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18일이 지났다. 영광의 순간을 만끽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박승희-세영 남매가 쇼트트랙 500m에서 동반 우승을 차지했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일반부 1000m 경기에 출전한 이상화는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남자일반부 1500m에서 우승한 이승훈은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대회를 마쳤다. 

'올림픽 특수' 예능에 진출한 국가대표 선수들

4년간의 노력을 쏟아 붓고 온 선수들은 밀려오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국가대표로서 주어진 마지막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방송사 인터뷰, 선수상 시상식, 포상금 수여식, 대통령과의 오찬 등 짜인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였다. 

올림픽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한 선수도 있다. 이상화·박승희·조해리는 짬을 내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아빠!어디가?2> 녹화를, 이상화는 인기 예능 <무한도전> 촬영을 마치기도 했다. 주형준·김철민과 함께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승훈은 13일 저녁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했다. 올림픽 영웅의 또 다른 모습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나들이를 마친 선수들이 다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스케이트화를 조여 매고 세계선수권 대비 훈련을 시작했다. 폭풍 같았던 한 달이 지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국민이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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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표정의 김연아 김연아 선수가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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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올림피언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데 비해, 의외의 폭풍에 휩싸인 선수가 한명 있다. 김연아(24·올댓스포츠)다. 선수 생활 내내 전국민적인 관심과 기대를 어깨에 짊어진 채 빙판 위에 올라야 했던 그는 얼음 밖을 나선 뒤에도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일정이었던 청와대 오찬을 가진 다음날, 온라인 연예전문매체 <디스패치>가 김연아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하루 종일 김연아의 열애와 관련한 단어들로 도배됐고 각종 인터넷사이트에는 관련 게시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날 하루 '김연아'가 제목에 포함된 기사는 총 2229건, '피겨 여왕'이 포함된 기사는 1239건으로 집계됐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양의 기사가 출고된 만큼 중복 기사도 과장된 내용도 많았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소식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네티즌은 댓글로 기자들은 기사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실어 날랐다. 미국 매체 <야후 스포츠>가 김연아와 군인 신분인 김원중(30·대명 상무)이 군 휴가에 맞춰 데이트를 즐겼다고 보도한 것을 몇몇 국내 매체에서 오역한 것이 화근이 됐다. 

군 휴가를 밀월 여행급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루머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김원중 선수와 가족의 신상 털기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김연아의 남자 친구로 지목된 김원중 선수 관련 기사는 6일 하루 동안 1966건이 생산됐다.

7일 오후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는 "여러 매체와 SNS, 인터넷 댓글 등에서 사생활을 침해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으로 인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가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악의적인 글을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올릴 경우 명예훼손 차원에서 신속하게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그가 필요한 건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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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여왕' 김연아가 2월 21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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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당시 메달 시상식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선 김연아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달리기만 해서요. 여유를 갖고 새로운 삶을 찾아야죠. 그동안 너무 감사드렸고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복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행복을 얘기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 6일 열애설이 터진 이후 일 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연아의 연애'는 핫한 키워드 중 하나다.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은 마감했지만 김연아를 향한 국민적 관심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연아에게 자유는 닿지 않을 희망 사항인 걸까?

사실 김연아는 훨씬 전부터 자유롭길 원했다. 김연아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힘든 훈련을 견뎌왔다. 하지만 그는 밴쿠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섣불리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왜 내가 지금 스케이트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으며 훈련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2010년 3월,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김연아는 2011년 1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내 선수생활은 끝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금메달을 따고 한 달 뒤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2010년 3월)에 나가라는 거예요. 그전에 출전 약속은 되어 있었어요. 올림픽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라 의욕도 없고 연습도 못하겠어요. 괜히 나갔다가 망신만 당할 수 있고요. 제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어쨌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1년 뒤인 2011년 4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 또한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 년 이상 안 나가겠다고 싸웠죠. 주변에서 워낙 설득을 하니 어쩔 수 없었는데, 나가기로 해놓고도 후회하고 포기하고 싶었지요. 주위에서 안 나가면 매스컴이나 팬들, 국민들이 저를 외면할 거라고 했어요. 아직도 전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러는지." (2011.11.21 <조선일보> 인터뷰 중)

오로지 선수의 의지만으로 진행된 선수 생활 연장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이 대회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아리랑을 포함한 한국 전통음악을 편집해 사용했다.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바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한동안 얼음을 떠났던 그가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했고, 지난 2월 올림픽에서 은퇴 무대를 마쳤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

쇼트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와 프리스케이팅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얼음 위에 선 김연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7분 동안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그가 마침내 얼음 위를 걸어 나왔다. 

아디오스 김연아. 18년간 선수로 지내며 자유롭지 못했을 그. 셀러브리티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의 연기로, 그의 존재 자체로 희망을 얘기하던 나날이 많았다. 이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제는 조금 물러서서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 아디오스 김연아.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다.


by heyuna 2014. 3. 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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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메달 받은 선수단 "화이팅"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김아랑, 조해리, 심석희, 공상정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대한체육회가 준비한 초콜릿 메달을 목에 걸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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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의 축제가 끝났다. 축제를 빛낸 영웅들이 돌아왔다. 지난 25일 오후 3시 40분,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장은 수백 명의 취재진과 팬, 선수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기수 이규혁을 선두로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선수단이 차례로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대기 중이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 등이 선수들에게 다가가 '국민행복 금메달'을 전달했다. 대한체육회가 격려와 감사의 표시로 준비한 초콜릿 금메달이었다. 선수단은 깜짝 선물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웃음을 찾은 뒤, 초콜릿 메달을 입에 물고 사진을 찍었다.

'센터'의 주인공은 김연아도 이상화도 아닌...

이날 준비된 초콜릿 메달은 지름 9cm, 두께 1cm 크기였다. 특히 이규혁 선수에게는 최다 올림픽 참가를, 김연아 선수에게는 은퇴를 기념하는 의미로 다른 선수들 것보다 3cm 더 큰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깜짝 이벤트와 기념 촬영을 끝낸 선수단과 임원들은 인천국제공항 1층 밀레니엄홀 야외무대로 자리를 옮겨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했다. 첫째 줄은 역시 메달리스트들의 몫이었다. 김연아와 이상화가 양쪽에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빙상연맹 회장이 앉았다. 두 선수 옆으로는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이 나눠 앉았다.

해단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다소 엄숙하게 진행됐다.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답지 않게 행사 내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임원들의 말씀이 시작됐다. 최종삼 선수촌장의 성적보고를 시작으로 김정행 회장의 식사, 유진룡 장관의 치사에 이어 김재열 단장의 답사 그리고 김진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인사까지. 14분 동안 격려와 감사의 말들이 오갔다. 긴 비행으로 피곤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건 '말씀'의 시작과 끝에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이후 평창 소개 영상이 상영됐고 주요 선수들과 임원들이 나와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소 지루했던 해단식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인터뷰 시작 전, 진행자는 시간 관계상 10분간 다섯 개의 질문만 받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미숙한 진행 이어져

첫 번째 질문부터 식상했다.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는 김연아에게 "갈라쇼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박승희에게 "500m 동메달을 딴 이후 가장 기뻐해 준 사람이 혹시 '그 분'이 아닌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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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다짐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 및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에서 이상화, 김연아, 심석희 등 선수들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등이 올림픽 대회기를 들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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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갈라쇼까지 소치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갈라에서도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감정들은 없었던 것 같고요. 마지막이긴 하지만 앞으로 예정된 공연도 있기 때문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연아의 대답이 끝나고 박승희가 마이크를 잡으려는 순간, 불쑥 다른 질문자가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에 유 장관이 '박승희 선수 차례'라며 손짓으로 제지했고, 박승희가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 분은 아니었고요. 저희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을 것 같은데 너무 멀리 있어서요. 제가 느끼기에는 같이 있었던 쇼트트랙 대표팀이 제일 기뻐해주셨던 것 같고, 그 기쁨이 제게도 가장 크게 느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질문자는 유 장관과 김 단장에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건립 예정인 빙상장을 '김연아 빙상장'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김연아 빙상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당사자인 김연아는 불편한 웃음을 지었고, 현장에 있던 일부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유 장관은 "올림픽 공원에 그 시설을 짓는 것은 국가 기밀인데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다. 그 시설의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금부터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 나가야 할 사항이다. 의견은 잘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김연아 선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스케이터"라며 "빙상연맹회장으로서 정부가 하는 일에 손을 맞춰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질문도 김연아에게 향했다. 팬들이 자신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인정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냐는 물음에 김연아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힘들게 준비한 만큼 다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을 했고요. 마지막 대회인 만큼 후련하게 끝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고, 또 많은 분들이 제가 경기한 것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뒷줄에 앉은 모태범, 윤성빈뿐 아니라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며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은 쇼트트랙 여자 계주팀,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 주형준, 김철민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을 마치고 온 이규혁까지. 아직 입을 열지 못한 선수가 많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선수 이름을 모르는 질문자와 대답을 끊는 진행자

마지막 질문 기회를 잡은 사람은 한 방송사 PD였다.

"박상희... 박상희 선수에게 질문을 하겠는데요. 평창 올림픽이 이제 4년 남았는데 자신의 포부가 있다면요? 심석희 선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500m 결승전에서 선두로 달리다 뒤에 오던 선수에게 걸려 넘어진 박승희. 일어나서 다시 달리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넘어졌음에도 끝까지 레이스를 펼쳐 감동을 안겨 준 박승희. 그리고 끝내 동메달을 목에 건 박승희. 이날 당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1000m에서 금메달을 따 낸 박승희. 질문자는 가장 기본적인 선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박승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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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 인파 가득 2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김연아, 이상화, 박승희 등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한 가운데, 취재진과 팬들이 입국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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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이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제가 평창올림픽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해서 가게 된다면 큰언니 역할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심석희가 마이크를 건네받는 순간, 진행자가 말했다.

"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기념 촬영을… 아, 네 계속해서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요. 이번 올림픽도 좋은 경험이 됐는데, 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4년 뒤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심석희)

미숙하고 불편했던 기자회견이 끝이 났다.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의 소감도, 마지막 올림픽을 끝낸 이규혁의 심정도 듣지 못했다. 선수 생활 2년 만에 올림픽에서 썰매 종목 한국 역대 최고 순위를 갈아치운 윤성빈 선수의 사연 또한 들을 수 없었다.

축제의 주인공들은 입을 다문 반면 행사에 참여한 정부, 협회, 연맹 임원들은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각자에게 주어진 2~3분의 발언 시간을 아낌없이 썼다. 식사, 치사, 답사로 구분해 진행했지만 이들이 말한 내용은 비슷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평창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선수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언제까지?

2년 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단은 인천공항에서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뒤 올림픽 특집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로 이동했다. 이날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렸지만 방송은 예정대로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다. 선수들은 빗물이 고인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선수단과 대통령의 오찬은 메이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치러지는 행사가 됐다.

6년 전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은 해단식을 마친 뒤 퍼레이드에 참가해야 했다. 대한체육회는 박태환과 장미란을 앞세워 서울 세종로사거리부터 서울광장 구간까지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도 비가 내려 퍼레이드에 참가한 선수단이 고생을 했다.

4년 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단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을 때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그보다 앞서,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이 소치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오찬을 가진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것은 아닐까? 선수를 앞세운 보여주기식 행사,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by heyuna 2014. 2. 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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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여왕 김연아가 21일 오전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서 무결점 연기를 마친 뒤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김연아는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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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21일 새벽 3시 50분(한국 시각),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얼음 밖으로 나왔다.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이후 꼬박 18년 만이다.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났다. 은퇴 무대, 수천만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빙판 위에 선 그는 늘 그랬듯 의연했다.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3Lz+3T) 콤비네이션 점프를 가볍게 뛰며 기분 좋게 연기를 시작했다. 이어진 트리플 플립(3F),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3S+2T) 콤비네이션도 침착하게 수행했다. 스핀과 스텝 시퀀스도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지난 1월 소치올림픽 리허설 무대로 택한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싱글 처리했던 마지막 점프 더블 악셀(2A)도 이번에는 완벽했다. 체력을 키운 김연아는 마지막 점프를 첫 점프처럼 높이 도약한 뒤 깨끗하게 착지했다. 

의연했던 피겨 여왕, 스승과 포옹하며 울컥

김연아는 탱고의 선율에 맞춰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안무를 깔끔하게 수행해나갔다. 마지막 과제인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은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끝까지 집중해서 경기를 끝낸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클린으로 장식했다. 그의 바람대로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4분 10초간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한 김연아의 경기가 끝났다. 자신의 바람대로 실수 없이 대회를 마쳤으나 김연아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가슴을 누르며 눈물을 흘리던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긴장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김연아가 관중석에 인사를 건넨 뒤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첫 스승, 류종현 코치와 눈을 맞춘 뒤 포옹을 하던 김연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았다. 7살 꼬마를 세계적인 피겨 선수로 길러낸 스승이었다.

스승과 '키스앤크라이존'에 앉은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성적표를 기다렸다. 점수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고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김연아는 기술점수(TES) 69.69점과 예술점수(PCS) 74.50점을 얻어 총점 144.19점을 받았다. 그는 점수가 발표되자 예상했다는 듯 웃어넘겼고, 양 옆에 앉은 신혜숙-류종현 코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144.19점, 자신이 밴쿠버올림픽 때 세운 프리스케이팅 세계신기록에는 5.87점 모자랐고 소치올림픽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5.48점이 부족했다. 심판들은 김연아의 연기를 은메달이라 판단했다.

김연아는 마지막까지 편파 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클린 연기. 은메달에 그칠 경기력이 아니었다. 잠을 설치며 피겨 여왕을 응원한 국민들은 분노했고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 등 피겨 전설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금메달은 제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며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분 좋고 감사드린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김연아다운 모습이었다.

김연아 경기가 끝난 직후 한 포털 사이트에 "연아야 고마워"란 문구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여왕에게 전하는 찬사였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그가 국민에게 준 행복은 금메달 그 이상이었다고 이제야 고백하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시니어 선수로 데뷔했다.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연기한 소녀는 16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과 안정된 점프를 선보였다. 이후 두 번의 국내 대회를 포함해 총 25번의 대회에 출전했다. 25번의 경쟁과 비교 그리고 25번의 긴장감과 부담감.

'피겨 여왕' 김연아, 피겨 역사 속으로

김연아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냈다. 이를 견뎌낸 보상은 짜릿했다. 이번 소치올림픽을 포함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했다. 피겨 100년 역사상 김연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타이틀이다.

간절히 원하던 세계챔피언 타이틀은 두 번(2009년, 2013년)이나 따냈고 10년 넘게 간직해 온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꿈도 4년 전에 이뤘다. '밴쿠버올림픽 챔피언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면 멋지지 않을까?' 꿈을 이룬 김연아의 고민이 시작됐다.

2011년 세계선수권 출전 이후 1년여간 방황의 시간을 보낸 그는 자신의 은퇴 무대를 소치올림픽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곳에 후배 선수들과 함께 가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끝냈어도 될 선수 생활을 연장했고 지독한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반이 흘렀다.

2013-2014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시즌이 시작됐고  2월 21일 새벽 3시 46분, 김연아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 출전을 위해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경기장에 들어섰다. 출전 선수 중 마지막 순서로 빙판에 선 김연아는 끝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후회없는 연기를 펼쳤고, 소치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자신의 선수 인생을 마무리했다.

시니어 데뷔 무대에서 '록산느의 탱고'를 연기하던 어린 소녀는 이후 기술력과 표현력, 정신력과 신체 조건까지 피겨 선수로서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갖춰나갔다. 수년간 피겨 여왕 자리에서 군림했던 김연아가 2014년 2월 21일, 18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피겨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록 그는 얼음을 떠나지만 김연아가 걸어온 위대한 여정은 국민과 세계 피겨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by heyuna 2014. 2. 21. 09:20
예상대로 1위였다. 우려했던 편파 판정 의혹도 어김없이 불거졌다. 20일 새벽(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출전한 김연아가 무결점 연기를 펼쳐 기술점수(TES) 39.03점과 예술점수(PCS) 35.89점을 얻었다. 총점 74.92점을 받은 김연아는 출전 선수 30명 중 1위로 경기를 마쳤다.

'디펜딩 챔피언' 김연아의 선전은 예상했던 결과였다. 올림픽 직전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80.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어 자신감을 충전한 김연아는 지난 13일 소치에 도착한 이후 실시한 훈련에서 모든 점프 성공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기대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보조 링크에서 이틀간 연습을 마친 김연아는 쇼트트랙 빅매치가 열리던 지난 15일, 국가대표 응원단으로 변신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 후배 선수인 김해진과 박소연의 연습 경기를 지켜보며 힘을 불어넣어준 김연아는 이날 오후 이상화, 박승희 등 빙상 선수들과 함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를 찾았다. 

'올림픽 2연패'보다는 동료 응원이 우선

자신이 연기할 경기장에 먼저 들어가 관중석 분위기와 조명 등을 살피며 간접적으로 적응을 마친 김연아는 당일 출전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응원하며 한 템포 쉬어 갔다. 시합 직전까지 연습에 몰두하던 4년 전 밴쿠버올림픽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피겨여왕에게만 주어진 여유인 듯 보였다.

당시 언론은 느긋한 김연아와 다급한 아사다 마오를 비교하는 기사를 쏟아 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음 위에서는 점프 성공률로, 얼음 밖에서는 심리 싸움으로 늘 경쟁구도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나흘이 흘렀다. 마지막 담금질을 마친 선수들이 마침내 얼음 위에 섰다. 소치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 쇼트 경기가 시작됐다. 

김연아는 메달 후보권 선수들이 포진한 5조(마지막조)에 비해 다소 이른 순번인 3조 5번째로 경기를 펼쳤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3Lz+3T) 콤비네이션 점프와 이어지는 트리플 플립(3F) 점프를 가볍게 뛰어내며 자신의 마지막 쇼트프로그램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이후 스핀과 스텝 시퀀스 등을 무리 없이 소화했고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2A)까지 깔끔하게 뛰었다. 서정적이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는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에 맞춰 2분 50초간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는 경기가 끝나자 긴장했던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얼음 위를 빠져 나왔다.

올리브 그린색 의상을 입고 연기를 펼친 김연아의 모습은 마치 나비 같았다. 가벼워 보였고 얼음 위에서 더 자유로워 보였다. 실수 없이 연기를 끝냈고 선수도 지켜보는 국민들도 고득점을 예상했다. 4년 전, '제임스 본드 메들리(James Bond Medley)'를 연기해 쇼트프로그램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던 밴쿠버올림픽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하지만 4년 전과는 달리 기대했던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선수와 코치의 얼굴은 후련해 보였지만 밝지 않았다. 상황을 중계하던 해설위원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움직이지 않던 다리, 자신만을 믿고 경기

키스앤크라이존을 나선 김연아에게 현지 취재단이 소감을 물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웜업(준비운동) 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어요. 긴장을 많이 해서 시합 직전까지도 점프를 제대로 뛰지 못했어요. 점프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도 없었는데 '연습했던 거랑 뭐가 다르겠어, 믿고 하자'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마무리를 잘 지은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당당하고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던 그도 자신의 마지막 쇼트 무대 앞에서는 23살 여자 선수에 불과했다. 자신이 컨트롤조차 할 수 없는 긴장감을 안고 얼음 위에 서야 했다. 그간의 연습량 그리고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김연아가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감당하고 있을 때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아사다 마오,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등 도전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많은 국민들이 김연아의 경기를 '선수의 마지막 무대'로 감상하고 즐기기 보다는 경쟁 상대를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김연아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지난 1일 방송된 KBS 특집 다큐멘터리 <김연아, 챔피언>에서 그는 "제가 당연히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이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랑 너무 다르다'라는 생각을 좀 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금메달을 따지 않더라도 저는 만족스럽고 후회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 자신만 생각하고 제가 목표로 한 것만 열심히 해서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생겼다가 곧 사라지는 '이상한' 라이벌 

주니어 때부터 시작된 아사다 마오와의 라이벌 구도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그의 마지막 은퇴 무대인 소치올림픽에서는 라이벌 목록에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도 추가됐다. 열흘 전만 해도 율리아의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었지만, 현재 율리아는 가장 짧은 시간에 높은 인지도를 쌓은 외국인 중 한사람이 됐고, 그와 관련된 소식은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그리고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현재, 예상했던 라이벌 아사다와 율리아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언론들은 김연아에 이어 2, 3위를 차지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와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를 새롭게 끌어들여 비교하고 있다.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6년 11월, ISU(국제빙상연맹)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시니어 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두 번의 국내 대회를 포함해 총 24번의 대회에 출전했다. 24번의 경쟁과 비교 그리고 24번의 긴장감과 부담감. 김연아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냈다. 이를 견뎌낸 보상은 짜릿했다.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 입상. 피겨 100년 역사상 김연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타이틀이었다. 

25번 째 대회, '1등' 아닌 '김연아'에 집중

2014 소치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김연아 선수의 25번째 대회이자 은퇴 경기다. 2006-2007시즌, ISU 그랑프리 시리즈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준비한 김연아는 당시 1조 1번으로 시니어 무대에 입성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2013-2014시즌이자 그의 마지막 시즌, 소치올림픽 프리스케이팅만을 남겨놓은 김연아는 내일 새벽 3시 46분, 출전 선수 중 가장 마지막 순서로 얼음 위에 오른다. 프로그램 곡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inino)'.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 16살 소녀답지 않은 표현력과 기술로 피겨계에 깜짝 등장했던 어린 소녀가 이제 이별을 말하려 한다. 

그의 관심사는 올림픽 2연패도, 라이벌 구도도 아니다. 오직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할 뿐이다. 지난 24번의 대회에서 '1등' '경쟁'만을 강조해왔던 우리. 마지막인 만큼 이를 떨쳐내고 '선수 김연아'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피겨여왕 김연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밤이다. 


by heyuna 2014. 2. 21. 00:07
심석희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실격당했다. 막내의 은빛 메달에도 불구하고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15일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들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대회 8일차, 이상화의 금메달(스피드스케이팅 500m)과 박승희가 따낸 감동의 동메달(쇼트트랙 500m)로 종합 순위 16위에 랭크한 한국은 '동계 효도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메달 수집에 나설 계획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1500m 준준결승에 출전한 든든한 막내 심석희와 대표팀 맏언니 조해리가 가벼운 몸으로 얼음을 지쳤고 각 조 1위로 준결승에 올랐다. 급성위염에도 불구하고 준준결승 경기를 마친 김아랑은 준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한 20살 소녀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국민들이 힘을 불어 넣었다. 투혼이 시작된 것이라 믿었다.

동생을 위한 레이스, 결과는 실격

오후 8시 24분(한국시각), 여자 1500m 준결승 경기가 시작됐다. 몸이 좋지 않은 김아랑은 일찌감치 선두에 자리를 잡았고 체력이 좋은 조해리가 그 뒤를 바짝 붙었다. 중위권 선수들이 치고 올라올 때마다 조해리가 막아냈다. 덕분에 김아랑은 힘 조절을 하며 스케이팅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 내내 중위권 선수들을 방어하던 조해리는 결국 결승선을 두 바퀴 남긴 상황에서 3위로 밀려났고, 그 사이 뒤에서 힘을 아끼던 중국의 리 지안루가 선두로 올라섰다. 김아랑은 스피드를 유지하며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위를 차지한 김아랑은 결승전 진출에 성공했고 자리싸움 도중 미국 애밀리 스캇을 손으로 밀친 조해리에게는 실격이 선언됐다. 무릎 부상을 당한 박승희를 대신해 1500m에 출전하게 된 조해리는 이날 유난히 몸이 가볍고 힘이 넘쳐 보였다. 동생 김아랑을 충분히 역전할 수 있음에도 힘을 아끼며 스케이팅 하는 듯 보일 정도였다. 급성위염으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동생은 언니의 보호를 받으며 결승전에 진출했고, 동생을 위한 레이스를 펼친 맏언니는 실격으로 개인전을 마무리했다.

19분 뒤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가 시작됐다. 신다운과 이한빈이 한 조에서 경기를 펼쳤는데, 이한빈이 네덜란드 싱키 크네흐트와 몸싸움을 벌이다 트랙에서 밀려났고 그대로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넘어지지 않았음에도 남은 레이스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틀 전, 500m 결승전에 출전한 자신의 여자친구 박승희가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레이스를 마쳐 큰 감동을 안긴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8시 24분-8시 43분-9시 12분-9시 25분

또다시 19분이 지났다. 여자 1500m 결승전이 열렸고 이 경기에서 또 한 명의 한국 선수가 실격 당했다. 김아랑이었다. 1500m 세계랭킹 1위인 심석희가 여유로운 레이스를 펼치며 선두에서 경기를 이끌어간 반면, 중위권 싸움을 하던 김아랑은 경기 중반 미국 애밀리 스캇과 자리 다툼을 하던 도중 넘어졌고, 실격 처리 됐다. 1시간 사이에 조해리-이한빈-김아랑 총 세 명의 한국 선수가 실격을 당한 것이다.

악몽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빅토르 안(안현수)과 함께 남자 1000m 결승에 오른 신다운이 남아있었다. 홈 관중의 압도적인 응원을 받고 스타트라인에 선 빅토르 안은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빅토르 안은 평소 뒤쪽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막판에 스퍼트를 올려 선두로 치고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러시아 동료 선수와 함께 초반부터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1000m내내 경기를 이끌어갔다. 동료와 1위, 2위 자리를 번갈아 타며 체력도 유지했다. 신다운과 네덜란드 싱키 크네흐트가 선두 자리를 차지하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결승선을 앞둔 마지막 코너, 1위와 2위를 확정 지은 러시아 선수들 뒤로 마지막 메달을 위한 신다운과 싱키 크네흐트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평소 과감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신다운이 무리하게 인코스를 파고들어 크네흐트와 몸을 부딪혔고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잃었다. 결국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신다운은 비디오판독 결과 실격 판정을 받았다.

은메달을 딴 심석희를 제외하고 이날 경기에 출전한 한국 선수 네 명이 실격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중국, 미국 선수들의 '더티 플레이'에 피해를 받던 한국이 이젠 무리한 끼어들기와 거친 플레이로 가해자가 된 것이다.

실력만큼 '멘탈'관리도 필요한 쇼트트랙 대표

김동성-안현수-이정수 등 엘리트 선수들이 혼자서 올림픽 2연패 이상을 달성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전설의 김동성은 은퇴했고 천재 안현수는 러시아의 국가대표다. 4년 전, '짬짜미' 의혹을 폭로했던 이정수는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계를 받은 이후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카자흐스탄 쇼트트랙 대표팀의 코치는 한국인다. 한국 특유의 코칭법이 세계 곳곳에 전파되고 있고 그만큼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됐다. 이러한 흐름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 또한 '무조건 금메달'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지더라도 멋있게 지는 모습이 보고 싶을 뿐이다.

만회할 기회는 남아있다. 18일 여자 1000m와 남자 500m, 여자 3000m 계주 결승 A가 열리고 22일 남자 5000m 계주 결승 B 경기가 예정되어있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메달권이 아님을 알면서도 끝까지 역주를 펼쳐 '금메달 그 이상'이 무엇인지 보여준 이규혁 선수처럼 메달, 순위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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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una 2014. 2. 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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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피겨스케이팅 김연아가 1월 23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챔피언하우스에서 열린 제22회 소치동계올림픽 한국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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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라이벌은 영원한 라이벌일까?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대회에 출전해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클린 경기를 펼친 대가는 쇼트프로그램 78.50점, 프리스케이팅 150.06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보답받았다.

키스앤크라이존에 앉은 김연아는 점수가 발표되자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놀라움을 드러냈고, 당시 중계를 맡은 SBS 배기완 아나운서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고 치켜세웠다. 함께 출전한 아사다 마오는 205.50점(쇼트73.78, 프리131.72)을 받아 은메달을 차지했다. 1위와의 점수차는 23.06점이었다.

같은 대회 남자 피겨스케이팅 싱글에서는 에반 라이사첵(미국)이 257.67점으로 금메달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가 256.36점을 받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선수의 메달 색깔은 1.31점 차이로 갈렸다.

치열한 경우 소수점으로도 순위가 나뉘어지는 피겨스케이팅의 성격을 고려할 때, 23점은 상당한 점수 차였다. 228.56점 대 205.50점. 결과만 놓고 보면 싱겁게 끝난 듯하지만, 여자 피겨 싱글은 동계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경기 중 하나였다. 경기 전부터 뜨거웠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눈만 마주쳐도 수백 개의 기사가 생산됐고, '상대 선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은 끊임없이 두 선수를 따라다녔다.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두 사람은 선수생활 내내 '동갑내기 라이벌'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부가 갈렸지만 대결 구도는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4년이 흘렀고 지난 7일 소치동계올림픽이 개막했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론은 변함이 없다. '김연아 라이벌 목록'에 아사다 마오에 이어 러시아 신예 선수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사다에서 리프니츠카야로, 순식간에 옮겨간 '김연아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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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연아가 선수로서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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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치올림픽에는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여자 스키점프 등 12개 종목이 신설됐다. 그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종목 중 하나가 피겨 단체전이다. 2013-2014시즌 국제 대회 점수를 기준으로 상위 10개국에 출전권이 부여됐고, 출전국 선수들은 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댄싱을 소화했다. 네 종목의 결과를 종합해 순위를 매겼는데,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가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는 남자 싱글에 노련한 예브게니 플루셴코(32)를, 여자 싱글에는 신예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를 출전시켰다. 플루셴코의 선전을 예상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시니어 무대에 입성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소녀가 반란을 일으키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리프니츠카야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며 단체전 우승을 이끌자 러시아 홈 관중뿐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도 들썩였다. 김연아의 새 라이벌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2013-2014 그랑프리 시리즈 2차 대회와 유럽선수권에서의 우승이 전부인 리프니츠카야는 '10년 차 라이벌' 아사다까지 뒷전으로 밀어냈다. 리프니츠카야가 경기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연아와의 경기가 기대된다"고 말하자 김연아와 리프니츠카야를 엮은 기사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김연아, 올림픽 2연패 가능?' '아사다 마오, 트리플 악셀로 김연아에 도전' '러시아 신예, 김연아의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 등, 피겨 대회가 열릴 때마다 새로운 금메달리스트가 나올 때마다 언론은 김연아와 해당 선수를 비교하고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예측하곤 한다. 마이크 앞에 선 김연아에게 기자들은 어김없이 라이벌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주목하는 선수는 국내 후배뿐"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한 기자회견에서 나온 첫 질문도, 2014년 1월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미디어데이 마무리 질문도 선수 개인 목표나 기량이 아닌 '라이벌이 누구냐'는 물음이었다.

- 소치올림픽에 가겠다고 결정했는데, 러시아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는가? (2012년 7월 2일, 현역 선수 복귀 기자회견 첫 질문)
"러시아 선수들은 김해진 선수나 박소연 선수 같은 후배들의 경쟁상대이기 때문에 눈여겨 봐오긴 했는데요. 저는 이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목표보다는, 우선 소치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월드챔피언십에 나갈 수 있도록 훈련을 할 거고요. (후략)"

- 라이벌 혹은, 주목하고 있는 선수가 있는가? (2014년 1월 15일, 소치올림픽 빙상대표단 미디어데이 기자회견 마지막 질문)
"특별하게 주목하는 선수는 이번에 같이 출전하는 김해진·박소연 선수입니다. 밴쿠버올림픽 때는 곽민정 선수랑 같이 나갔지만, 그때는 한 명이었고 이번에는 두 명의 후배 선수들과 같이 출전하게 됩니다. 이 선수들이 앞으로 시니어 무대에서 계속 대회를 치르게 됩니다. 이번 올림픽이 심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큰 기회인 만큼, 부담이 되겠지만 선수들이 좋은 인상을 남기길 바랍니다. 제가 은퇴한 뒤에도 한국에 이런 선수들도 있다는 것을 심판들이 기억을 하고, 앞으로 시니어 대회 출전할 때 많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연아는 '라이벌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특정 선수를 거론하지 않은 채 답변을 이어갔다. 

김연아 vs.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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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시니어 데뷔 이후 김연아는 열한 번의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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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시니어 데뷔 첫해인 2006-2007시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록산느의 탱고'(El Tango de Roxanne)를 실수없이 연기해 쇼트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2008-2009시즌에는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와 '세헤라자데'(Scheherazade)를 연기해 여자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했다. 이후 밴쿠버올림픽까지 쇼트, 프리, 합계 점수에서 모두 열한 번의 기록을 경신했다. 김연아는 국내대회는 물론이고 출전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3위 내에 입상해 피겨 100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올 포디움(All-Podium)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기록을 들여다보면 김연아의 경쟁자는 김연아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김연아의 맞은 편에 상대 선수를 세워두고 둘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극했다.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김연아는 언론 앞에서 한 가지 목표만을 이야기해왔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수로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어 소치올림픽 출전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기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올림픽 2연패를 언급하고, 그의 금메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는 말이 있다. 왕관을 내려놓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연기를 하겠다는 선수와 달리, 오히려 주변에서 왕관을 씌우기 위해 혈안이 된 형국이다.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리프니츠카야의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피겨 여왕의 마지막 무대를 즐기기란 '1등 지상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 일까?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를 2위로 마친 김연아는 <SBS 스페셜- 아이콘 김연아, 2막을 열다>에서 아쉬운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보통 경기가 끝나면 문자나 축하메시지가 많이 오잖아요. 그런데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하나도 못 받았어요. 저는 그게 정말 어이가 없는 거예요. 저는 2등도 했고, 경기가 끝나서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다 '수고했어, 괜찮아'라는 말밖에 없는 거예요. '스포츠 선수에게 있어서 1등과 2등은, 1등과 꼴등과 같은 취급을 받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디오스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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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에서 2등을 하고 돌아오자 주변에서 축하가 아닌 위로의 말을 전해 아쉬웠다는 김연아
ⓒ SBS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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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도, 지금도, 김연아는 금메달을 따려고 시합에 출전하는 것은 아니다. 매번 자신이 정한 목표를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목표는 올림픽 티켓 두 장 이상 획득이었고, 이번 소치올림픽 목표는 선수 생활의 아름다운 마무리다.

김연아는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으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를 택했다. 이제 완전한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무대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20일 쇼트프로그램, 21일 프리스케이팅). 작별 인사를 하는 그에게 메달을 강요하지 않기를, 어떤 결과를 얻든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그가 웃으면서 경기장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아디오스, 김연아.


by heyuna 2014. 2. 11. 12:33



















by heyuna 2014. 1. 7. 17:16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오묘한 승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없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야말로 승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다. 그러나 선수에 따라서는 승리만이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 한번 오른 최고봉에 재도전하는 등산가에게 다시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표일 수는 없다. 다른 코스로도 오르고 싶고 팀워크를 중시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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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출국 기자회견에서 김연아는 "부담없이 경기를 치르고 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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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운 것 같아요"

두 번째 올림픽에 도전하는 김연아(23·올댓스포츠) 선수의 심정은 현역 복귀 선언 이래 어떤 변화를 겪어온 걸까?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해 2011년 7월의 기자회견으로 돌아가보자.

"저를 계속 짓눌러왔던 저의 선수생활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힘겨웠던 것이 나 스스로, 또 국민과 팬들의 높은 기대치와 그에 따른 부담감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피겨 연기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만일 최고의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이것이 인생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김연아는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 한 켠에,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이 부담감 때문에 자기가 가장 잘 하고 자신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1년 남짓 고민의 시간을 보낸 그는 다시 얼음 위에 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흘렀다. 소치올림픽 시즌이 시작됐고, 김연아는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을 맞게 됐다.

지난 3일, 김연아가 2013-14시즌 첫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하는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마지막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마음이 가볍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운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꿈은 이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욕심이나 부담은 전혀 없는 것 같고, 한 대회 한 대회 나갈 때마다 예전보다는 부담을 덜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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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국 기자회견장에는 백 여명의 취재진과 팬들이 몰려 김연아의 마지막 시즌에 관심을 보였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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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티켓 3장 따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외 언론과 팬들은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를 언급하고 예측했다. 하지만 선수 본인은 '올림픽 2연패'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현역 복귀를 결정한 이유가 올림픽 2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역 복귀 당시 그의 말을 되새겨보자.

"지난 시즌을 스킵한 이후 1년은 저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년 동안 태릉선수촌에서 피겨스케이팅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해왔습니다. 제가 후배 선수들에게 피겨스케이팅과 관련된 조언도 해주고 선배로서, 언니로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반대로 후배들의 훈련 모습에 자극받기도 하고 때로는 피겨스케이팅을 계속해야 하는 동기부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을 위해서 제가 현역 선수로서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역 선수로서 김연아가 해야 할 일은 후배 선수들을 소치올림픽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올림픽 티켓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 목표가 생기자 바빠졌다.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었고 체력을 끌어올렸다. 

B급 대회에 출전해 국제대회 점수를 챙겼다. 단번에 기준점을 통과했고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자격을 얻었다. 지난 3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김연아는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티켓 3장을 따냈다. 후배 선수 둘을 소치올림픽에 데리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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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아와 함께 소치올림픽에 출전하게 될 박소연(좌), 김해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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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노니노'에 맞춰 연기... 의상은 대회 날 '공개'

약속을 지킨 김연아는 이후 후련한 마음으로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준비해왔다. 부담감을 떨쳐내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연기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6시간씩 지상과 빙상을 오가며 훈련을 소화했다. 체력 강화와 함께 새 프로그램을 몸에 익혔다. 여름의 끝자락에 올림픽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한 김연아는 10월에 열리는 그랑프리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에 매진했다.

무리한 훈련 탓일까? 대회를 한 달여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중족골 미세 손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하지 못한 김연아는 그랑프리시리즈 불참을 결정했다. 이후 가벼운 훈련과 치료를 병행하며 감각을 유지했고 10월 말, 부상을 완전히 떨쳐냈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는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B급 대회 출전을 결정했다.

5일부터 나흘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에서 김연아는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한다. 시니어 데뷔 이후 쇼트 프로그램에서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곡을, 프리 스케이팅에서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 곡을 연기해온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시즌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쇼트 프로그램은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 프리스케이팅은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에 맞춰 연기할 예정이다. 안무는 7년간 함께 해온 데이비드 윌슨이 맡았다. 특히 아디오스 노니노는 윌슨이 안무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아껴왔던 곡이다. 윌슨은 "강하고 극적인 느낌에서 섬세하고 그리운 느낌으로 갑작스레 변화하는 이 곡을 연기로 표현해낼 피겨 선수는 오직 김연아뿐"이라며 제자의 마지막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김연아는 "현역선수로서 마지막 대회 프로그램인 만큼, 그동안 스케이팅하고 싶었던 음악을 선곡하게 되어 기쁘고, 그만큼 멋진 경기 내용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외 안무나 의상에 관한 정보는 "경기 날 공개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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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데뷔 이후 7년간 함께 해온 김연아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 이들은 마지막 시즌 프로그램까지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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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 시즌은 시작됐다

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일 오전, 대회 출전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여 명이 넘는 취재진과 팬들을 앞에 두고도 연신 미소를 띠었다. 긴장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올림픽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부담 없이, 결과에 대한 욕심 없이 준비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림픽 시즌이 늦게 시작됐는데 늦어진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고요. 이번 골든 스핀이 프로그램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인 만큼 욕심 내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경기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게 되는 자리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고요. 아직 올림픽까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번 시합이 끝난 이후에도 훈련 열심히 해서 더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할 당시 김연아는 챔피언의 자리에 서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그 꿈을 이뤘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올림픽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그 자리에 후배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이미 절반의 목표를 달성한 김연아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는 점프와 스텝 등 기술적인 부분을 체크하고 자신의 컨디션을 점검할 계획이다. 김연아가 출전하는 쇼트 프로그램은 6일 오후 9시(한국시각), 프리스케이팅은 7일 오후 11시에 시작된다. 경기는 MBC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by heyuna 2013. 12. 17. 11:25

테니스 이덕희, 라켓으로 소리치다
[단비스포츠] 경력 9년 차, 듣지 못해도 우승컵은 거뜬
2013년 04월 20일 (토) 11:14:23정혜정 기자  smse7728@naver.com

“덕희야, 새소리가 정말 아름답지 않니?”


아침 훈련 길에 오른 아들에게 말을 건네도 반응이 없다. 대견한 아들 덕분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불현듯 현실과 마주할 때면 가슴 한편이 미어진다. 지난 15년간 단련한 긍정의 힘도 이럴 때는 소용이 없다.


최근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27•스페인)의 칭찬을 받아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받은 이덕희(15•제천동중)는 박미자(39)씨의 아들이자 청각장애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다. 나달은 지난 6일 자신의 트위터에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최연소 선수인 이덕희가 장애를 이겨낸 이야기는 우리에게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3일 일본에서 열린 제3회 쓰쿠바대 국제 퓨처스대회(총상금 1만 달러) 단식 본선 1회전에서 이덕희가 미야자키 마사토시(일본, 1675위)를 2대 0으로 누르고 랭킹 포인트 1점을 획득한 후 나온 슈퍼스타의 격려였다.


  
▲ 테니스 주니어 국가대표 이덕희 선수가 모교인 제천동중학교에 마련된 코트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정혜정
2010년 에디 허 국제 주니어 테니스대회 12세부에서 단식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테니스계의 샛별로 떠오른 덕희는 이후에도 국제무대에서 단식, 복식부문 우승을 잇달아 차지하는 등 유망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중학교 1학년 때 주니어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 지난해 11월에는 대한테니스협회의 추천으로 최연소로 성인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을 때 덕희도 어머니 박 씨도 이런 날이 오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일곱 살 때 결정한 진로, ‘테니스는 나의 운명’

세 살 때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덕희는 일 년 뒤 청각장애 특수교육기관인 충주성심학교 유치부에 입학했다. 4년 동안이나 제천 집과 충주를 오가야 했다. 7살 겨울,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가 날아들자 부모의 고민이 깊어졌다. 보통 고등학교 때 겪게 되는 진로 선택 고민이 덕희 가족에겐 빨리 찾아왔다.


“(장애를 지닌) 어린 아이를 두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고요. 남편과 상의해서 운동을 시키기로 결정하고 그 다음에 종목을 고민했죠. 단체 종목은 핸디캡이 있어 안 되고, 골프는 돈이 많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고민 끝에 덕희에게 테니스 라켓을 쥐어줘 봤어요.”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덕희는 두 달간 테니스 레슨을 받았다. 평소 야구와 축구를 좋아한 아들은 테니스에도 금세 흥미를 붙였다. 충주성심학교를 떠나 테니스부가 있는 제천의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1년간 지켜보고 가능성이 없으면 다른 종목으로 바꿔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에 부담 없이 시작한 게 바로 테니스였다.


훈련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테니스 저변이 열악한 탓에 빈 코트를 찾아다니며 연습하는 일이 잦았다. 훈련비와 시합비를 포함해 한 달에 2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덕희에게 들어갔다. 덕희 가족에겐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3학년 이후 국내 대회에서 덕희가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자 신백초 테니스부에 후배들이 한두 명씩 늘어났고 후원도 들어왔다. 테니스부 체계가 갖춰졌고, 논바닥 같던 코트도 하드코트로 바뀌었다. 좋은 성적의 배경엔 물론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 듣지 못하는 핸디캡이 있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상위권에 랭크하는 이덕희 선수. ⓒ 정혜정

‘메뚜기 훈련’으로 성적 내자 지원 쑥쑥

하루 훈련은 6시간 정도. 오전 10시,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 뒤 덕희는 제천동중에 마련된 코트에서 개인코치와 두 시간가량 훈련한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 뙤약볕 아래서 다시 랠리를 이어간다. 수백 번의 서브와 스트로크, 해가 진 뒤에야 덕희의 지상 훈련이 끝난다. 체력단련 코치가 있는 체육관으로 이동해 마무리 훈련을 하면 덕희의 하루 일과도 끝이다.


“덕희를 관리해주는 에이전트와 후원 기업이 생겼어요. KDB 금융그룹과 현대자동차에서 투어 비용과 차량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지난달부터는 제천 서울병원에서 의료지원을 받고 있고요. 이런 지원 속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면 후배들이 기회를 잃을 수도 있잖아요. 덕희가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어린 나이지만 덕희의 남다른 책임감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올해 초 출전한 2013 호주오픈 주니어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해 국내 최연소로 메이저 주니어대회 본선 승리 기록을 달성했다. 우승컵을 마주하기까지 힘든 시간도 많았다. 덕희가 듣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경기를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선수도 있었다.


“낮은 등급 대회는 심판 없이 시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상대 선수가 이번 볼이 인인지 아웃인지 시그널(신호)로 알려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덕희가 포인트를 헛갈려 하거든요. 덕희가 경기를 중단하고 어필하면 ‘얘 뭐라는 거야’라며 못 알아듣는 척 넘어가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어요.”


더 가슴 아픈 경우도 많았다.


“상대 선수 부모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병신 같은 애한테 지냐’며 자식을 혼내는데 정말 ‘멘붕’이었어요. 욕을 들은 것보다 그 아이의 미래가 더 걱정되더라고요.”


  
▲ '이덕희 전담팀' 박경훈 코치(26), 이덕희 선수, 어머니 박미자씨. ⓒ 정혜정

어디서든 자신만만, 대통령 앞에서 스매시

하지만 박 씨는 듣지 못하는 아들을 테니스 선수로 키워내면서 속상하고 우울한 일보다 즐겁고 고마운 일을 더 많이 경험했다고 말했다.


“덕희는 참 복이 많은 아이인 것 같아요. 청각 하나를 안 주신 대신 다른 능력을 너무 많이 주셨거든요. 보통 아이들과 비교해 운동도 잘 하고, 시각적 능력도 뛰어나고요. 성격도 얼마나 명랑 쾌활한지 몰라요(웃음). 언론에 청각장애 선수라고 나올 때나 ‘아 우리 애가 안 들리지’라고 생각하지 평소에는 인식을 안 하고 살아요. 덕희도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거의 없고요. 저희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웠거든요. 안 들리는 것 때문에 주눅 들지 말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말도 어눌하면 어눌한 대로 하라고 가르쳤고요.”


어디서든 자신만만한 덕희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코트에 선 날의 긴장감은 잊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덕희는 ‘2012 KDB 코리아오픈 프로암 테니스대회’ 번외경기에서 이 전 대통령과 짝을 이뤄 복식 게임을 치렀다. 할아버지뻘 되는 상대팀을 배려해 덕희는 힘 조절을 했지만 파트너였던 이 전 대통령은 “왜 이렇게 살살 쳐, 좀 더 ‘빵’ 쳐 봐”라며 농을 걸었다. 현직 대통령과 함께 땀 흘린 이 날의 경험도 덕희가 두둑한 배짱을 기를 수 있는 자산이 됐다.


박 씨는 많은 경험을 통해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아들을 지켜보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평범하지 않은 아들 덕분에 평범하지 않게 사는 것도 좋아요. 힘든 정도로 따지면 다른 것은 안 힘들겠어요? 남들 힘든 만큼 저희도 힘들 뿐이에요. 덕희를 키우면서 남편과 저는 덕희의 몸을 키우고 덕희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키우는 것 같아서 덕희에게 고마워요. 9년 동안 즐겁게 운동하는 것도 자랑스럽고요.”


청각장애 아들이 비범한 기량을 보일수록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높아졌다. 뿌듯하긴 하지만 지나친 관심에 부담도 적지 않다.


“덕희가 성인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노력해서 이룬 건데, 가끔 여기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때가 있더라고요. 덕희는 이제 중3이잖아요. 키도 중3, 힘도 중3 이거든요. 이 상황에서 성인 역할을 요구하면 분명히 오버페이스가 걸려요. 덕희는 이를 컨트롤 하지 못하니까 저희가 옆에서 잘 관리해줘야죠.”


친구 손대신 라켓 잡았지만 후회 없어

중학생 덕희는 교실이 낯설다. 적막한 교실에서 45분간 칠판만 바라보는 것은 덕희에게 힘든 일이다. 덕희에게는 코트가 교실이고, 코치님이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이른 나이에 운동을 선택했기 때문에 또래처럼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못하지만 후회는 없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일찌감치 발견했고, 거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난 9일 제천동중에서 훈련을 마친 이덕희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정혜정
아시아 주니어 테니스 챔피언십(B1) 대회를 앞둔 지난 9일, 제천동중에서 훈련 중인 덕희에게 긴장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연습할 때는 떨리는데 막상 시합에 들어가면 안 떨려요. 코치선생님이랑 아빠가 경기 때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것 다 외웠어요. 저 9년 됐어요. 다 외웠어요.”


지난 15일부터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고 있는 B1 주니어대회에 출전한 덕희는 현재 단식 결승전 티켓을 따낸 상태다. 국제대회 통산 단식 10번 째 우승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덕희는 결승전 경기 시작 신호가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by heyuna 2013. 4. 23. 14:45







by heyuna 2013. 4. 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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