즐겼을 텐데.(웃음) 하지만 캠프 오기 전에 감안했던 부분들이라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내년에도 캠프촌이 열리면 또 올 생각이에요."

이용객들이 JIMFF 캠프에 만족한다는 말을 전하자 자원봉사자 최민영(23•여•공주대3)씨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영상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그는 제천시 신월동의 세명대학교 기숙사에서 하루 5시간씩 자며 힘들게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끝나고 나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샤워장에 왜 차가운 물밖에 나오지 않느냐, 비가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등 자원봉사자들이 재깍재깍 답변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면 난감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수고한다며 음료수를 건네고 가시거나 오징어무침 같은 야식을 가져다주실 때는 많이 감사하죠."

캠핑지원팀은 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낮과 밤, 두 개조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캠프촌에 설치된 스태프용 텐트에서 모자란 잠을 잠깐잠깐 벌충하면서 캠핑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루에 지원되는 식비가 1만2000원씩이어서 값싼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지만 주최 측이 제공하는 김밥, 샌드위치 등 간식을 고마워하며 즐겁게 일한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 뿐 아니라 텐트관리를 맡은 모던탑의 직원들도 꼼꼼히 현장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13일 낮 이용객들이 빠져 나간 빈 텐트를 점검하던 송인예(42•여)씨는 "영화제 개막하기 일주일 전부터 텐트 설치를 시작했고 행사가 시작된 후에는 아침 7시에 나와서 저녁 10시까지 일하고 있다"며 "그래도 캠핑객들 반응이 좋아서 힘든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 JIMFF 캠프촌에는 8명의 자원봉사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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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까지 운영되는 캠프촌, 현장 예매도 가능

JIMFF 캠프촌에 설치된 텐트는 4만원을 내면 1박 2일간 빌릴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판매는 지난달 23일 마감됐지만 현장 예매도 가능하다. 캠프촌에서는 샤워장과 화장실 외에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의 배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하루 2만여 명, 해마다 13만여 명이 몰리는 JIMFF는 해를 거듭할수록 탄탄하게 성장하는 영화제로 꼽히지만 숙박시설이 부족한 게 그동안 큰 걸림돌이었다. 임진순 JIMMF 마케팅실장은 이번 영화제 기간 중 연인원 1800명 정도가 캠프촌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제천에 머물며 느긋하게 축제를 즐기려는 젊은층에게 캠프가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자평했다. JIMFF 캠프는 캠핑과 축제를 결합한 모범 사례이자 기업과 지자체의 바람직한 협업 모델이 됐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by heyuna 2012. 8. 14. 16:46

▲ 여자 펜싱 최초로 단체 메달을 획득한 플뢰레 선수들(정길옥 오하나 전희숙 남현희).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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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여름, 밤의 열기가 낮보다 뜨겁다. 열대야에 올림픽 열기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오후 5시 반에 시작한 유도는 자정이 돼야 최종 승자가 가려진다. 박태환이 물살을 가르는 모습은 한국 시각으로 오전 3시에 감상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밤새 열린 경기 결과와 출전한 선수들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올라 있고 온·오프라인 막론하고 많은 국민들이 올림픽에 빠져 있다.

 

런던올림픽 개막 일주일째, 메달 레이스는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오심과 부상으로 강자들이 탈락하고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선수들이 메달을 따니 TV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쯤에서 메달 획득 상황을 점검해보면, 원래 예측은 단순한 기대 수준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예상치 못한 결과... 하루는 웃고 하루는 울고


실격과 번복이라는 올림픽사에 남을 사건의 희생양이 된 박태환이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펜싱 대표팀 맏언니 남현희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발렌티나 베잘리(이탈리아)에 역전패당해 4위로 개인전을 마쳤고 최병철은 세 번째 올림픽 출전에서 12년간 끊긴 남자 펜싱에 메달을 안겼다.

 

정진선이 개인 에페에서 동메달을 추가했고, 숨어 있던 미녀검객 김지연이 비수를 날려 여자 최초로 펜싱 금메달을 노획했다. 플뢰레 여자 단체전에서 하나의 동메달이 추가됐다. 펜싱 단체전에서 메달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양궁 남자 단체팀의 올림픽 4연패 기록은 좌절됐고, 여자 단체팀은 7연패 위업을 이뤘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도입된 이래 한 차례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여자 단체와 더불어 여자 개인전 금메달도 늘 우리 차지였는데 그 기록이 베이징에서 깨졌다. 당시 중국에 석패해 은메달에 머물러야 했던 여자 개인전에서는 막내 기보배가 연금술사처럼 은을 금으로 바꿔놓았다. 50m 권총이 주종목인 진종오는 먼저 10m 공기권총에서 금빛 신호탄을 쐈다. 한국의 런던올림픽 첫 메달이었다. 김장미는 여자 사격 선수 중 첫 금메달 저격수였다.

 

▲ 양궁 여자 개인전 금메달 리스트 기보배 선수. 단체전에 이어 올림픽 2관왕을 차지했다.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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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판정으로 아쉬움을 남긴 경기도 있었다. 유도 66kg급에 출전한 조준호는 심판위원장이 개입한 판정 번복으로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고, 왕기춘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4위에 머물러야 했다. 노메달 위기에 빠진 유도팀을 구한 건 김재범이었다. 4년 전 자신에게 은메달을 안긴 올레 비쇼프(독일)를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그는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쳐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금메달은 사나이도 울렸다. 유도 90kg에 출전한 송대남이 금메달을 확정 짓고 감독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인상 2차 시기 도중 오른쪽 팔꿈치가 뒤로 젖혀지는 부상을 당해 기권한 사재혁은 올림픽 2연패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회 7일째 금메달 7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로 중국, 미국에 이어 종합 3위에 오른 한국은 '10-10 (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 내 진입)'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몸풀기 끝난 선수단, 본격 메달 사냥 나선다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았다. 200m 결승전을 치르고 이틀간 체력을 끌어올린 박태환이 오늘 오후 7시, 자유형 1500m 예선에 출전한다. 1500m가 주종목이었던 박태환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단거리에 주력했다. 마음을 비우고 출전하는 1500m에서 판정 번복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까? 결승전은 5일 오전 3시 30분에 열린다.


스페인(세계랭킹 16위)과 덴마크(6위)를 이기고 강호 노르웨이(5위)와 비긴 여자 핸드볼팀(8위)은 3일 오후 7시 15분 프랑스(11위), 5일 오후 5시 30분 스웨덴(19위)과 예선전을 치른다. 죽음의 조에서 선전하고 있는 한국팀의 무패 행진이 결승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여자 펜싱 에페 단체전 8강 시합은 4일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된다. '끝나지 않는 1초'에 억울한 패배를 당한 신아람이 마음을 가다듬고 단체전에서 메달을 따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가봉전을 무승부로 마치고 조2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남자 축구팀은 5일 오전 3시 30분 개최국 영국과 8강전을 치른다. 홍명보호의 마지막 여정이 해피엔딩으로 장식될 수 있을지 국민들 관심이 뜨겁다.

 

▲ 지난 3일 런던 코퍼 박스(Copper Box)에서 열린 조별리그 경기에서 한국과 덴마크가 맞붙었다. 결과는 25-24, 한국 승.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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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황금휴일' 될까... 박태환·장미란·이용대 등 도전


한국인에게 런던올림픽 하이라이트는 일요일이 될 듯하다. 박태환, 진종오, 이용대, 장미란이 올림픽 2연패에 나선다. 오전 3시 30분, 박태환의 1500m 자유형 결승을 시작으로 오후 5시 50m 권총에 진종오가 출전한다. 오후 9시, 이용대·정재성이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결승전에 출전해 금빛 스매싱을 선보일 예정이다.


장미란이 출전하는 역도 75kg 이상급 결승전은 오후 11시 30분에 열린다. 4년 전 적수가 없어 세계신기록 경신을 목표로 출전했던 것과 달리 이번 대회에는 저우루루(중국)와 타티아나 카시리나(러시아) 등 만만치 않은 선수들이 장미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메달 욕심보다는 자신이 목표한 기록을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 연습했다는 장미란은 경기가 끝나고 목표 달성 여부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정지현은 베이징 올림픽의 노메달 아픔을 잊지 않았다.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정지현은 명예로운 마무리를 위해 절치부심했다. 6일 오후 9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에서 정지현의 설욕전이 시작된다.


같은 날 오후 11시 41분,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위해 양학선이 도약한다. 양학선은 자신의 이름을 딴 신기술 'Yang Hak Seon(양1)'을 뛰지 않고도 예선 2위로 결선행을 확정지었다.

 

'양1'은 도마를 짚은 뒤 공중에서 3바퀴(1080도)를 도는 기술로 국제체조연맹(FIG) 채점 규정집에 오른 기술 중 가장 난도가 높다. 2011 코리아컵 국제체조대회에서 처음 선보인 이 기술(7.4점)이 올림픽 무대에서 성공하면 금메달은 물론이고 체조사에도 한 획을 그을 전망이다.

 

'태권도 훈남' 이대훈은 8일 오후 5시 15분, 58kg 이하급 예선에 출전한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63kg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이대훈이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하면 제2의 이용대, 또 한 명의 올림픽 스타가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결승은 9일 오전 6시 30분에 열린다.

 

▲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엑셀 런던 경기장(ExCeL London).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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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체조·복싱... 메달로 제2의 전성기 준비


1992 바르셀로나 이후 16년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한국의 리듬체조는 4년 전 신수지의 베이징올림픽 출전 자체가 하나의 성과로 평가받았다. 이번 올림픽에서 손연재는 신수지가 세운 본선 12위 기록을 뛰어 넘어 개인결선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다. 손연재의 연기는 9, 10일 이틀간 오후 8시에 펼쳐진다. 예선에서 개인종합 10위 이내에 들면 손연재는 11일 오후 9시 30분 결승 무대에 서게 된다.


학창 시절 '트러블 메이커'였던 신종훈은 대회 마지막 날 열리는 복싱 라이트플라이급(49kg 이하)에 출전해 대형 사고를 칠 전망이다. 24년 만에 복싱 금메달을 안겨줄 기대주 신종훈은 지옥훈련조차 감사한 마음으로 이겨냈다. 천진한 얼굴 뒤에 금빛 주먹을 숨기고 있는 신종훈은 세계 랭킹 1위의 실력을 올림픽 무대에서 유감 없이 뽐낼 예정이다.

 

대회 마지막 금메달은 태권도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12일 오전 6시 15분에 열리는 여자 67kg 결승에 이인종, 남자 80kg 결승에 차동민이 출전해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켜낼 것으로 보인다.

 

메달권 종목만 챙겨봐도 하루가 바쁘다. 런던의 하루는 더 바쁘다. 관심에서는 약간 비껴있지만 근대5종, 배구, 사이클, 요트, 육상, 조정, 탁구, 트라이애슬론, 하키 등 총 22개 종목 245명의 한국 선수가 각개약진을 하고 있다. 그들이 어느 선까지 진출할지 아무도 모른다. 국민들도 선수 못지 않은 설렘과 희열 또는 안타까움으로 한여름 밤을 지새운다. 이 무더운 밤 어느 구름이 또 시원한 비를 내려줄까?

by heyuna 2012. 8. 3. 23:53

4년 전 승부는 찰나에 가려졌다. 13초 만에 무너질 실력이 아니었다. 8강전 갈비뼈 부상이 패인이었다. 올림픽 결승전에 선 왕기춘은 상대 선수의 '발목잡아메치기'에 경기 시작 13초 만에 한판패를 당했다. 경기장을 나와 카메라 앞에 선 왕기춘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제 노력이 좀 부족했나 봐요."
 
부상은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53연승 세계랭킹 1위, 올림픽 부담 떨쳐버리려 했는데...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큰 시합에서 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4년 뒤 그날을 위해 훈련에만 몰두했다. 올림픽 이후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했다. 2008 가노컵국제유도대회를 시작으로 2010 수원월드마스터스대회까지, 53연승을 이어갔다. 이원희가 갖고 있던 한국 연승 기록(48연승)을 갈아 치웠다.
 
승승장구했고, 2012 런던올림픽은 4년 전과 다를 거라 확신했다. 떨어진 체력은 지옥훈련으로 보완했고 기술은 더 완벽해졌다. 왕기춘의 특기는 업어치기다. 한쪽으로만 기술을 사용하는 선수가 많지만 왕기춘은 좌우 양쪽을 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런던에 입성했다. KBS 1TV 런던올림픽 특집 <런던드림 - '한 판'>에 출연해 설레는 마음에 '닭살이 돋는다'고 표현할 만큼 올림픽을 기다려왔던 그였다. 

▲ 런던올림픽 특집프로그램에 출연해 올림픽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는 왕기춘 선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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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따면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믿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올림픽 결승전이라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잖아요. 그 자리에 한 번 들어갔는데 제가 또 다시 올라갈 거라고 상상하니까 닭살 돋아요. 그 자리는 정말 떨릴 것 같아요. 다시 가더라도." 

유도 남자 73kg급 세계 랭킹 1위 왕기춘은 다른 국제대회는 석권했지만 올림픽 정상에는 서지 못했다. 세계 챔피언인 그도 올림픽 무대에는 도전자였다.
 
"금메달이 목표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고 싶지는 않아요. 부담을 가지면 경기장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못할 수 있거든요. 부담을 버리고 실력 다 보여주고 나온다면 국민 여러분이 기대하는 메달 색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청자도 그도 부담을 갖지 않기를 바랐지만, 지난 4년을 누구보다도 절치부심한 그였다. 7월 30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한국 시각 오후 5시 30분에 시작된 73kg급 경기. 3시간 동안 64강(유효승), 32강(한판승), 16강(유효승), 8강(판정승) 등 4차례 경기를 내리 이기고 오후 10시 50분 준결승 무대에 올랐다.

또 부상, 그리고 석연치 않은 판정
 
만수르 이사예프(러시아)와 매트에 오른 왕기춘. 경기 시작 1분도 안 돼 두 선수에게 지도가 주어졌다. 소극적인 경기를 펼친다는 이유였다. 13초 뒤 왕기춘이 안다리걸기 기술을 시도했다. 공격은 실패했고 일어나던 왕기춘이 왼쪽 팔목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왼손을 움직이지 못하던 왕기춘이 심판 지시에 경기를 재개했다. 힘 좋은 이사예프를 상대로 남은 시간 꾸준히 공격을 시도했지만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규시간 2분30초를 남기고 지도 하나를 추가로 받은 왕기춘. 이사예프가 유효로 앞서 나갔다. 이대로 끝나면 결승 진출은 실패. 왕기춘이 반격을 시작했다. 이 상황을 지키기만 해도 결승에 진출하는 이사예프는 급할 게 없었다. 왕기춘은 마지막 1분간 공격을 퍼부었고 이사예프는 공격을 방어하기 바빴다.
 
"러시아 선수가 공격을 안 하고 있는데 왜 지도를 안 주는 걸까요. 안타깝습니다. 지도를 줘야 하는데요." (KBS 해설 중)
"심판 판정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그럴수록 저희가 추해지는 느낌이거든요." (SBS 해설 중)

▲ 8년을 기다려온 왕기춘의 꿈이 부상으로 또 한번 좌절됐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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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지도 누적으로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아쉬운 한판이었다. 그리고 30분 뒤 동메달 결정전에 왕기춘이 출전했다. 부상으로 적극적인 공격을 보여주지 못한 왕기춘은 종료 2분 40초를 남기고 지도를 받았다. 이후 다양한 공격을 시도했지만 찬스로 연결하지 못했다. 종료 1분 전 상대 선수 우고 르그랑(프랑스)이 지도를 받아 경기는 다시 원점이 됐다.

그렇게 정규 시간 5분이 흐르고 다시 연장전. 공격을 주고받는 두 선수를 심판이 멈춰 세웠다. 왕기춘의 목 주위에서 피가 흘렀다. 왕기춘이 치료받는 동안 상대 선수는 숨을 골랐다. 1분 뒤 왕기춘이 매트에 드러누웠다. 르그랑의 밭다리걸기에 넘어가고 말았다. 절반을 내준 왕기춘은 동메달까지 날려버렸다. 
 
4년 전 은메달을 목에 건 뒤 "다음 올림픽에서는 국민들이 바라는 색의 메달을 가져오겠다"던 왕기춘의 다짐은 또 4년 뒤로 미뤄지게 됐다. 그러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게 스포츠의 세계. 국내에도 세계 무대에도 스타들이 명멸한다. 4년 뒤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선 그를 볼 수 있을까? 그때 나이 아직 스물여덟. 어쩌면 두 번의 좌절은 8년을 기다려 해피엔딩으로 끝날 '인간 승리'의 굴곡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by heyuna 2012. 7. 31. 15:32
[기사 보강 : 30일 오후 2시 20분]
 
등록 안 된 손기정의 메달... 그러면 누가 첫 메달?

손기정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양정모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양정모는 해방 이후 조국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레슬링 선수다. 한국인이었으나 일본 국적으로 출전한 손기정은 국민들 가슴 속에 '대한민국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각인돼 있지만, 대한체육회가 집계하는 메달리스트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림픽 공식 기록에도 손기정은 손기테이(일본)로 명시돼 있다.

1976년 새해 첫날 <동아일보>에 "민스크 대회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꼭 따내겠다"며 결의를 다진 양정모는 7개월 뒤 몬트리올에서 한국체육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 일본, 중국 등 66개국이 올림픽에 불참했고 한국 선수도 출전하지 않았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참가국이 140개로 늘어났는데도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 6개를 목에 걸었다. 레슬링(2), 유도(2), 양궁(1), 복싱(1)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핸드볼, 농구 등에서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국민들 성원을 등에 업은 선수들은 금 12, 은 10, 동 11, 합계 33개로 종합 4위를 기록했다. 메달 종목도 다양해졌다. 양궁(3), 레슬링(2), 복싱(2), 유도(2), 탁구(2), 핸드볼(1)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김수녕(양궁), 유남규·현정화(탁구) 등 스포츠 스타도 탄생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올림픽을 직접 보고 잊지 못할 기억들을 간직했다.

지금까지 금메달 93개... 하계 70, 동계 23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56년 만에 한국에 마라톤 금메달을 안겨준 '황영조 올림픽'으로 유명하다. 마라톤 외에도 양궁(2), 레슬링(2), 유도(1), 핸드볼(1) 등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꾸준한 선전을 이어갔고, 사격(2), 배드민턴(2), 역도(1) 종목에서도 새로운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로스앤젤레스 이후 1996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한국은 4회 연속 종합순위 10위 이내에 올라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베이징까지 최근 7개 올림픽 중 은메달은 가장 많은 15개를 땄으나 금메달은 가장 적은 7개밖에 따지 못해 결승전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유난히 안타깝게 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종주국인 한국이 3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자존심을 지켰다. 양궁 남·여 단체전과 여자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따 태권도와 양궁이 한국의 메달박스가 됐다. 펜싱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고 레슬링에서 심권호가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 2012 런던올림픽 메달.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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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안겨주는 종목은 비슷했다. 양궁(3), 태권도(2)에 이어 레슬링, 배드민턴, 유도, 탁구에서 금메달 하나씩이 나왔다. 유남규·현정화에 이어 14년 만에 유승민이 탁구에서 우승했고, 문대성이 돌려차기 한방으로 국민적 영웅이 된 것도 이때였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에 교수, 국회의원까지 됐지만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한국이 한 대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대회다. 13개로 종합 7위 성적을 거뒀다. 예상치 못한 종목에서 금메달이 쏟아졌다. 주인공은 한국의 마린보이 박태환과 야구 대표팀이었다. 체구 큰 서양 선수들이 석권하던 수영에서 메달이 나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는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어 동계 올림픽의 김연아와 함께 인기 광고모델이 됐다. 야구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정식종목에서 퇴출당해 의미있는 금메달로 남게 됐다.

동계 금메달 23개 중 19개가 쇼트트랙

하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 수는 사격의 진종오, 양궁 여자 단체팀을 포함해 지금까지 70개다. 그러면 동계 올림픽에서 올린 한국의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 제1회 동계 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 사모니에서 열렸고, 한국은 5회 스위스 생모리츠 올림픽부터 출전하기 시작했다. 28개국 669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 한국 선수는 3명이었고 메달보다는 출전에 의의를 두었다. 1984 사라예보 올림픽까지 한국은 단 하나 메달도 따지 못했다.

그러다 1988 캘거리(캐나다) 올림픽에 동계 대회 사상 최대인 28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당시 컬링과 자유형스키, 쇼트트랙은 시범종목이었다. 메달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김기훈이 쇼트트랙 15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함으로써 한국이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었다. 이어 3000m에 출전한 이준호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쇼트트랙이 한국에게 금 캐는 노다지가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이 된 1992 알베르빌(프랑스) 올림픽에서 한국은 쇼트트랙 1000m에서 김기훈, 5000m 계주에서 남자팀이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동계 올림픽이 하계 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리던 전통에서 벗어나 1994년에 열린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도 정상에 올랐다. 김기훈이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고 남·녀 500m도 한국 선수가 석권했다. 금메달 4개가 추가됐다. 1998 나가노(일본) 올림픽에서는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 김동성이 활약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남·녀 1000m에서 나란히 우승했고, 여자 계주팀이 금메달을 따 빙상 국가로 입지를 굳혀갔다.

국민들에게 '분노의 올림픽'으로 기억되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미국) 올림픽에서는 2개의 금메달(쇼트트랙 여자 1500m, 여자 계주)을 획득했다. 김동성이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과 편파판정으로 실격 처리돼 금메달을 빼앗겼다. 당시 국민들은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에게 명예 금메달을 제작해 선물하기도 했다. 2006 토리노(이탈리아) 올림픽에서는 새로운 쇼트트랙 영웅이 탄생했다. 안현수와 진선유는 개인 1000m와 1500m를 포함해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따 대회 3관왕을 차지했다.

지난 대회까지 동계 올림픽 금메달은 모두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2010 밴쿠버(캐나다) 올림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전환한 지 7개월 만에 올림픽에 출전한 이승훈이 10,0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것이다. 단짝 모태범과 이상화도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91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 ⓒ 플리커
쇼트트랙 금메달 행진도 이어졌다. 이정수가 1000m, 1500m 종목을 석권했다.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세계 신기록 점수를 올리며 국민들에게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피겨 종목에 출전한 지 42년 만의 일이었다. 2010년 2월 26일, 김연아가 획득한 금메달은 한국체육사상 91번째 올림픽 금메달이다.

100번째 애국가, 런던에서 울려 퍼질까

2012 런던 올림픽에는 245명의 우리 선수가 출전했다. 한국선수단은 10-10, 곧 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 내 진입을 목표로 세웠다. 4년 전 베이징 올림픽(금 13, 종합 7위)과 비교해 달성 가능한 목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92번째 금메달 주인공은 사격의 진종오가 됐다. 그는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기분 좋은 신호탄을 날렸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박태환과 남현희는 29일 새벽 결승 문턱에서 좌절해 밤새 뜬눈으로 지켜본 국민을 안타깝게 했다.

여자 펜싱 플뢰레의 남현희는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종료 4초를 남겨놓고 기습 찌르기를 허용해 역전패한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국민 남동생 박태환은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자유형 200m·1500m가 남아있어 메달 색깔을 바꿀 공산이 크다. 그는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런던 올림픽을 준비했다.
 
29일 새벽, 미국과 4강전을 펼친 양궁 남자팀은 5점 차로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하루 뒤(30일), 여자팀이 일본을 15점 차로 여유있게 따돌리고 단체 결승전에 진출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결승에서 중국을 만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여자팀. 이번 결승 상대도 중국이었다. 결과는 4년 전과 같았다. 한국 승. 1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중국을 따돌린 한국 여자 양궁팀은 또 하나의 금메달을 추가했다. 양궁에서 나온 17번째, 런던올림픽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 2012 런던올림픽에서 100번째 금메달을 안겨줄 후보들.
ⓒ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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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양궁(남·녀 개인), 유도(왕기춘·김재범), 역도(장미란·사재혁), 배드민턴(이용대-정재성), 체조(양학선), 레슬링(정지현), 핸드볼(여자팀), 복싱(신종훈), 태권도(이대훈·황경선) 등이 금메달에 근접해 있다. 폐막식 전날 열리는 태권도에서 백번째 금메달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올림픽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앞으로 일곱번째, 곧 백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누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는 양정모에 이어 한국 체육사에 남게 된다. 최악의 경우 다음 동계 올림픽으로 주인공 탄생이 미뤄질 수도 있다.


by heyuna 2012. 7. 30. 15:40

4년보다 길었던 4시간이었다. 자유형 400m 예선에 출전해 조 1위(3:46.68)로 터치패드를 찍었으나 박태환의 이름은 전광판 가장 아래에 있었다. 박태환 이름 옆에는 기록 대신 DSQ(Disqualified)가 적혀있었다. 실격된 것이다. 부정 출발로 인한 실격, 하지만 다음 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중계진은 명확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예선 경기 모두가 끝나고 리플레이 화면을 돌려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4시간이 흘렀다.

"스타트 장면을 50번도 넘게 돌려봤지만 박태환은 실격이 아니다"는 마이클 볼 코치는 국제수영연맹(FINA)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국민들은 '박태환의 실격처리는 잘못된 판정'이라는 BBC•CNN 등 외신들을 퍼날랐고 올림픽에서 판정이 번복된 사례를 찾아서 공유하기도 했다.

결승을 앞둔 5시간 전,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공식 입장이 전달됐다. 실격 처리가 번복됐고 결승 진출이 확정됐다. 예선 전체 기록 4위를 기록한 박태환은 결승에서 6번 레인을 배정받았다.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격에서 은메달까지, 롤러코스터 같았던 박태환의 하루

29일 새벽 3시50분(한국 시각), 결승 경기를 위해 박태환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총성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고 박태환은 시작부터 스퍼트를 올렸다. 초반부터 1위 자리를 차지한 박태환은 300m까지 선두 자리를 지켰다. 300m를 턴 한 후 쑨양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350m 지점은 쑨양이 0.90초 앞서 턴했다. 마지막 50m, 박태환이 전력 질주 했지만 기록은 3:42.06, 쑨양에 1.52초 뒤진 기록으로 골인했다. 

▲ 자유형 400m 결승에서 은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가 시상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2012 런던올림픽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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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기록을 목표로 출전한 올림픽이었다. 런던에 입성하고 첫 훈련 때도 느낌이 좋았다. 페이스 조절 성공으로 예선도 조 1위로 통과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실격 처리에 박태환의 몸이 반응했다.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억울한 상황. 박태환의 근육은 수축했고 결승에서 제 기량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차지한 세계 2위, 그래서 박태환의 은메달이 더 아쉽게 다가왔다.

역전 찌르기 앞에 다시 무릎 꿇은 남현희

박태환의 결승 경기가 펼쳐지기 40분 전, 펜싱 경기장에 남현희가 등장했다. 남현희는 4년 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종료 4초를 남겨놓고 발렌티나 베잘리(이탈리아)에게 역전 찌르기를 허용해 통한의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펜싱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그는 런던에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기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리고 4년 뒤, 런던에서 베잘리를 다시 만났다. 하지만 결승전이 아닌 3-4위 전이었다. 

남현희는 이번에도 고군분투했다. 열세에 놓였다. 1라운드 2-2, 2라운드를 2-4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3라운드가 시작되자 남현희가 달라졌다. 쉴새 없이 발을 움직였고 베잘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도한 공격마다 득점으로 연결했다. 3라운드에만 8점을 뽑아냈다. 승리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경기가 끝날 줄 알았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을 마친 후 포옹하고 있는 남현희 선수와 발렌티나 베잘리 선수.
ⓒ 2012 런던올림픽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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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잘리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12-8로 남현희가 앞서고 있던 경기 종료 12초 전, 베잘리가 1점을 뽑아냈다. 다시 경기가 재개됐고 9초를 남기고 베잘리가 1점을 추가했다. 5초 전, 물러서는 남현희를 향해 공격을 퍼 부은 베잘리가 다시 한 점을 획득했다. 12-11, 5초만 버티면 됐다. 하지만 또 다시 공격을 시도한 베잘리, 1초를 남겨 놓고 12-12 동점 상황.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1분 안에 남현희가 공격을 성공 시켜야 하는 상황, 하지만 득점 인정 센서는 베잘리 쪽에 들어왔다. 또 다시 역전패 당한 남현희는 결국 베잘리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노메달에 머물러야 했다. 

종료 1분 전, 부상으로 실려나간 김온아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행복한 결말을 꿈꾸며 런던에 입성한 여자 핸드볼 대표팀. 경기 첫째 날, 스페인과 조별리그 1차전 경기를 펼쳤다. 스페인의 랭킹(16위)은 한국(8위)보다 낮지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은 강호를 상대로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았고 한 차례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무난하게 끝날 것 같았던 경기. 1분 16초를 남기고 26-31로 앞서던 상황, 강재원 감독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표팀 에이스 김온아가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간 것이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찾아온 올림픽 금메달의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히든카드 김온아의 활약은 필수적이었다. 무릎 인대 파열로 남은 경기 출장이 불확실해진 김온아, 핸드볼팀은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도 큰 숙제를 떠안게 됐다. 

▲ 김온아 선수(등번호 3번)가 스페인 선수를 방어하고 있다.
ⓒ 2012 런던올림픽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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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남현희의 금메달로 기분 좋은 첫 날을 보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변이 속출했던 하루였다. 그러나 올림픽 첫 금메달은 예상 종목에서 나왔다. 2012 런던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진종오였다. 남자 10m 공기권총에 출전한 진종오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던 10m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50m 권총이 주종목인 진종오는 5일 밤 8시 30분, 올림픽 2연패, 2관왕에 도전한다. 

오늘 저녁 5시 7분, 배드민턴 혼합 복식 예선에 이용대-하정은이 출전하고 6시 35분, 박태환이 자유형 200m 예선전에 나서 또 하나의 역사를 써나갈 예정이다. 오후 8시 15분, 김장미•박민진이 여자 10m 공기권총에 출전하고, 밤 10시에는 조준호가 유도 남자 66kg, 김경옥이 여자 52kg급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새벽 1시 15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대표팀이 스위스와 조별리그 2차전 경기를 펼친다. 구본길 선수가 출전하는 남자 개인 사브르 결승은 2시에 열리고, 새벽 3시 36분 자유형 200m 준결승이 펼쳐질 예정이다. 

by heyuna 2012. 7. 29. 18:50

▲ SBS <별을 쏘다>에 출연한 역도 장미란·사재혁 선수가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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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들에게는 4년마다 돌아오는 즐거움이지만 선수들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단 한 번의 기회다. 제30회 런던올림픽이 한국 시각, 28일 오전 5시에 개막한다. 203개국에서 출전한 1만500명 선수들이 종목별로 오직 한 명만 오를 수 있는 영광의 자리를 향해 17일간 치열한 승부를 펼친다. 태릉선수촌에서 결전의 땅, 런던으로 이동한 한국 선수단 245명은 수영, 양궁, 역도, 체조, 축구 등 22개 종목에 출전할 준비를 마쳤다.  

 

동계올림픽은 설상 종목의 비활성화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주로 빙상 종목을 중계방송하지만, 하계올림픽은 배드민턴, 수영, 탁구, 펜싱, 레슬링 등 여러 종목이 인기를 끌고 스타 선수도 많은 편이다. 너무 중계할 게 많아서 소외되는 종목이 생길 판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전보다 다양한 종목의 경기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 KBS, MBC, SBS 방송3사는 '기존 중복 편성을 피하고 순차 방송을 실시해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과 채널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한다'는 내용의 올림픽 중계방송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방송3사는 주요 12개 종목(수영, 양궁, 배드민턴, 태권도, 역도, 체조, 펜싱, 복싱, 유도, 사격, 탁구, 레슬링)을 순차 방송하되, 한국 대표팀이나 선수가 출전하는 결승전과 3-4위전, 준결승, 시상식 등에 대해서는 2사 생방송, 1사 지연 중계 형태의 합동방송을 하기로 했다. KBS는 양궁, 체조, 탁구, 펜싱, MBC는 수영, 역도, 배드민턴, 복싱, SBS는 태권도, 유도, 레슬링, 사격을 맡아 중계한다.  

순차 방송 관련 합의는 순조롭게 끝났다. 이후 각 방송사는 런던올림픽 영광의 순간을 생동감 있게 전해줄 해설위원과 캐스터를 확정하고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그들만의 올림픽'을 시작했다. 

방송 3사, 중복편성 피하고 순차방송 약속

 

▲ KBS에서 방영하는 <런던으로 가는 길>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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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런던올림픽 방송단은 이용수(축구), 신진식(배구), 이원희(유도), 김택수(탁구), 여홍철(기계체조)을 비롯한 14명의 해설위원과 조우종, 이지애, 엄지인 아나운서(현지 메인 MC)와 한석준, 오정연, 오언종, 김보민 아나운서(국내 중계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됐다.

MBC는 허정무(축구), 현정화(탁구), 방수현(배드민턴), 김수녕(양궁) 등 스타군단을 해설위원으로 영입했다.
 
해설위원 명성에 견주어 진행자의 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오상진, 허일후, 문지애, 나경은 등 간판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을 때 MBC는 프리랜서 김성주, 4년 전 음주방송으로 퇴사한 임경진 아나운서 등을 중계진 명단에 올렸다. 또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 박은지, MBC스포츠플러스 김민아 아나운서 등이 MC와 캐스터로 활약할 예정이다.  
 

SBS는 차범근·박문성(축구), 노민상(수영), 장재근(육상), 임오경(핸드볼) 등 18종목 19명의 해설위원과 배기완, 배성재, 김환, 박은경, 박선영 등 16명의 아나운서를 런던올림픽 중계프로그램 캐스터나 MC로 선정했다. 

방송3사의 런던 올림픽 준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 사 홈페이지에는 '2012 런던올림픽' 특집 페이지가 마련됐고, 경기일정부터 특집프로그램 소개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담았다. 

SBS는 지난 16일 역도 선수 장미란·사재혁 편을 시작으로 <런던 2012 특집다큐-별을 쏘다>를 방영했다. 인내와 노력으로 도약에 나설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담은 <별을 쏘다>는 남현희(펜싱, 17일), 신종훈(복싱, 18일), 양학선(체조, 19일), 이용대·정대성(배드민턴, 23일), 왕기춘·김재범(유도, 24일), 손연재(체조, 25일), 차동민(태권도, 27일), 박태환(수영, 28일) 순으로 방송된다. '영원한 마린보이, 박태환 편'에 앞서 28일 자정, <런던 2012 특집 올림픽 선수단 필승 콘서트 We Are The Champion>도 방송할 예정이다. 

KBS 2TV는 외주업체에서 제작한 <런던으로 가는 길>을 8부작에 걸쳐 방송한다. 선수에서 태극전사로 거듭나는 현장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26일 현재 7부작까지 방영된 상태다.
 
1부 '한 여름밤의 꿈' 편에서는 여름 태양보다 뜨거운 레슬링, 사격, 태권도, 육상 선수의 훈련 모습이 공개됐고, 2~7부에서는 메달권 종목인 체조(양학선), 펜싱(남현희), 탁구(유승민), 리듬체조(손연재) 등 선수들의 올림픽 준비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KBS 2TV는 <다시 보는 베이징올림픽 영광의 순간들>도 방영 중이다. 
 
중계진 400여 명 파견... 시청률 경쟁 시작

 

▲ 런던올림픽 특집 페이지를 마련한 방송 3사(위에서부터 KBS, MBC, SBS)
ⓒ 방송사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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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에서는 22일 <올림픽 사이언스>가 방송됐고, <런던드림>(24~27일), <런던으로 간 대한민국 전사들>(26일)<위대한 도전 1948-2012>(27일), <런던의 재탄생>(27일) 등 올림픽 특집 다큐멘터리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KBS는 "1TV, 2TV 두 개 채널을 활용해 메달권 경기가 아닌 비인기 종목까지 아우르는 공영방송다운 편성을 보여줄 예정이며, 일일 약 1000분의 생중계와 400분의 하이라이트를 전격 편성해 대한민국 선수단 전 경기를 중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174일 장기 파업 여파로 뒤늦게 올림픽 제작에 합류한 MBC는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본선 B그룹 상대팀 분석(멕시코 23일, 스위스 25일, 가봉 26일)과 <한류문화 런던을 사로잡다>(25일), <아이돌 올림픽>(1부 25일, 2부 26일), <베이징 올림픽 감동의 순간들>(27일)을 방영할 계획이다. 

KBS 114명, MBC 111명, SBS 170명이 런던올림픽 방송을 위해 현지로 떠났다. 담당 종목 배분과 해설위원 영입, 특집 프로그램 제작까지. 런던올림픽을 이틀 앞둔 현재 KBS, MBC, SBS가 출전하는 23번째 종목 '시청률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by heyuna 2012. 7. 26. 11:14

한국 빙판 영웅 김동성, 인생 2막을 열다
[TV리뷰] tvN <백지연의 피플 INSIDE> ‘김동성-송종국’ 편
12.07.25 15:32ㅣ최종 업데이트 12.07.25 15:32ㅣ정혜정(heyuna)
태그김동성백지연의 피플 INSIDE쇼트트랙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오노 사건'으로 노메달, 3주 뒤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전관왕으로 명예회복. 이후 정상에서 은퇴. 한국 쇼트트랙의 영웅 김동성 스케이트 코치가 tvN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 출연해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제 2의 인생에 들어선 소감을 털어놓았다. 

김동성은 8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탔다. 스케이트장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을 보고 막연히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아버지는 다른 운동을 권했다. 그러나 스케이트가 너무 좋았던 그는 차마 스케이트화를 벗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설득하고 꾸준히 훈련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주니어 대표로 뛰던 김동성은 선발전을 거치지 않고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한국 대표로 첫 출전한 1996 하얼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동성은 군 면제 걱정에서 자유로워졌고 이후 훈련에만 몰두했다. 

"아침, 점심, 저녁 내내 스케이트를 탔죠. 중고등학교 때 사춘기는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던 걸 하다 보니 사춘기는 없었어요."

  
▲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편파판정으로 안톤 오노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 선수.
ⓒ tvN
태그김동성


고 3때 출전한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1000m 금메달과 남자 계주 은메달을 차지한 김동성은 올림픽 2연패를 꿈꾸며 다시 훈련에 몰입했다. 4년 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500m에서 안톤 오노를 따돌리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과 편파판정으로 실격 처리 돼 노메달에 그쳐야 했다. 선수 인생에서 경험한 최악의 사건이라는 김동성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불운의 스타, 분노의 질주로 정상에 오르다

"경기 끝나고 너무 분해서 울다가 기절했어요. 눈 떠보니 다음 날이었고 제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링거를 맞고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몸과 정신까지 힘들었던 상황이었어요. 오노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다 풀어질 것 같은데 그 말을 안 하더라고요" 

사과하지 않은 오노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상처는 아물어 갔다. 그러다 2010년, 코치 신분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김동성은 오하이오주의 한 아이스링크에서 자서전 투어를 하고 있던 오노를 만났다.

"오노가 먼저 와서 끌어안더라고요. 그리고 카메라를 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과 함께 저와 오노가 화해했다는 기사들이 막 떴죠. 이후 오노가 자서전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어봤어요. 그런데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네가 최고의 선수고, 베스트 레이서다 (You're number one, You are the best)'.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거든요. 다시 분노가 불타오르면서 '저 녀석이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2010년 자서전을 발간한 오노. 사실과 다른 내용이 들어가 논란이 됐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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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사건으로 김동성에게는 비운의 빙상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김동성은 "비운은 아닌 것 같아요. 메달이란 메달, 기록이란 기록은 다 달성 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동성은 2002 올림픽이 열리고 3주 뒤에 개최된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서, 올림픽 2연패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날려버렸다. 1992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관왕을 차지한 김기훈(전 국가대표 감독) 이후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6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오노 사건 이후 제 몸이 다 망가졌었어요. 근육도, 정신도요. 3주 만에 세계선수권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시간이 촉박했거든요. 그런데 당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는데도 국민들이 격려 해주신 점이 많이 힘이 됐어요. 오히려 메달 딴 선수만큼 제게 대우를 해주셨어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타도 오노'를 외치며 운동했죠."

1500m에 출전한 김동성은 경기 시작 두 바퀴째 다른 선수들과 반 바퀴 이상 거리를 벌렸다. 이후 스퍼트를 올리며 혼자 내달린 김동성은 2위 그룹을 한 바퀴 이상 추월했고 일찌감치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지금도 김동성의 '분노의 질주' 동영상은 포털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비운의 스타로 남을 뻔 했던 김동성은 세계선수권 전관왕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정상에서 은퇴했다. 

그는 선수생활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아버지가 오셨어요. 그런데 첫째 날 금메달 두 개 따는 모습을 보고 경기장 2층 스탠드에서 내려오시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거예요. 더 마음이 아팠던 점은 아버지가 쓰러졌는데도 다음 날에도 시합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시합에 뛰지 않으면 국가 대표에 발탁되지 못했거든요. 어머니가 '아버지도 네가 국가대표가 돼서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고 위로해주셨는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시합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었어요." 

1•20대 선수생활 끝, 30대 또 다른 인생

힘들었던 선수 생활을 끝내고 2005년 은퇴한 김동성은 결혼해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위한 어학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메달리스트들이 모여서 본 영어테스트에서 운 좋게 합격해 미국으로 떠나게 됐죠. 1년 기간으로 갔는데 생활하다 보니 정착하게 됐고, 코치직 권유를 받고 미국에서 6년 동안 살았어요."

미국 매릴랜드와 버지니아주 스케이팅 클럽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오던 김동성은 작년 2월 제자들의 학부모로부터 폭행 혐의로 고소 당했고, 지난 5월 미국빙상연맹은 김동성의 코치 자격을 박탈시켰다. 폭행 논란에 김동성은 "없는 말을 지어내 말도 안 되는 코치로 매도하고 있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저한테 어떤 학부모가 그러더라고요. '한국에서 선생님은 유명한 메달리스트인데, 지도하고 있는 선수들을 다시 클럽으로 보내준다면 아무 일 없이 깨끗하게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선수들을 데리고 계속 코칭을 한다면 선생님 명예에 큰 타격이 있을 겁니다'. 정말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고, 미국에서 코치를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한국 빙상계의 파벌 논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저희 때는 파벌이라는 게 없었어요. 지금 파벌이라는 것은 개인 지도하는 코치선생님들이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국대로 뽑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 같아요. 만약 제 선수가 다섯 명이라면 이 선수들끼리 작전을 세워서 우리 팀 선수가 레이스에서 이기게끔 하는 거죠. (쇼트트랙은 개인 운동인데) 팀플레이를 하는 거죠. 그런데 만약 내 자식이 혜택을 못 받았다면 그 부모가 나와서 '파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 국제심판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김동성 코치.
ⓒ tvN
태그김동성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한국 쇼트트랙 영웅이 된 김동성. 하지만 그의 나이 이제 33살이다. 남들보다 빨리 1막을 내린 김동성은 현재 미국에서 돌아와 스케이트 코치와 방송활동을 겸하고 있다. 그는 '국제심판'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2막에서도 치열한 삶을 살 것을 예고했다. 

"보통 인생은 20대 후반에서 30대쯤 시작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린 나이에 메달을 땄고, 이제 30대를 살아가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못 배운 것들이 많더라고요. 우선 인간관계와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배워야 할 듯 해요. 저희(운동선수)는 자기한테 잘해주면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사기도 많이 당하고요. 이제부터 인생을 배워야죠."

by heyuna 2012. 7. 25. 16:54

[TV리뷰]박태환, 반란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SBS스페셜>-'승부사 박태환' 편...런던올림픽 '영웅의 귀환 프로젝트' 기대한다
12.07.24 14:58ㅣ최종 업데이트 12.07.24 14:59ㅣ정혜정(heyuna)
태그박태환SBS스페셜런던올림픽 
"중학교 3학년,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때 막 기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올림픽을 앞두고 발탁됐기 때문에 그만큼의 긴장감이 있었거든요."

2004년, 만 14살의 나이에 최연소 수영 국가대표로 발탁된 박태환은 한국 대표로 출전한 첫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력을 겨뤄보기도 전에 부정 출발로 실격하고 만다.

  
▲ 하루에 7시간 씩 물속 훈련을 하는 박태환 선수.
ⓒ SBS
태그박태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뽑힌 꼬마 박태환은 경험 부족으로 준비 신호를 출발 신호로 착각해 홀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킥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했던 그 꼬마가 3년 뒤 다시 세계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2007 멜버른세계선수권대회. 400m 자유형 부문에 출전한 박태환은 5번 레인에서 경기를 펼쳤다. 총성과 함께 '제때' 출발한 박태환은 300m까지 줄곧 5위에 머물렀다. 선두권에서 멀어진 박태환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결승선을 50m 앞둔 350m 지점을 4위로 턴 한 박태환. 박태환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50m 구간에서 스퍼트를 끌어올린 박태환은 앞서 있던 선수 한두 명을 따라잡더니 결국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부정 출발로 실격한 꼬마 박태환이 대한민국 수영 영웅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봤을 때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내가 결승전에서 이런 세계적인 스타와 레이스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즐겁고 뜻 깊은 일 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2일 SBS는 2004 아테네올림픽 실격,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로마선수권 예선탈락,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등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한국의 수영 영웅 박태환의 2012 런던올림픽 준비과정을 담은 'SBS스페셜-승부사 박태환' 편을 방송했다. 

  
▲ 2012 런던올림픽, 박태환의 목표는 세계신기록 경신이다.
ⓒ SBS
태그박태환

박태환의 두 번째 올림픽인 2008 베이징올림픽은 4년 전과 달랐다. 400m 자유형 금메달, 200m 자유형 은메달. 아시아에서 놀던 박태환이 세계적인 물로 뛰어들었다. 박태환은 당시의 금메달은 놀라운 기억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저 자신도 좀 놀랐었어요. 파이널(결승)에 올라가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인데 거기서 금메달을 따게 돼서 굉장히 놀라웠던 거 같아요. 그 시기는 놀라웠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2004 아테네올림픽 이후 전국체전 우승은 물론이고 2006 도하아시안게임, 2007 FINA 경영월드컵 6차대회 200m•400m•1500m 석권에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까지 승승장구 하던 박태환이 2009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박태환도 국민들도 깜짝 놀랐다. 언론에서는 '박태환 침몰'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고 박태환은 처음 맞는 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가기가 조금 두렵다고 해야 하나?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아요. 한국 간다 그러면 집에 가는 건데… 계속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보여지다가 한 번 이렇게 예선 탈락 해버리니까 그만큼 질타가 심하더라고요. 한 번에 롤러코스터처럼 쭉 내려가니까 제 마음도 상처 입는 게 더 심했어요. 한 번에 너무 많은 질타가 들이닥치니까 좀 버거워서 많이 힘들었어요."

  
▲ 한계를 넘는 훈련량. 근력 강화 운동 후 힘이 빠져 버린 박태환 선수.
ⓒ SBS
태그박태환
박태환 선수를 전담하는 권세정 팀장은 당시 박태환이 굉장히 혼돈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데 나를 죄인 취급 하나, 은퇴할까?' 박태환 선수가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마이클 볼 코치를 선임한 후 코치와 첫 만남부터 박태환 선수가 굉장히 기분이 좋아 했어요. 동기가 생기고 수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정신을 좀 차리게 됐죠."

마이클 볼 코치를 만난 박태환은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루 7시간씩 물속 훈련이 이어졌다. 박태환의 훈련이 끝나야 수영장의 하루 일정도 끝났다. 연습 벌레 박태환은 물속 훈련 전후에 수영 동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근력 강화 운동도 잊지 않았다. 힘든 과정을 묵묵히 이겨낸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박태환은 100m•200m•400m 자유형 3관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200m 경기에서는 단 한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호주 브리즈번 훈련장으로 돌아온 박태환은 잠영(물 속에서 하는 헤엄) 거리를 늘리고 돌핀킥(Dolphin Kick)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2012 런던올림픽을 대비해, 라이벌인 마이클 펠프스(193cm), 쑨양(198cm)과 10cm이상 차이가 나는 신장(박태환: 183cm)을 잠영과 돌핀킥으로 극복하기로 한 것이다. 
  
▲ 베이징올림픽때와 비교한 박태환 선수의 최근 모습.
ⓒ SBS
태그박태환

"박태환의 실제 수영 스피드는 마이클 펠프스나 라이언 록티만큼 잘합니다. 하지만 잠영이나 턴은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저희는 아주 많이 노력했어요. 지난 2년 동안 잠영과 턴이 많이 향상 됐어요." (마이클 볼 코치)

박태환은 훈련을 통해 잠영 거리를 기존 6~7m에서 11~12m로 늘렸다. 돌핀킥을 강화하기 위한 근력 운동 또한 필수였다.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돌핀킥 훈련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유연성이라든지 근력을 상호보완 하는 운동을 시킬 때 박태환 선수에게 '태환아, 이 운동은 돌핀킥에 굉장히 좋은 운동이고 아주 효율적일 거야' 이렇게 이야기 하면 태환이가 굉장히 열심히 훈련을 합니다. " (권태현 체력 코치)

힘들다고 운동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량 덕분에 물살을 가르는 힘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가 됐다. 볼 코치와 훈련하기 전에는 돌핀킥을 한두 번 차던 박태환이 올림픽을 앞둔 지금 네 번까지 그 양을 늘렸다. 4년 전과 비교해 복근도 생겼다. 달라진 몸은 경기력에도 변화를 줬다. 

"저희 전담팀은 금메달을 100% 기대하죠. 이번 목표는 Super-X에요. 'Super eXcellent' 약자인데, 200m•400m 금메달에 400m 세계신기록이에요." (권세정 전담 팀장)

"제 생각에 쑨양의 실력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 박태환 선수에게 큰 도전이 될 거예요. 박태환 선수도 자기가 이겨야 할 사람이 쑨양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둘 사이에 아주 환상적인 시합이 될 것 같아요." (마이클 볼 코치)

  
▲ 2012 런던올림픽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 SBS
태그박태환

"아마 이번 올림픽 경기에서 1등과 8등 순위가 1~2초 내에서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의 박태환이 반란을 일으킨 경기였다'라는 멋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한테도 그렇고요."  (박태환 수영 국가대표)

2012 런던올림픽 '영웅의 귀환 프로젝트'. 준비는 끝났다.

by heyuna 2012. 7. 24. 16:30

임권택 감독 “내가 만든 영화 제목, 기억 안 해요”
[TV리뷰] <백지연의 피플 INSIDE>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 편
12.07.24 15:26ㅣ최종 업데이트 12.07.24 15:26ㅣ정혜정(heyuna)
태그임권택피플인사이드 


1961년 첫 메가폰을 잡은 이후 반백 년 동안 101편의 영화를 만든 성실한 감독.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23일 tvN <백지연의 피플INSIDE>에 출연해 영화인의 삶을 이야기 했다. 

  
▲ 임권택 감독은 50년동안 101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 tvN
태그임권택

임 감독은 작년 3월 자신의 101번 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끝으로 잠시 메가폰을 놓고 동서대학교 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진행자 백지연 씨가 "그 학교 학생들은 참 복도 많다"고 말하자 임 감독은 "복이 많다고 생각해야 할텐데…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합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임 감독은 교수로서의 생활 외에도 2014년 인천에서 열리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선임된 후 프로그램에 우리 문화재를 담아내는 것에 대해 고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소통과 정을 테마로 삼고 있어요. 배경에는 여기가 한국이라는 것을 격조 높게 심을 거고요. 잘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50년간 101편의 영화를 만든 거장 감독의 겸손한 답변이었다. 임 감독은 한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한국 영화사의 기준이 되는 영화인이다. 

  
▲ 한국 영화의 역사, 임권택 감독이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했다.
ⓒ tvN
태그임권택

그는 1961년 첫 작품 <두만강아 잘 있거라>의 흥행 성공으로 10년간 5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년에 다섯 편씩, 그가 찍는 것은 모두 영화였다. 그러기를 10년. 무작정 찍어내는 것에 회의가 들었을까. 10년이 지난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존에 찍어왔던 허구 세계를 덮어버리자. 미국 영화 아류를 만들지 말고 삶이 진솔하게 드러나는 영화를 만들자. 한국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 많이 유치하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도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을 만들자." 

흥행감독으로 50편을 찍어낸 체질화된 관성의 때를 벗기기 위해 그는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운 다짐을 가지고 찍은 첫 영화는 김지미 주연의 <잡초>. 저질영화, 액션물을 찍던 감독이 작품성이 있는 영화를 찍겠다고 하자,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임 감독은 직접 제작에 나섰다. 결과는 흥행 실패. 그러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한국인의 정신을 담는 영화를 찍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내 영화 보면 열 받아요" 거장의 겸손 발언

'그 동안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 감독은 의외의 답변을 내 놓았다. 

"제 영화를 잘 안 봐요. 보면 열 받는 장면과 만나게 되요. 내가 만든 모든 영화에 나를 화나게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열 받는 장면 때문에 제 영화는 잘 안 봐요. 영화가 다 만들어졌을 때 한 번 보고 끝이죠. 한 번은 텔레비전에서 1960년대 저질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거예요.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제 한번 본 것 같기도 했는데, 끝날 때 보니 감독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첫 10년 간 만든 50 편의 작품이 부끄럽다던 임 감독은 "혹시 불이라도 나서 그 흔적을 지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며 깜짝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서편제>, <취화선> 등 세계 영화제에서도 인정받은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임권택 영화학교에서 강의할 때 그런 영화를 보여주고 흠을 찾는 수업을 해요. 자기 살 자기가 깎아 먹는 거죠(웃음). 어떤 작품을 내걸어도 흠 잡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매 순간 완벽을 추구했지만 단 한 편도 완벽한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그의 고백. 임 감독은 그런 치열함으로 101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임 감독이 대작(大作)을 다작(多作)할 수 있었던 것에는 아내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 촬영 중간 아내 채령 씨가 인터뷰에 합류했다.

  
▲ 임 감독이 아내와 함께 인터뷰 중이다.
ⓒ tvN
태그임권택

일년에 200일 이상을 밖에서 생활하는 남편. 평생 영화에만 몰두한 남편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평생 은행에 가보지 않았다"며 '폭탄' 발언을 했다. 이런 남편을 위해 그는 카드를 만들어 주고 현금인출기 사용법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아마 현금인출기를 7~8년 전에 처음 사용했을 거예요. 카드를 만들어줬더니 한 일주일 동안 하루에 20~30만원씩 날마다 뽑는 거예요. 신기했나 봐요. 누르면 돈이 나오니까. (웃음)"

"내가 돈을 인출했는데 집에서 다 알고 있더라고요"라며 소년처럼 웃는 임 감독은 집안 걱정이 영화 일에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권현상)에 대해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자식이 영화인으로 사는 것을 별로 환영하지는 않아요. 평생을 영화인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쉽지 않은 길을 50년 간 걸어온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 감독. 그는 영화 촬영을 하면 현장에 가장 먼저 나와 있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오늘 찍어야 할 것들 생각하고, 거기에 깊이 빠져 있어야 해요. 열심히 일 하고 있는 스태프들에게 감독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줬을 때 서로 믿음도 생길 것이라 생각하고요."

아직도 담아내고 싶은 한국 이야기들이 많다는 일흔 여섯 살의 노장 감독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현장에서 뛰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담아내야 할 곳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유명한 곳은 거의 다 돌아 다녔는데… '아직 안 본 곳들을 더 돌아다녀야겠지'하는 생각을 갖고 있죠."

by heyuna 2012. 7. 24. 16:29

돌핀킥 마스터 박태환 '물장구 세레머니' 재연 준비 끝!
[TV리뷰] KBS 1TV 2012 런던올림픽 특집 '올림픽 사이언스'
12.07.23 15:13ㅣ최종 업데이트 12.07.23 15:37ㅣ정혜정(heyuna)
태그박태환런던올림픽 
런던올림픽을 닷새 앞둔 22일 밤 KBS 1TV는 '2012 런던올림픽 특집 '올림픽 사이언스-박태환, 양학선, 김연경'편(1부작)을 방송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운동 능력을 과학적으로 입체 분석한 프로그램. 4년 전 국민남동생에서 복근을 장착하고 '국민 남자'로 거듭난 박태환 선수의 훈련 과정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 런던올림픽 200m,400m,1500m 자유형 부문에 출전하는 박태환 선수.
ⓒ KBS
태그박태환

박태환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사상 최초로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서양인들이 독식하던 수영에서 한국인 선수에게 메달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때는 박태환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박태환이 베이징올림픽에서 400m 금메달과 200m 은메달을 딴 이후, 수영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하나 정도는 쉽게 따올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종목이 되어버렸다. 예전의 레슬링, 양궁처럼 말이다. 

5명이 겨루는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경주도 아무나 1등할 수 없는데 학교 대표, 시 대표도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과 끈기로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본 박태환은 얼마나 고된 훈련이 있어야 세계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두 개(400m•200m), 세계신기록 경신을 목표로 4년 전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

  
▲ 훈련을 통해 4년 전보다 더 강해진 박태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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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에서도 굉장히 뜻 깊은 성적을 냈지만 이번에는 세계신기록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사실 요즘 훈련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세게 신기록이라는게…"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그의 컨디션은 최고였고 몸 상태도 완벽에 가까웠다. 4년 동안 키가 훌쩍 자라거나 발 사이즈가 10mm, 20mm 크진 않았을 텐데 그는 어떻게 더 높은 목표를 잡을 수 있었을까. 돌핀킥과 잠영이 해결책이었다. 돌핀킥(Dolphin Kick)과 잠영(물 속에서 하는 헤엄) 능력을 키우는 훈련을 반복하자 박태환은 4년 전보다 더 강한 선수가 돼 있었다. 

돌고래의 수영법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돌핀킥은 지느러미를 좌우가 아닌 상하로 흔들기 때문에 물속에서 무려 시속 55km의 속도(돌고래의 경우)를 낼 수 있다. 호주 국립 스포츠연구소 책임연구원인 브루스 메이슨 씨는 "물에 뛰어들어 출발할 때 돌핀킥을 유지하면서 15m를 갈 수 있다면 일찍 올라와 수면 가까이 헤엄칠 때보다 상당히 더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돌핀킥의 속도는 일반킥보다 1.4배 가량 빠르다고 한다. 

2004 아테네올림픽 400m 자유형 부문 금메달리스트 이안 소프를 키워낸 마이클 볼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는 박태환은 처음 볼 코치에게 왔을 때 (잠영 시) 돌핀킥을 한두 번 밖에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네 번으로 늘었다고 한다.

박태환은 강력한 돌핀킥을 위해 복근을 강화시키는 훈련에 집중했다. 또 지구력이 요구되는 지근보다는 순간적인 파워를 낼 수 있는 속근이 발달할 수 있도록 훈련 방법을 수정했다. 강도 높은 근력 강화 훈련으로 박태환의 돌핀킥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고 잠영 깊이는 물론 발차기 횟수도 늘어났다.

같은 거리를 달리는 경우, 수영 선수는 육상 선수보다 4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만큼 물의 저항을 뚫고 나가는 것은 공기를 가르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수영은 물의 저항과의 싸움이다. 저항을 덜 받기 위해서는 물 속에서의 수영하는 시간, 즉 잠영 거리를 늘려야 했다. 그동안 낮고 짧은 잠영 능력은 박태환의 단점이었다. 박태환의 잠영 훈련이 시작됐다. 

"태환, 얕아. 너무 얕았어. 너무 오랫동안 수면 가까이에 있었어. 마이클 펠프스가 물 속에서 하는 것을 보면 수면에서 상당히 깊이 들어갔다가 아주 날카로운 각도로 다시 올라와." (마이클 볼 코치)

  
▲ 박태환과 마이클 펠프스 신체조건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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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펠프스의 잠영 능력은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박태환과 펠프스의 잠영 능력을 비교해보면, 한번 잠영시 박태환은 돌핀킥을 4번, 펠프스는 7번까지 사용한다. 펠프스가 물 속에서 박태환보다 오랫동안 돌핀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리뿐 아니라 몸 전체를 이용해 물살을 타며 유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차이는 신체 조건이었다. 키와 양팔 길이가 박태환보다 10cm 더 긴 펠프스의 발길이는 무려 350mm로 박태환보다 60mm 더 길다. 박태환은 신체 조건의 열세를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타트를 똑같이 뛰더라도 키가 15cm가 더 작다면 (수면 위로) 나오는 게 15cm 더 늦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더 보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키를 늘리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스타트를 더 멀리 뛰거나 돌핀킥을 훈련해서 15cm를 더 커버할 수 있는, 그런 테크닉 쪽으로 기술을 더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박태환의 폐활량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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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영과 돌핀킥과 함께 일반인의 두 배가 넘는 폐활량 또한 박태환의 장점이다. 기록 분석에 따르면 박태환의 경기 결과와 폐활량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예선 탈락한 2009 로마 세계선수권 당시 박태환의 폐활량은 6700cc, 100m•200m•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출전 때는 6820cc였다. 2012 런던올림픽을 앞둔 현재 박태환의 폐활량은 7200cc다.

"자유형 400m 시상대의 제일 높은 곳에서 정말 기쁘게 웃고 싶은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그림도 그리고 있고요. 가끔 자기 전에 멍하니 누워서 많이 상상하게 되는 데 꼭 그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 2008 베이징올림픽 400m 자유형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박태환이 세레머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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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기준 28일 오후 6시 47분, 박태환의 400m 자유형 예선 경기가 시작된다. 터치 패드를 찍고 물 속에서 나와 격한 환호성을 지르는 박태환의 세레머니를 구경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by heyuna 2012. 7. 23. 1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